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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Aug 07. 2022

코로나19에 걸렸습니다

캐나다의 다소 불편한 의료체계

얼마만에 글을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쿠바 여행에 다녀온 후 온가족이 코로나19로 고생을 했습니다. 아마도 쿠바 리조트에서 걸려서 온 것이 아닌가 싶어요. 숙소는 독립된 공간이었고 주로 바닷가나 야외 수영장에서 놀았기 때문에 아마도 식당에서 전염된 것 같습니다. 전세계에서 온 사람들과 널찍한 공간에서 몇날 며칠 함께 식사를 했으니 안걸리면 그게 더 신기한 것이었을지도요.


캐나다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부터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는데 그저 여독이려니 했습니다. 워낙 저질 체력이라 며칠 놀고 나면 으레 가볍게 몸살을 앓곤 했거든요. 집에 도착해서 타이레놀을 먹고 푹 잠을 잤는데 다음날 일어나니 온몸이 어찌나 으슬거리고 아프던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구비해 둔 검사키트로 간이검사를 하니 코로나 양성이 따악 뜨더라고요. 헉...정말 뜨악 했습니다. 저를 필두로 다음날은 작은아이, 그 다음날은 남편, 그 다음날은 큰아이 순으로 차례차례 코로나 증상이 나타났지요.


이부프로펜이나 부프로페진류의 소염진통제에 알러지가 있는 저로서는 오로지 타이레놀만으로 코로나를 견뎌야했습니다. 다행히도 타이레놀이 몸에 잘 받아 3일정도 몸살을 앓았다가 몸살이랑 미열은 잡혔는데 문제는 후각은 거의 상실하고 청각도 급격하게 나빠졌습니다. 게다가 기력이 너무 떨어져서 조금만 움직여도 식은땀이 나고 어지러워서 온종일 누워있거나 앉아만 있어야 하더라고요. 입맛이 도통 없고 먹어도 소화불량으로 자꾸 토하기만 하니 며칠동안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다행히도 하루정도 심하게 앓았다가 다음날 둘 다 금세 회복하더라고요. 저도 흰죽, 계란죽을 먹으며 어떻게든 체력을 회복하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7일정도 지나니 일상생활이 가능해질 만치 체력은 생겼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후각과 청각은 잘 돌아오질 않네요.


쿠바 여행전 상비약으로 감기약과 소화지사제 등을 구비해두었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감기약으로 가장 많이 먹는 유명한 약이 애드빌(Advil, 이부프로펜)과 데이퀼나이퀼(DayquilNyquil, 아세트아미노펜)입니다. 소화제이면서 지사제로는 펩토(Pepto)가 유명합니다. 저랑 작은아이는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이 잘 듣고 큰아이랑 남편은 이부프로펜 계열 약이 잘 맞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약의 성분별로 구비를 하는 편입니다. 펩토도 한알만 먹으면 금방 효과가 나더라고요. 문제는 남편이었습니다. 남편의 몸살기운이 잡히고 조금 나아졌나 싶었는데 육안으로 보기에도 목이 심하게 부었더라고요. 부랴부랴 집에 있는 항생제를 찾으니 아목시실린이 있어 일단 그걸 먹었습니다. 평소 건강하던 남편이라 하루 이틀이면 목이 금방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3일을 먹었는데도 영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의사에게 진료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국은 코로나에 걸리면 앱으로 진료를 받고 처방도 받는 것으로 압니다. 약 배달을 해준다고도 들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한국의 의료서비스는 아마도 전세계에서 최고 수준이 아닐까 싶어요. 캐나다는 한국에 비해서 의료 체계가 복잡하기도 하고 접근성이 많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캐나다에서 1차 진료기관은 워크인 클리닉이라고 불리는 병원인데요. 워크인(walk-in)이라는 말처럼 예약하지 않고 바로 방문이 가능하다는 뜻이지만 코로나로 인해 현재는 대부분의 워크인 병원에서 예약을 받고 있습니다. 저처럼 코로나에 걸린 경우에는 해당 워크인 웹사이트에서 전화진료와 비디오진료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구글에서 제가 사는 런던 시내 워크인 클리닉을 검색해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 몇군데를 선택하였습니다. 전화진료의 경우에는 꼭 가깝지 않아도 상관은 없습니다. 의사가 약을 처방할 때 환자가 약을 픽업할 수 있는 약국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워크인 몇군데를 검색해서 진료가 가장 빠른 곳을 찾았지만 당일에는 진료 예약이 다 찼는지 자리가 없어서 다음날로 간신히 전화 진료를 예약했습니다.  그런데 진료시간이 지났는데도 의사에게서 전화가 오질 않는 겁니다. 워크인으로 전화를 거니 역시나 직통으로 상담은 어렵더군요. 캐나다는 병원이든 미술관이든 마트든 어디든 일단 전화를 걸면 무조건 음성안내문이 먼저 뜹니다. 직통으로 전화를 받는 경우는 단한번도 못봤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예약 웹사이트에 안내된 채팅창과 메세지창에 '진료예약 시간이 지났는데 전화가 오지 않는다, 진료가 시급하다'라는 메세지를 남겨두었습니다.


진료 예약시간은 오후 4시 40분이었는데 그날 밤 9시에 의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이 너무 붓고 아프다고 하니 아목시실린을 처방해 주더군요. 집에서 가까운 약국이 9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다음날 약국에 가서 약을 받아 왔습니다. 한국이라면 집 근처 어디든 병원이 가까워서 한두시간만 기다리면 진료를 받곤 했는데 여기에서는 진료를 받고 싶어 예약을 하는 날부터 진료 받는데 이틀, 약은 사흘째에 받은 꼴입니다. 심지어 의사가 약속 시간을 어겨서 여러번 메시지를 남겨야 했고요. 그리고 진료비는 75불, 약 7만5천원으로 유학생 신분이라 가장 낮은 진료비를 청구받은 것인데도 값이 후덜덜 하지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차 의료기관이 소아과, 내과, 안과, 이비인후과 등 진료과목에 따라 세분화되어 병원이 있지만 캐나다는 그렇지 않습니다. 1차 의료기관은 방금 언급한 워크인 클리닉과 패밀리닥터가 있습니다. 워크인 클리닉과 패밀리닥터는 가정의학과나 의원 느낌이 듭니다. 좀더 전문적인 분야의 진료가 필요한 경우, 즉 전문의에게 검사를 받고 진료를 받고 싶으면 워크인 닥터나 패밀리 닥터가 추천서를 써주어야 합니다. 치과의 경우에는 병원에 미리 예약하고 갈 수 있습니다. 대신 치료비용이 어마어마합니다. 둘째가 이가 아파 치과에 갔는데 의사가 그저 입안을 들여다보고 항생제 처방을 받았는데 140불이 나왔습니다. 다행히 여행자보험에 포함되어 있어 보험처리했습니다.


캐나다는 의사 숫자가 많이 부족한 국가라서 패밀리닥터가 환자를 모집하는 수요도 가뭄에 콩 나듯 아주 적습니다. 한번은 패밀리 닥터가 환자를 모집한다는 정보가 있어서 부랴부랴 편지를 써서 컨택을 했는데 다행히 진료약속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방학 첫째날과 겹쳐 약속을 깜빡해버렸지요. 몇시간 후 병원에 전화해서 약속시간을 다시 잡을 수 없겠느냐 물으니 약속을 어긴 건 환자라면서 다른 환자에게 기회가 넘어갔다고 매정하게 끊어버리더라고요. 그러니까 진료약속은 사실 진료약속이 아니라 일종의 면접이었던 겁니다. 의사에게 선택을 받아야 진료가 가능한 시스템에 자괴감이 들어 패밀리닥터는 포기했습니다. 패밀리닥터가 있다고 한들 패밀리 닥터 역시 예약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관리를 받아야하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닥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더라고요.


캐나다는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이므로 캐나다 영주권이나 시민권, 취업비자를 가진 신분이라면 치과, 안과, 약품비용을 제외한 대부분의 의료 서비스는 무상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외국인의 신분인 경우에는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외국유학을 오실때 유학생 보험이나 학교에서 제공하는 보험이 꽤 중요합니다. 캐나다 약값 역시 저렴하지는 않습니다. 항생제 며칠분에 35불에서 45불정도 나왔습니다.


만일, 위급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는 대학병원의 응급실로 가게 되는데 주변에서 응급실 다녀오신 분들 대부분 하시는 말씀이 5시간에서 6시간 대기는 기본이고 진료비용도 1,000불은 기본으로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런던 시내에는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이 두 군데 있습니다. 공공의료이다 보니 응급실에서는 우선순위에 따라 치료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열이 많이 나서 간다거나 어디가 부러져서 갔다고 해서 우선적으로 치료해주지는 않습니다. 제 지인 중에서는 아이가 다리 인대가 늘어났는데 깁스조차도 해주질 않더라고요. 한국처럼 섬세하고 신속한 진료를 캐나다에서 기대하기는 힘든것이 사실입니다.


치과의 경우 만 12세 아동에게는 대부분의 치과 치료를 무상으로 해주는 시스템(스마일헬스케어)이 있긴 합니다만 저처럼 유학생 신분인 경우 보증인을 찾아 사인을 받아야 하는데요. 보증인은 주로 학교 선생님, 워크인 의사, 변호사 등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께 사인을 요청하면 케이스바이케이스로 어떤 선생님은 해주고 어떤 선생님은 거절하시더라고요. 제 경우에는 보험으로 처리중에 있습니다.


캐나다에는 헬스유닛이라고 우리나라의 보건소 같은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코로나 백신을 맞거나 아이들 예방접종을 합니다.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예방접종은 의무접종이라 무료이고 헬스유닛에서 편지로 고지를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어플이 있어서 아이들 예방접종을 알려주는 그런 시스템은 없는 것 같아요. 진짜로 편지로 알려줍니다. 요즘같은 시대에 종이로 된 편지로 예방접종을 고지하는 걸 보고 참...


가슴에 작은 혹이 있어 정기검진이 필요한 저로써는 캐나다 의료시스템이 정말 답답합니다. 워크인에 들러 초음파 검사를 예약해야 하는데 이 검사도 과연 언제쯤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만난 캐나다인들은 캐나다의 공공의료시스템에 대단한 자부심을 보이더라고요. 음...캐나다인들이 우리나라 의료 서비스를 경험하면 신세계라고 감동받을지도요...


아, 이런건 있습니다.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해서 캐나다에 사는 동안은 정말 아프지 말고 잘 지내야겠다는 절박함 말이죠. ㅎㅎㅎ


코로나에 한번쯤은 걸려야 내 면역에도 좋고 집단면역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걸려보니 진짜 독한 놈입니다. 후각이랑 청각이 빨리 정상으로 돌아와얄텐데 말이죠. 그래도 글을 쓸 체력이 생겨 정말 다행인듯 하네요. 아직 코로나 안 걸리신 분들은 꼭 피해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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