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시간의 기나긴 비행 끝에 시부모님이 드디어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 도착하셨다. 남편이 도착 두 시간 전에 미리 공항에 가서 대기했다. 집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부모님 만났는데 캐리어 하나를 분실하셨대."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싶어 나는 잠시간 할 말을 잃고 눈을 깜빡거렸다. 3주간의 캐나다 방문을 위해, 그리고 로키 산맥과 퀘벡 여행 등을 위해 꼼꼼하게 짐을 싸고 또 싸셨을 텐데 캐리어가 없어졌다니 시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허탈하고 황망할까 싶어 좌불안석이 되었다.
차라리 옷가방이 분실되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옷은 나와 남편의 옷을 빌려 드리고 필요하면 캐나다에서 구입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부모님께서 에어캐나다를 타고 오셨기 때문에 분실물을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사실 거의 없었다. 당시는 에어캐나다가 분실물 사건 사고 이슈가 좀 많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 시간 후에 잃어버린 캐리어를 찾았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자신의 가방인 줄 착각한 다른 승객이 가방이 바뀐 걸 알고 공항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혹시나 싶어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모님과 그 승객이 만날 수 있었다. 휴우.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들과 집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두 시간 후. 드디어 부모님이 런던 우리 집에 도착하셨다. 오랜만의 가족 상봉은 언제나 행복한 법. 부모님을 뵈는데 막 눈물이 다 나왔다. 나와 시어머니는 보자마자 얼싸 부둥켜안았다.
짐가방 가득 챙겨 오신 한국 식품들. 친정 부모님이 시댁으로 보내주신 것까지 같이 가져와 주셨다.
시차 적응을 위해 이틀간 우리 집에서 쉬신 후 런던에서 한 시간 거리인 해밀턴 공항으로 향했다. 런던에서 캘거리로 가는 비용보다 해밀턴에서 가는 비용이 훨씬 저렴했고, 토론토로 가지 않아도 되니 여러모로 이 공항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했다.
캐나다 국내용 저가항공이라 비행기 값은 저렴한 대신 수화물 하나당 왕복 16만 원이라는 요금이 붙기에 우리는 짐을 최소화했다. 대기시간 동안 공항 내 작은 카페테리아에서 커피와 음료, 샌드위치를 시켜 온 가족이 간단히 요기했다.
비행기에 오르려는데 혹시나 하고 내 가방을 뒤지다가 노트북이 없는 걸 발견했다. 오 마이갓! 검색대에 노트북을 그대로 두고 온 것이 기억난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부리나케 검색대로 달렸다. 공항이 작아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토론토 국제공항이었으면 검색대로 달려가더라도 최소 20여분은 걸렸을 텐데 검색대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 비싼 맥북은 검색대 직원이 잘 보관 중이었다.
해밀턴 공항의 유일한 식당
드디어 비행 시작! 구름을 떼어먹으면 어떤 맛이 날까 궁금해지는 비주얼.
캘거리의 모습... 숲이 많은 런던과 사뭇 다른 모습
4시간 비행 끝에 캘거리 공항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예약해 둔 렌터카를 픽업하러 향했다. 공항 내 렌터카 회사 사무실이 주욱 늘어선 건물에 들어간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처럼 차를 예약한 관광객 줄이 끝을 보이지 않고 늘어서 있었다. 7월 말, 극 성수기에 캘거리에 온 우리는 렌터 카 픽업하는데만 두 시간 넘게 대기해야 했다.
캘거리 공항에서 찍은 귀연 두 녀석. 한국은 새벽 6시 무렵이라 어머니는 시차 때문에 퍽 고생하셨다.
캘거리에서 밴프 시내까지는 약 두 시간 넘게 걸리는데 차를 픽업한 시간이 저녁 6시. 밴프에 도착하면 밤 8시가 넘어 상점이 문을 닫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캘거리 시내 한식당에서 저녁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멀지 않은 곳에 닭갈비가 나오는 식당을 구글로 검색해서 그곳에서 우선 배를 든든하게 채웠다.
여행의 시작은 든든하게 배를 채우는 것부터!
드디어 밴프로 출발! 커다란 GMC 차량에 몸을 싣고 드디어 우리 가족은 로키산맥으로 향했다. 캘거리와 밴프 사이에 있는 작은 도시 캔모어 근방이 이르자 슬슬 산맥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 보이는 산맥... 혹시 로키 산맥인가 싶어 이제 곧 도착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한참을 달려도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밤 아홉 시가 넘었지만 밖은 여전히 환했다.
드디어 로키 산맥이 성큼 우리에게 다가왔다. 내가 캐나다에 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던 로키를 드디어 직접 대면하게 되니 마치 짝사랑남을 마주한 것처럼 심장이 두 근 반 세 근 반 뛰어댔다.
밤 열 시에 밴프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한 우리는 입구에서 국립공원 티켓을 바로 구입할 수 있었다. 숙소가 있는 어느 이름 모를 산의 중턱까지 30분가량 오른 후(이때부터 귀가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호텔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체크인을 한 뒤 다시 호텔의 밴을 타고 다시 10여분 정도 산 정상으로 올랐다.
열한 시가 다 되어가니 그제야 사방이 캄캄해졌다. 주위가 너무 어두워 어디가 어딘지 모른 채로 우리 가족은 모두 숙소로 들어가 그대로 뻗었다. 밴프 여행의 첫째 날은 그렇게 이동으로만 보내야 했지만 석양을 바라보며 처음 만난 로키는 말없이 우리 가족을 환영해 주고 있었다.
첫째 날 총 이동거리: 3,486Km / 총 이동시간(대기시간 제외): 7시간 30분
런던에서 해밀턴 공항 이동경로
해밀턴 공항에서 캘거리 공항 이동경로
캘거리 공항에서 밴프 시내 이동경로
밴프 시내에서 숙소인 선샤인 마운틴 로지까지 이동경로
* 밴프 여행 시 팁 - 관광지간의 이동거리가 많고 유명 관광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관광지에는 카페나 식당이 없기 때문에 라면, 햇반, 고추장, 김, 고추참치 등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식품을 챙겨가는 것이 좋다. 특히 어른들을 모시는 여행에서는 하루 한 끼는 한식으로 챙겨드려야 지루한 캐나다식을 견딜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