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무생각

구구단을 거부한 아들

by 김정은

며칠 전 둘째 아이와 방에 누워 이런저런 수다를 떨던 중이었다. 주제라고 해봐야 학교에서 어땠는지,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은 잘 알아들었는지, 영어는 조금 늘었는지,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지 등 내 기준에서는 중간 점검 같은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그날 수학은 무얼 배웠는지, 사회는 또 무얼 배웠는지 기억나는 대로 이야기한다.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는 영어를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던 아이가 지금은 제법 알아듣고 있어서 대견하기도 하고, 예전보다 학교생활에 대한 정보를 그럭저럭 얻고 있다.


그러던 중 퍼뜩, 구구단이 생각났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초등학교 3학년이기에 둘째는 벌써 구구단을 떼고도 남을 때였다. 캐나다는 구구단을 가르치지 않는다. 구구단뿐만 아니라 수학공식도 잘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수학을 중상 정도로 했던 큰 아이는 이곳에 와서 수학을 가장 잘하는 학생이 되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한국으로 돌아갈 때 슬며시 걱정되기도 하지만...


생각난 김에 그날만은 구구단을 외우게 해야겠다 싶어 가장 쉬운 2단부터 알려주었다. 그런데 아들이 갑자기 구구단을 꼭 외워야 하냐며 나의 계획에 살짝 태클을 건다.


"엄마, 구구단 꼭 외워야 해?"

"왜?"


이유를 물어보니 머릿속으로 계산할 수 있는데 꼭 구구단을 외워 풀어야 하냐는 것이었다. 오호라, 그래? 내가 알기로 우리 아들의 사칙연산 암산 능력이 그다지 뛰어나진 않는데...


그래서 아이에게 9 곱하기 9를 한번 계산해 보라고 했다. 아이는 눈을 위로 치켜뜨고는 머릿속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아이가 대답했다. 94? 아닌가, 93? 나는 웃음이 났다.


"정답은 아니지만 얼추 비슷하네. 어떻게 계산했는데?"


"9 더하기 9는 18이고, 거기에 2를 더하면 20, 그리고 7이 남으니까 27...'


'아하.'


나는 아이가 계산하는 과정을 설명 듣고 구구단을 구태여 외울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캐나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이유가 뚜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곳 캐나다에서 수학 공부는 정답을 찾아내는데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정답을 어떻게 찾아내는지 과정에 더 포커스를 맞춘다. 수학을 잘 풀어내는 것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수학을 배우는 것이다.


캐나다 수학 시간에 또 놀란 것은 계산기 사용이다. 초등 고학년 아이들은 모두 계산기를 가지고 다닌다. 우리 때는 암산으로 했을 덧셈, 뺄셈, 나눗셈, 곱셈을 간단히 계산기로 휘리릭 해결해 버린다. 예전의 나였더라면 쉬운 문제를 계산기로 해결하려는 캐나다 교육 과정에 대해 안일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웹개발을 공부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정보가 부족했던 과거에는 정보를 최대한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유리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상용화되지도 않았고 스마트폰도 없었기에 머릿속에 최대한 정보를 꽉꽉 욱여넣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서든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과거의 방식을 꼭 고집해야 하나 싶다. 넘쳐나는 정보의 시대에서는 필요로 하는 정보를 신속하게 습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7학년을 다니는 큰 아이 역시 과제를 보면 학교 커리큘럼 의도가 조금 파악이 된다. 창의성과 문제해결능력.

시험보다는 프로젝트를 많이 내주는데 주제도 스스로 정하고, 방법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최근에 큰 아이는 <팟캐스트> 제작하기 때문에 곯머리를 썩혔다. 자신이 직접 이야기를 창작해서 팟캐스트처럼 녹음을 해야 한다는 거다. 큰 아이는 몇 주 내내 이야기를 만들어내려고 애를 썼다.


또, 최근에는 이곳 런던에 살다가 에드먼턴에 직장을 구해 이사를 가야 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보고서로 쓰는 프로젝트를 완료했다. 큰 아이는 누구 도움 없이 혼자서 구글링을 해서 에드먼턴까지 가는 교통수단과 임대료, 사는 동네, 직업, 월급, 이사 방법 등을 정해 보고서로 만들어 발표했다. 정답은 없는 프로젝트이다. 자신의 힘으로 방법을 찾아내는 것, 그것을 알려주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둘째 녀석이 9 곱하기 9가 81이라는 정답을 맞추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스스로 81을 계산해 낼 것이라 믿는다. 단순히 기계적으로 9 곱하기 9는 81이 아니라 이렇게도 계산해 보고, 숫자를 저렇게도 조합해 가면서 자기 나름대로 답을 찾아 나갈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당당히 구구단을 거부한 둘째가 꽤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나는 아이들이 세상에 나아가서도 정해진 답을 찾기보다 스스로의 정답을 찾아가는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아이가 구구단의 원리를 터득했으니 고학년이 되면 빠르게 계산할 줄 알아야 한다는 주위의 조언에 따라 조만간 구구단을 외우게는 할 예정이다.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게 뭐라고 힐링이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