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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Jun 19. 2024

재스퍼의 보물, 멀린 호수

로키 산맥 여행 4일 차

4일 차 일정: 밴프 숙소 출발 ----> 애써 베스카 폭포 ---->  멀린 협곡 -----> 멀린 호수 -----> 재스퍼 시내에서 저녁 및 관광 -----> 재스퍼 숙소 도착



숙소인 선왑타 폴 로지에서 조식을 간단히 먹은 후 오늘의 일정을 위해 재스퍼 시내로 출발했다. 재스퍼 시내 초입에 애써 베스카라는 폭포가 있어서 들르기로 했다. 이 폭포는 폭포 주차장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접근성이 좋았다.  


폭포의 물은 밴프에서 재스퍼로 흐르는 애써 베스카 강물

폭포는 시원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규모에 비해 수량이 많으니 굉음이 꽤 컸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비하면야 규모는 소소하지만(나이아가라를 한번 보고 나면 이리된다) 로키에 와서 드라이브 중 단조롭게 강물만 흐르는 모습만 봐서 그런지 기암괴석 사이로 거칠게 떨어지는 폭포에서 새삼 남성적인 로키의 매력을 엿볼 수 있었다. 


오늘은 멀린 캐년(협곡)과 멀린 호수를 관광하는 날. 


멀린 협곡은 재스퍼 시내에서 멀린 호수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기 때문에 이 날 아침 멀린 협곡과 멀린 호수 두 군데를 보는 것으로 일정을 정했다. 


일정을 짤 때 이디스 캠벨을 갈까, 멀린 협곡을 갈까 꽤 고민했었다. 결국 장소를 결정하지 못하고 여행 당일의 사정에 따라 장소를 정하기로 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두 군데를 꼭 들르고 싶었다. 하지만 로키 관광은 장소마다 워낙 떨어져 있다 보니 시간 소요가 많았다. 밴프에서는 존스톤 협곡이, 재스퍼에서는 멀린 협곡이 유명한데 사진으로 보면 존스톤이 훨씬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밴프에서 일정이 안되어 결국 존스톤 협곡을 포기해야 했다. 로키까지 와서 협곡을 보지 못하고 가면 많이 아쉬울 것 같아 결국 이디스 캠벨은 포기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협곡이란 단어가 꽤 마음에 끌리기도 했다. 얼마나 좁고 험하기에 협곡이란 단어를 붙였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결론적으로 협곡을 관광할 땐 시간 여유를 많이 두어야 한다. 협곡 길이가 워낙 길어서 우리 가족은 협곡에서만 네 시간 넘게 걸었다. 멀린 협곡 관광의 재미는 깊게 파인 협곡 사이로 에메랄드 색상의 맑은 물이 세차게 흐르는 걸 보며 트레킹 하는 데 있다. 다만, 협곡을 따라 내려갈 땐 몰랐는데 나중에 다시 올라가려니 생각보다 아래로 깊게 내려간 것에 놀랐다. 다시 걸어 올라오는데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힘들었다. 헥헥.


하지만 협곡의 장엄한 아름다움에 푹 빠져 트레킹 하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로키 산맥의 식생은 꽤 단순하다. 하지만 그 단순한 침엽수림 덕분에 로키의 웅장함과 더불어 군더더기 없는 풍광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협곡을 걸을 때 그 아름다움이 이곳에 응축되어 있음을 느꼈다. 묵직하고 둔탁한 바위산 위에 융단처럼 깔린 풀, 그리고 그 위로 뾰족뾰족하게 솟은 침엽수림은 마치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신이 꾸민 거대한 정원처럼 보였다. 


멀린 협곡에서 만난 도라지 닮은 초롱꽃


아침 10시부터 시작된 트레킹은 점심을 훌쩍 넘겨 어느덧 2시가 되었다. 다음 목적지인 멀린 호수를 가기 전에 우리 가족은 협곡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가격은 조금 셌지만 음식이 맛있었고, 무엇보다 트레킹 후에 마시는 맥주 맛이 기가 막혔다.  


협곡 주차장 옆에 위치한 레스토랑


배도 찼으니 이제 다음 목적지로 떠날 시간. 구글 지도에서 멀린 캐년에서 멀린 호수까지는 약 45분이 소요된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가기 때문에 시간은 훨씬 더 많이 소요된다. 멀린 호수 가기 전 메디신 호수가 있기에 잠시 구경한 후에 가기로 했다. 하지만 멀린 호수의 유람선 시간이 빠듯해 과연 메디신 호수를 제대로 볼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멀린 협곡에서 멀린 호수까지의 이동 경로


멀린 협곡과 멀린 호수 가운데 위치한 메디신 호숫가 근처로 지나가는데 아래 사진처럼 나무들이 새까맣게 죽어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검색해 보니 전년도에 재스퍼에 큰 불이 났었다. '22년도에 캐나다에서 크게 산불이 났었는데 로키 산맥도 그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던 모양이다. 죽어 있는 나무들을 보니 마음이 아팠지만 나무 틈 사이로 풀들이 빼곡하게 자라나고 있어서 자연의 회복력에 감탄을 하며 길을 달렸다. 


황량해진 메디신 호수


메디신 호숫가 주위는 나무가 온통 불에 타 있었다. 호수도 나무 빨(?)을 받는지 에메랄드 빛을 내고 있음에도 메디신 호수는 퍽 황량해 보였다. 옥빛의 물빛이 처량해 보일 지경이었다. 


재스퍼는 밴프보다 더 깊고 울창해서인지 밴프에서 보지 못한 야생동물과 종종 마주쳤다. 로키에는 곰과 엘크, 순록이 주로 서식하는데 밴프에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곰과, 엘크, 순록을 재스퍼에서 모두 만났다. 엘크는 특히 덩치가 무척 커서 차 안에서만 감탄하며 보았다. 




드디어 멀린 호숫가에 도착! 


차를 주차하고 부랴부랴 선착장으로 달려갔지만 예약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해 유람선은 이미 떠난 상태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 시간 후인 저녁 6시에 이날의 마지막 유람선 운행(매일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이 남아 있었다. 우리 가족은 호수를 정면으로 보는 아름다운 카페에 들어가서 시원한 음료수로 목을 축였다. 카페에 앉아 바라보는 멀린 호수의 풍경은 광활한 로키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멀린 호숫가에도 숙소와 카페, 레스토랑이 있다.
멀린 호수 선착장


멀린 호수는 언뜻 보아도 루이자 호수보다 규모가 더 커 보였다(찾아보니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빙하 호수라고). 호수라기 보단 꼭 피오르드의 바닷가처럼 보였다.  호수 주위는 첩첩산중으로 산 봉우리에는 만년설이 쌓여 있었다. 저녁 무렵이었지만 여름날의 로키는 여전히 한낮처럼 환했다. 


6시가 되고 드디어, 우리 가족은 작은 유람선을 타고 멀린 호숫가에서 반드시 가야 할 작은 섬, 스피릿 아일랜드로 향했다. 


이것은 바다인가, 호수인가.
스피릿 아일랜드의 작은 선착장
스피릿 아일랜드 주위의 신비로운 광경은 사진으로 다 담기지 않았다


스피릿 아일랜드에서 가볍게 트레킹(10여분 소요)을 하며 섬 주변과 멀린 호수 풍광을 구경했다. 규모가 큰 멀린 호수 안에 이렇게 아기자기한 풍경을 가진 섬이 있는 것이 신기했다. 유람선으로 다시 멀린 호숫가 선착장으로 돌아온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기 위해 재스퍼 시내로 다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재스퍼 시내에 우뚝 솟아있는 인디언 토템 기둥
남편은 식당가를 검색하고, 아이들은 각각 휴대폰으로 노는 중


재스퍼 시내는 밴프 시내에 비해 규모가 엄청 작다. 그런데도 한식당이 있어서 우리는 다른 고민 없이 곧장 한식당으로 향했다. 놀라운 건, 유일하게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는 곳이 바로 한식당이었다는 것. 식당 안에도 외국인들이 바글바글해서 한식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약 40여분 대기 끝에 드디어 식당에 입성. 각자 취향대로 메뉴를 시킨 우리는 모두 폭풍 흡입했다. 아 ㅠ.ㅠ 고단한 여행을 위로해 주는 건 역시 한식이었다는 거~~. 뜨끈한 국물에 흰쌀밥을 말아먹으니 비로소 진짜 식사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재스퍼 시내를 간단히 구경하고, 늦은 저녁을 먹은 후 우리 가족은 다시금 40여분 차를 타고 숙소인 선왑타 폴 로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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