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의 전쟁 이야기
남편의 직무가 나랑 판이해서인지는 몰라도, 남편의 일은 대중이 없다.
1주일에 한 번 이상은 야근을 하고 회식을 하며, 1주일에 한 번 이상은 새벽출근에 그날 저녁에도 기사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연차를 써보지만 하루 전에 계획이 무산되고 회사로 직행하기 일쑤며, 원치않는 연차를 강제로 쓰기도 한다.
그것까진 직장인으로서 눈치가 보인다는 점에서 이해를 하려고 하지만
함께 있는 시간에도 일에 몰두하고 있는 남편을 보다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많다.
저녁식사를 같이 하며 눈은 핸드폰을 쫒고 있는게 허다하다.
어제는 김치찜이 끓어 넘치도록 대화 한 마디 없이 핸드폰을 보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 한숨이 났다.
"남편, 이제 김치 자를까?"
"..."
대답이 없는 남편을 뒤로하고 수저챙기기부터 김치와 고기를 잘라 남편의 숟가락에 얹어주기까지 최선의 배려를 한다.
일을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서둘러 집에온 뒤로 나는 누군가와 함께 소소한 푸념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싶다. 그래서 오랜만에 퇴근이 빠른 남편을 이끌고 남편이 좋아하는 메뉴의 저녁식사를 하러 나섰다.
"남편, 언제쯤 끝날까?"
"...어, 잠시만..."
단답으로 오고가는 대화가 서럽다. 미주알 고주알 하소연 하면서 술잔을 짠! 부딪히면서 하루의 피로를 해소하던 시절들이 그립다. 그 맛에 결혼한 내 마음을 몰라주는 남편이 미워진다.
나도 남편을 대체할 수 있을만 한 친구를 찾아본다. 핸드폰을 열어 카톡을 할 사람들의 명단을 뒤적이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의 소식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입은 열심히 아무도 관심없는 음식을 집어 삼킨다.
술맛을 느끼지 못한채 물잔처럼 술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킨다.
"난 다 먹었는데, 다 먹었으면 일어나자."
가자미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남편. 본인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시위하는 내가 못마땅한지 아랫입술을 세게 문다.
가게를 나오자마자 화가 났다는 걸 보여주는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집으로 향하는 남편이 얄미워서 반대방향으로 걸음을 틀었다. 1시간 뒤 늦은 귀가를 해보니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과자를 산더미로 쌓아두고 우적우적 씹어대는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너도 나도 직장인인데 왜 이해를 바라는 건 항상 남편일까?
내일이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침대로 슬금슬금 들어와 애교를 부리는 남편. 기분이 풀린다. 내 머리는 어리석고 단순하기 짝이 없다. 그새 사랑을 속삭이며 잠이 든다.
다음날, 출근하는 나를 뒤로 하고 남편이 연차를 못쓰게 되었다는 비보를 전한다.
크리스마스 다음날까지 연차를 쓰며 오랜만에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었다.
"연차계획 미리 안올렸어? 나는 이미 올려서 수정 불가능한데..."
"올렸지. 그래도 일이 있다는 데 어떻게 해."
그러면 그렇지. 결혼 후에는 한 번도 맘편히 우리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신혼여행 때부터였나?
연애할 때는 어떻게 그렇게 업무를 잘 피해다녔는지.. 정말 털 끝만큼도 눈치채지 못했다. 어렴풋이 남편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자기는 회식이나 야근을 잘 이해할 줄 아는 같은 직장인이라 좋아.'
이해는 개뿔.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얼마나 이기적인 말인가.
업무는 항상 밀린다. 일은 항상 바쁘지. 게다가 근무 중에 눈치는 얼마나 보이는지 몰라.
그렇지 않은 회사가 있을까?
다만 모두들 바쁜 가운데도 자기의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추고자 발버둥친다. 그러면서 조금의 여유를 찾고 나름의 노하우를 만든다.
남편이 바쁜 건 절대적인 일의 양이 아닌, 마음의 짐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여전한 남편의 모습에 입꼬리가 한 쪽만 올라가는 걸 참을 수 없다.
"야 너만 일하냐? 나도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