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은 Jun 22. 2024

느슨할 때 잘 채울 수 있는, 관계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들었던 생각은 '인구밀도가 상당히 느슨하다'였다.


위로 솟은 빌딩은 대도시 토론토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나마도 한국처럼 빌딩 숲이라 느껴질 만큼 빽빽한 느낌은 없었다. 토론토에서 빠져나오니 도로 주위는 그야말로 탁 트였다. 시야에 걸리는 굴곡 없이 땅은 지평선 끝까지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한때 밀이나 콩 따위가 심겼을 밭은 걸어서 관리할 수 있는 넓이가 아니었다. 드론이나 헬리콥터로 농약을 뿌려야 할 만큼 밭의 넓이는 어마어마했다.


밭 주위에는 영화 <로빈 후드>에서 보았을 법한 숲들이 촘촘하게 놓였고, 숲이 아닌 곳은 대부분 잔디가 깔려 있었다. 가끔은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도로와 함께 뻗어 있었다. 집은 아주 드문드문 보였다. 그러니 길 가에서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걸어서 다닐 만한 규모가 아니기에 사람들은 모두 발 대신 차를 끌고 목적지로 향했다.


캐나다에서 크기와 규모로는 15위 안에 든다는 도시 런던의 첫인상은 '황량하다'였다. 물론 도착한 때가 한겨울이었으니 더 그랬겠지만 주로 흰색과 갈색, 회색으로 칠해진 목조주택의 색상은 잘 튀지 않는 뉴트럴 톤인 데다 주택의 디자인이 모두 고만고만해 보였다. 숲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도시 곳곳에 강이 흐르고 숲이 많았지만 겨울이라 초록색이 보이지 않았고, 길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어 여기가 진짜 사람이 사는 곳인지, 영화에 나오는 좀비 도시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어떤 장소를 가장 활발하게(active) 만드는 건 아름다운 건물과 청량한 수목일 수도 있지만 캐나다에 와서 보니 '사람'과 같은 동물이 없으면 지구는 꽤나 쓸쓸하게 아름다운 식물원 같겠구나 싶었다. 처음엔 이런 '사람 없음'이 어색했다. 어딜 가나 사람에 치이는 한국에서 살던 나로서는 이 느슨한 인구밀도가 낯선 걸 떠나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가끔 커다란 쇼핑몰에 가더라도 사람에 치인다는 느낌을 여기에서 받은 적은 별로 없었다. 런던에서 가장 핫플레이스라는 쇼핑몰인데도 평일에 가면 늘 한산했고, 어쩌다 세일 시즌이 되면 그나마 사람들이 좀 보이지만 우리나라 백화점에서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인구 밀도를 이곳 쇼핑몰에서 경험한 적은 없었다.


여름이 되자 런던 곳곳에서 다양한 축제가 열렸다. 첫 해에는 6월 말에 열리는 불꽃놀이를 처음으로 구경하러 간 적이 있었다. 불꽃놀이는 캐나다데이를 기념해서 커다란 교회 앞마당에서 열렸다. 처음에 장소에 도착했을 때 널찍한 광장과 잔디밭을 보고 교회가 아니라 어느 공원인 줄 알았다. 그리고 광장에 수 천명의 사람이 모여 있는 걸 보고 비로소 런던에 사람이 많이 살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한국에서 살 때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가면 늘 피로감을 느꼈던 나로서는 오히려 몇 개월 만에 북적거리는 인구를 보니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무대 위, 록 밴드 앞에 모여 음악에 열광하는 사람, 푸드 트럭 앞에서 긴 줄로 늘어서 있는 사람, 캠핑 의자나 돗자리를 가지고 와 가족 단위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니 문득 '사랑스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친구, 가족과 친지라는 관계의 홍수 속에서 40년 넘게 살아왔던 나는 한때 인간관계에 지리 멸렬함을 느꼈었다. 특히 직장에서 만나는 수직상하 관계나 승진을 위한 경쟁 관계에 처하게 되면 고통은 더 가중되었다. 직장이라는 사회에서는 수평 관계보다는 어쩔 수 없이 수직 관계가 주를 차지하게 되는데 가끔 인성 파탄이 의심되는 상사를 만나게 되면 그 상사와 헤어질 때까지 직장 생활은 괴로움 그 자체로 변하기도 했다. 물론, 마음을 나누고 의지가지 하는 친한 동기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빡빡하고 퀘스트 레벨도 높은 직장에서 간신히 숨을 쉬며 견뎌낼 수 있었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서 만나 형성되는 관계 역시 피상적일 때가 많았다. 큰 아이가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학부모 단톡방에 초대된 일이 있었다. 거기에서 만난 몇몇 극성 엄마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컸던 나는 여름방학이 되면서 단톡방을 결국 나오고 말았다. 그 속에는 '내 아이의 진정한 행복'이라는 가면을 쓴 학교와 교사, 심지어 자기 자녀에 대한 갑질이 난무했다. 때론 지나친 모성애가 엄마라는 존재를 얼마나 폭력적으로 만들게 되는지 확실하게 경험했달까.


아이 친구들의 엄마들과 자연스레 가까워진 적도 있긴 했다. 서로 육아의 고충을 토로하고, 함께 놀러 가며, 가끔은 집에 모여 브런치와 함께 수다를 즐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대화의 주제는 늘 똑같았다. 남편과 시댁을 흉보거나, 집 값에 대한 비교(당시 살던 아파트 단지는 다른 곳보다 집값이 많이 오르지 않았다) 라거나, 유치원 담임교사에 대한 불만족 같은 것이었다. 결국 그 관계도 아이들 싸움이 엄마들 싸움으로 번져 끝이 났다. 나는 그 후로 학부모 모임이나 아이들 친구 엄마 모임 등의 동네 모임은 지양하게 되었다.


어릴 때의 진짜 친구들은 모두 전국으로 흩어져 각자의 가정을 꾸미고 살기에 속 마음을 깊게 풀어놓고 대화를 나눌 관계는 더욱 요원해졌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친구 만들기가 참 쉽지 않다는 데에 씁쓸함마저 들었다. 관계는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많은데 이상하게 외롭단 생각이 들었다. 같은 외모와 같은 역사, 같은 사회적 맥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도 모두 속으로는 동상이몽이란 생각이었다.


그러다 인구밀도가 낮은 캐나다에 와서 보니 이건, 사람 자체를 잘 만나지 못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어쩌다 와글와글 몰려있는 사람들을 보면 반갑기까지 했다. 학교에 다니면서는 세계 곳곳에서 유학 온 국제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또한 한국에서는 경험해 볼 수 없는 신선한 인간관계였다.


사람과 사람 간에, 가족과 가족 간에, 관계와 관계 사이에 물리적으로 널찍한 공간이 존재하면 이것이 심리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나는 한동안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내 가족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밖에 없는 캐나다식 자발적 고독을 꽤 좋아하게 되었다. 관계에 꽤 지쳐있던 나는 어디엘 가든 적당히 이방인인 내 존재로 인해 오히려 자유를 맛보게 되었다. 한국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한국의 편리한 서비스 체계와 다양한 한식, 그리고 가족들이 그리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것일 뿐 마음은 꽤 한가롭고 한산했다.


심리에 빈 공간이 생기니 그제야 나는 다른 것을 채울 수 있었다. 다른 관계를 채울 준비가 되었다.


런던 생활 1년 반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나는 문득 이 은둔자적인 생활을 그만 청산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런던에서 발견한 가장 큰 장점은 내가 관계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만남을 가졌지만 나에게 부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들과는 적절히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불만과 불평이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 나는 늘 머리가 아팠다. 아마도 한국에서 갖게 된 심리적 트라우마가 이런 관계를 경계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칼리지에서 친구들을 만났고, 책을 매개체로 우정을 만들기도 했으며, 영어 공부라는 목적을 가지고 만나는 모임도 생겨났다. 오랫동안 발길을 끊었던 교회에도 다시 나가게 되었는데 캐네디언 교회와 한인 교회를 돌아다니며 나에게 맞는 교회를 선택할 수 있었다. 내가 속하게 되는 집단을 나 스스로 선택하게 되니 그 관계에 일단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집단에서 서로에게 자석처럼 끌리는 좋은 관계도 만나게 되었다.


대부분, 이 아니라 내가 만들게 된 우정의 대상은 모두 나잇대가 비슷한 여성들이지만 나는 한국에서보다 이곳 캐나다에서 더 강한 연대감을 갖게 되었다. 아마도 타국에서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애로사항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에 서로를 더욱 보듬고 배려하고 나누게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이곳에서 내가 만난 엄마들이 단지 엄마로서만 살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단 사실이다. 물론 그 간극이 주는 괴로움이 분명히 있다. 우리는 그런 간극을 서로 나누며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관계 속에서 나는 자발적 고립을 선택했던 은둔의 시절과 또 다른 행복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곳의 인구밀도처럼 서로 간에 바람이 드나들 수 있는 적절한 거리가 있다는 것 또한 관계를 보다 건전하게 지속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듯하다.


나쁜 관계는 사람에 대한 희망을 잃게 하지만 좋은 관계는 도리어 사람에 대한 희망을 품게 만든다. 그리고 이 관계의 결과가 어찌 됐든 일단은 과정을 즐기기로 했다. 캐나다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듯, 나는 아름다운 관계 역시 놓치지 않고 즐기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좋은 관계를 만드는데 빠질 수 없는 건 역시 음식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나누는 식탁은 내게 늘 커다란 기쁨을 선사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