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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Dec 07. 2022

오늘의 안개

2022. 12. 6. 19시 7분경




초저녁부터 안개가 자욱하다.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아시아 푸드 마트를 가려고 현관문을 열고 나왔는데 망했다. 안개가 낀 도로를 운전하는 것은 비 오는 밤에 운전하는 것만큼이나 싫다. 새벽이나 아침의 안개는 조금 너그러이 받아들이지만 저녁의 안개에게는 야박한 마음이다. 안개는 기이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에게 있어서 초저녁의 안개는 '오늘의 안개'이지만 안개의 입장에서는 '안개의 오늘'이리라. 안개가 이제 막 오늘을 열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누그러진다. 오늘 꼭 장을 보아야 하므로 하는 수 없이 시동을 켜고 길을 나선다. 이런 날에는 보통 남편에게 SOS를 치지만 남편은 이번 주 내내 수업과 발표, 기말고사로 거의 초주검 상태이기에 나 홀로 용기를 쥐어짜내 본다. 이거슨 사랑?...


1년여 가까이 늘 다니는 길이건만 안개에 휩싸였다는 이유만으로 전혀 낯선 도시가 되어 버렸다. 여기는 어디이고 나는 또 어디에 있는 것인지 잠시 어리둥절해진다. 라디오 속 발성 좋은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이곳은 언제나 늘 낯설기만 한 캐나다의 작은 도시라는 걸 기억해낸다.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나를 둘러싼 세계는 모두 이곳에 익숙한데 나만이, 나의 가족만이 이 낯선 환경에 뎅그러니 놓인 것 같아 황망한 기분마저 들었더랬다. 시간이 흘러 점차 낯선 간판과 건물들, 거리와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곳은 내 고향, 내 고국은 아니기에 나는 그저 스스로 친숙해진 이방인일 뿐...


하지만 안개가 이 세계를 덮고 나니, 낯선 곳이 다시 한번 또 낯설어지는 순간 나뿐 아니라 안개에 갇힌 모든 사람들이 이곳을 낯설어할 거란 생각에 그만 이 낯섦이 친숙한 낯섦으로 치환되어 버린다.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공통된 낯섦은 개인에게 더 이상 공포가 아니다. 이런 식의 타협으로 잠시 잠깐 안개가 주는 기묘한 공포감으로 벗어나려는 나의 사고가 퍽 변태스러워 픽 웃음이 난다. 시장 보러 가는 길, 안갯속을 운전하면서 도로에 집중하지 못하고 나라는 사람에 여전히 갇혀 겹겹으로 생각을 쌓아 머릿속에 안개를 만들어 내는 인간이란 어찌나 복잡 미묘한지...


과거의 안개, 2022. 1월 어느 저녁에



오늘의 안개는 참 기이하다. 오늘의 안갯속을 헤매노라면(물론 운전 중이지만) 어제의 안개가 저절로 소환되기 때문이다. 안개를 마주하면 과거에 마주했던 안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피어오른다. 내게 있어 최초의 안개는 흑백 영화 '가스등' 그 자체이다. 5살 무렵에나 보았던 그 영화의 몽환적이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제대로 각인되는 바람에 안개를 만나면 영화 속 안개가 잔뜩 낀 런던의 한 거리가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안개로 시종일관 뿌옇고 답답한 거리처럼 여주인공의 기억은 자꾸만 희미하고 어뭉 하다. 사랑하는 남편이 실은 자신을 정신병자로 만드는 무서운 사람이었다는 사실보다 자기 자신을 계속해서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진정한 공포라는 것을 당시에는 너무 어려 이해하지는 못했다. '가스 라이팅'이란 심리학 용어도 이 영화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두 번째로 소환되는 안개의 기억은 2012년도 출근길의 안개다. 안개가 어찌나 심했는지 바로 앞의 자동차 뒷 트렁크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도로 위 차량들은 일제히 기어가고 있었다. 오전 9시가 다 되어 가도록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황사의 영향 때문에 안개는 누런색이었다. 앞 차와 부딪힐까 봐, 뒷 차가 나에게 부딪힐까 봐 전전긍긍하며 운전할 때 만난 안개는 짜증 그 자체였다. 공포스럽기보다는 회사에 지각한다는 사실, 지각해서 상사에게 지각의 사유를 지리멸렬하게 늘어놔야 한다는 사실, 지각은 내 탓이 아닌 안개의 탓이라는 사실, 안개는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사유임에도 눈치를 봐야 한다는 사실이 짜증으로 밀려왔다. 공포와 짜증, 그 두 감정 중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그래도 짜증이 좀 나으려나...?


세 번째로 소환되는 과거의 안개는 공포 그 자체였다. 몇 년 전 야근을 끝내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던 어느 겨울밤, 넓고 적막한 도로 위에 차 한 대도 만나지 못했던 그 새벽에 만난 안개는 마치 저승길로 나를 인도하는 것만 같았다. 차라리 부딪힐 걱정을 하더라도 차가 한대라도 지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로수 사이로 희끄무레한 물체가 보이는 것만 같아 소름이 돋고 뒷목의 털이 주뼛주뼛 섰다. 집으로 가는 약 15분 동안 나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그날 밤의 경험이 어찌나 고통스러웠는지 나는 그날 잠을 자지 못하고 이 시를 완성했다.




안개



속살을 헤치며 나아갈수록

겹겹이 미궁

터진 솜처럼 부풀어 오르는

의문

암흑으로 뒤덮인 밤

안개 낀 강변도로는

내 머릿속처럼

새하얗게 질렸다

이승이 맞는데 이 세상 아닌 듯

저승이 아닌데 저 세상 맞는 듯

수수께끼는 쌓여가는데

힌트 없는 스무고개처럼

무자비한 生

선명하게 반짝이는 것들이

그토록 아름다웠나

뒤늦은 깨달음은

발목 언저리에

고드름처럼 돋아나

되돌아가려는 순간

망각

동굴처럼 깊은 어둠 속에서

안개는 흰 피처럼 피어나

모호한 것들은 모두

공포라는 생명을 얻는다

자꾸만 안개가 짙어지는 강변도로는

무엇의 메타포인가

저승과 이승의 경계에는

늘 안개가 자욱하다지

저 먼 안드로메다 은하 근처에

우주의 온갖 고독을 빨아들인 블랙홀이

지금 이곳에

꾸역꾸역 게워낸 걸까

눈앞을 떠도는 가느다란 환상

손으로 흩뜨려 봐도

이내 파도처럼 밀려드는 거미줄

끈적끈적한 악몽처럼 나를 옥죄고

발끝에 닿은 까마득한 절벽

새처럼 날아볼까 잠시 망설이지만   


나는 어떤 순간에도 내 生의 주인이지 못했다




시로 공포의 감정을 토해 낸 덕분일까. 오늘 만난 안개는 그저 무섭기만 하지는 않는다. 내게는 '오늘의 안개'였고 내일이 되면 '과거의 안개'가 되겠지만 안개에게는 '안개의 오늘'이기에, 내일 아침 해가 뜨면 사라져 버릴 그에게 지금은 소중한 순간일 수 있기에, 그의 존재를 그저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제 나는 '안개의 오늘'에 대한 시를 써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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