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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Nov 12. 2023

스무 가지 맛이 나는 인문교양

 하광용 저, <테이크아웃 유럽예술문화>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인문교양 책을 펼쳤다. 정확히는 책장을 펼쳤다기보다 전자책이라 핸드폰 화면을 넘겼지만. 


 출간되었을 때 읽으려고 했지만 학교 수업으로 머리가 이미 과포화 상태라 인문교양 책에 차마 도전하지 못했다가 몇 달 만에 인문서적이 읽고 싶어진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바로  브런치 시작하던 때부터 좋은 글벗이 되어 준 마하 작가님의 <테이크아웃 유럽예술문화>이다. 


 나는 마하 작가님에게 종종  '브런치 백과전서파의 수장'이라고 칭한다.  넓고 깊은 지식과 다방면의 관심사, 그리고 그 관심사에 대한 몰입과 집중을 보건대 18세기 프랑스 지식인 집단인 백과전서파의 21세기 한국인 패치이기 때문이다. 혹시 모르지. 전생에 백과전서파의 일원이었을지도.


 브런치에서 작가님을 발견하게 된 것은 아래의 글 때문이다. 


https://brunch.co.kr/@kay68/115


 이 글에 뿅 반한 나는(분명히 합니다. 작가님께 반한 것이 아닙니다. 글에 반한 겁니다. 흠흠.) 이때부터 마하 작가님을 구독하고 글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른 글도 정독하며 작가님에게서 나와 비슷한 변태(?)의 향기를 느꼈다. 좋아하는 뭔가에 한번 꽂히면 바닥이 보이도록 파고 또 파는 경향이 있는데 마하 작가님은 나보다 훨씬 더 마니악하고 딥하게 파는 분이라는 걸 느꼈다. 


 그리고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바로 필명. 문체는 분명 남성적인데 필명은 마하라니. 그림과 클래식을 좋아하는 취향으로 봐서 마하는 분명 고야의 그림 제목 '마하'에서 따 온 것이 분명할 텐데. 아니면 속도 용어인 마하이려나? 이 부분에 대한 작가님의 해명을 기다린다. 


프란시스 고야 <옷을 입은 마하>...자매품으로 옷을 벗은 마하도 있음


 아무튼 서론이 길었지만... <테이크아웃 유럽예술문화>를 읽으며 오래간만에 전두엽이 마구마구 활성화되는 걸 느꼈다. 유튜브 쇼츠 때문에 도파민 중독이 심각한 나의 뇌가 오래간만에 신나서 '에헤라디야'를 외쳐대고 있었다.


 역사와 문화, 예술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재밌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재밌는 이야기는 내가 몰랐던 이야기이다. 바흐와 헨델이 동시대 사람이라는 건 알았지만 같은 의사에게 수술을 받고 죽은 건 처음 알았다. 두 사람 다 백내장을 앓았고 이를 같은 의사에게 치료받았는데 두 사람 모두 수술 후유증으로 죽은 것이다. 현대 음악의 기초를 다진 두 대가를 동시에 보내버린 이 돌팔이 의사의 이름은 테일러다. 내 절대 잊지 않으리.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길버트 카플란의 이야기도 꽤 흥미로웠다. 나는 말러리안까지는 아니지만 그의 교향곡 5번에 사로잡혀 스물두 살의 꽃다운 나이에 1년 내내 피폐해진 경험이 있다. 말러의 음악은 정말 피폐의 끝판왕이라 한번 빠지면 마약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는 데 성공한 기업인인 길버트 카플란은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에 빠져 결국 30년간 이 작품만 전문으로 지휘하는 지휘자가 되었다. <부활>은 클래식을 좋아하는 나도 넘기 힘든 방대하고 장엄하고 어려운 교향곡으로 이 글을 읽고 카플란의 지휘로 이 곡을 시도했는데 5분 만에 결국 끄고 말았다. 하지만 40살에 새로운 도전을 해서 그 후 30년간 말러 스페셜리스트가 된 그의 삶이 무척 부럽고 멋있다고 생각된다. 


 색소폰에 대한 글에서는 색소폰이 갖는 금관과 목관의 특징을 설명하려다 결국 금관악기와 목관악기 자체에 대해 알려주는 작가님을 보고 이 분은 역시 백과전서파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역시 변태...


 그림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클래식 보다 훨씬 흥미롭다. 솔직히 간지러웠던 부분을 누군가가 등긁개로 딱딱 긇어준 기분이랄까. 우선, 라파엘 전파. 나도 늘 궁금했다. 왜 이 사조는 라파엘전파라고 이름 붙였을까. 그리고 또 하나 현존하는 그림 가운데 가장 비싼 그림은 어느 화가의 작품일까. (정답은 책에서 확인하시길) 하지만 이런 흥미로운 주제를 따라가다 보면 놀라운 지식을 얻게 된다. 이 호기심 넘치는 질문이 와이너리와 건축으로 자연스럽게 뻗어나가고, 라파엘 전파와 사실주의, 프랑스 벨 에포크 시대까지 아우른다. 


 작가님과 내가 취향이 정말 유사하다는 건 철학과 문학에서 확실해졌다. 내게 있어 늘 가장 관심이 많은 철학자는 니체와 사르트르이고 가장 알고 싶은 작가는 바로 로맹 가리인데 작가님이 이 부분을 심도 있게 다뤄주었던 것이다!!! 에밀 아자르이자 로맹 가리였던 그의 책 <자기 앞의 생>을 읽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로맹 가리가 권총으로 자살한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그러나 작가님은 그가 자신의 생을 어떻게 끝냈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 '왜' 그렇게 끝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정정해 준다. 그 이유 역시 책에서 확인하시길.


 로맹 가리뿐 아니라 예이츠와 투르게네프를 다룬 장을 보며 작가님이 소위 말하는 메이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잘 아는 작가들을 다룬 것이 아니라 잘 알려진 듯 하지만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발굴했다는 걸 느낀다. 예이츠는 유명한 시인이지만 릴케나 바이런, 보들레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읽히는 시인이고, 투르게네프 역시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에 비하면 역시 상대적으로 덜 읽히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보다 투르게네프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 


 이 외에도 흥미로운 주제가 정말 많다. 프랑스 대통령과 미투, 제인 에어 속 미친 여자이자 조연으로 언급된 버사 메이슨 이야기까지. 


 이 책은 클래식 음악, 악기, 미술, 철학, 문학, 지리, 정치 등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가장 좋은 부분은 작가님의 통사적인 시각과 통찰이었다. 한 곳에 치우치지 않는 작가님의 균형 감각을 평소에도 좋아하는데 이는 독자에게 사유하되 자신의 시각을 강요하지 않아 읽을 때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또, 책의 제목처럼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듯 내가 원하는 주제를 선별해 골라 읽는 재미가 있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작가님의 문체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듯 자연스러워 술술 읽히기도 한다. 


 책의 대부분은 작가님의 브런치에서 예전에 읽었던 내용이지만 다시 읽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보았다. 그리고 희한하게 브런치에서 읽는 것보다 책으로 읽으니 가독성이 훨씬 좋았다.


 아, 그리고 작가님이 이 책에서  <백과전서파>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어찌 아니 다루겠는가. 자아, 이쯤 되면 작가님은 해명하시길 바랍니다. 백과전서파 중 누구의 후생이십니까?





아래는 책 구입 좌표입니다. (작가님, 내용에 비해 가격이 너무 저렴한 것 아닙니까.)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37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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