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한국인이 살기에 꽤 불편한 나라다. 행정과 의료, 교육, 교통, 기타 각종 서비스를 따져 보면 한국보다 훨씬 불편한 나라임이 틀림없다.
한국의 의료와 행정 서비스는 세계 최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신속하고 수준도 높다. 캐나다는 영주권자와 시민권자에게 무상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접근성도 나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우리나라야 피부가 궁금하면 피부과, 관절이 아프면 정형외과, 배가 아프면 내과 등 전문분야로 가기만 하면 되지만 캐나다는 일단 워크인클리닉이라는 공통의료기관에 가서 먼저 진단을 받아야 피부과나 기타 전문과로 갈 수 있다.
교육 서비스의 경우 내용은 차치하고 일단 무상급식이 된다는 사실과 그 질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캐나다는 주정부에 따라 급식여부가 다르고, 급식이 된다 한들 유상급식이며 가격에 비해 나오는 음식은 피자나 감자튀김 정도이다. 아이들의 영양에 진심인 우리나라 급식을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그리워하는 이유다.
캐나다에서 세탁기나 에어컨이 고장 나면 한숨부터 나온다. 부품과 수리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건조기 손잡이만 교체했는데 거의 이십만 원 가까이 지불한 적이 있다. 만일 교통사고가 나면 한숨이 아니라 눈앞이 깜깜해진다. 보험회사가 일사천리로 해결해 주는 우리나라와 달리 사고가 나면 사고 당사자가 교통사고 담당 경찰서로 가서 신고해야 한다. 차가 많이 파손된 경우에는 수리 대신 폐차를 하고 새로 차를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리비가 새 차값이랑 맞먹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는 친절한 나라다.
캐나다 저가항공 비행기를 몇 번 이용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기내에서 비행시간 내내 보채고 우는 아이들이 있었다. 한 번은 4시간 내내 울어서 소리에 취약한 나는 솔직히 귀가 아팠다. 하지만 기내에서 단 한 사람도 아이의 울음소리에 짜증을 내거나 불편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일부러 기내의 사람들을 살펴보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다. 다른 비행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울고 보채더라도 어느 누구 하나 아이나 부모를 향해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캐나다는 분명 내 기준에서 불편한 나라지만 가난한 사람과 장애를 가진 사람, 어린아이 등 사회적 약자에게는 친절한 나라다. 편리한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런 이들에게 친절하다는 건 내가 사회적 약자가 아니어도 느낄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런던은 버스 노선이 꽤 불편하다. 버스 정류장은 조악하고 노선도 몇 개 되지 않는다. 정류장은 워낙 많아서 자동차로 30분이면 갈 거리를 거의 두 시간에 걸쳐 가기도 하고, 어떤 기사는 자기 마음대로 정류장을 지나치기도 한다. 그런데 이곳은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이다. 휠체어를 탄 승객이 보이면 일반 승객보다 우선적으로 장애인을 먼저 버스에 태운다. 버스기사는 휠체어가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한 후 모든 승객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할 때 출발한다.
가끔은 냄새가 지독한 노숙인이 버스에 타기도 한다. 정말 숨 쉬기 힘들 정도로 냄새가 나지만 그런 승객의 탑승을 거부한 기사도, 그런 모습에 찡그리는 승객도 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의 반에는 지적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다. 큰 아이는 가끔 그 친구와 조를 이뤄서 과제를 수행하는데 그 친구가 잘 못해서 점수를 낮게 받기도 한다. 나는 큰아이에게 그 친구를 잘 도와주라거나 괴롭히지 말라는 등의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는다. 큰 아이는 그 친구가 불편하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과 다른 그 친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같은 조가 되어도 그러려니 하고 그냥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나는 캐나다 영주권자도 시민권자도 아니지만 소득이 없는 유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캐나다 정부로부터 아이들의 운동시설 사용료나 YMCA 수강료를 절반정도 할인받고 있다. 이는 가난한 아이들도 체육시설을 마음껏 이용하도록 하는 정부의 배려이다.
이상희 작가님의 남편은 시각 장애인이다. 나 또한 대학시절 첫사랑이 시각 장애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 시각장애인복지관 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자원봉사자 기본 수업으로 몇 시간 동안 눈을 감고 거리를 걸었는데 죽는 줄 알았다. 무섭기도 무서웠지만 평소 내가 모르는 장애물이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장애인의 시선에서 조금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장애인들이 정부나 지자체를 대상으로 가끔 시위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정부당국이 그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기 위해 지하철 점거 시위 등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몇몇 일반 시민들이 몇 시간의 불편함 때문에 장애단체를 비판한다. 평생을 불편함과 싸워가야 하는 장애인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단 몇 시간의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그분들을 위해 싸워 줄지 모르겠다.
이상희 작가님의 글 말미에는 그분들을 도울 수 있도록 계좌번호가 적혀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바를 지금 하는 중이다. 하나는 글로써 내 도리를 다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은 금액이라도 도움을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일반 시민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만큼이나 캐나다처럼 소외된 이들에게 조금 더 친절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