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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Jan 14. 2019

흑역사 하나쯤은 있어야 인생 아닙니까.

도깨비에 홀린 그날 밤에 대하여.

그냥 다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서 서툰건데, 그래서 안쓰러운 건데. 그래서 실수 좀 해도 되는 건데.
-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중에서     






지우고 싶다. 인생에서 단 하루를 지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고민없이 그날 밤을 지울 것이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그날 밤의 기억,

누구에게도 꺼내기 망설여지는 그날 밤의 기억,

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 밤은 자꾸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 그렇게 눈을 떠보면 어김없이 그날 밤에 머물러있다.

 



그날은 유난히 지쳤다. 가까스로 부모님께 결혼 승낙을 받았지만 아직 회사에 임신조차 알리지 못한 상황이었고, 늦어도 내일에는 팀장에게 임신을 알리고 서울 발령을 요청해야했다. 이제 고작 일년 된 신입사원이 갑작스럽게 임신을 하고 결혼을 하다니,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어 댈까. 당장 밝아올 내일이 두려워졌다. 터벅터벅. 퇴근 후 집으로 향하던 길에 방향을 틀어 스페인어 수업을 듣기로 했다. 연고없는 부산에 내려와 적막함이 싫어 시작했던 공부였다. 오늘은 단 몇 시간만이라도 복잡한 머릿속을 다른 것으로 채우고 싶다.




평소와 다름을 느낀 선생님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차마 임신얘기를 꺼낼 수는 없지만, 복잡한 일이 얽혀 마음이 심란하다고 둘러댔다. 그는 언변이 뛰어났다.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는가 싶더니 적재 적소에 마음 속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게 만든다.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 그렇게 장작 두 시간에 걸쳐 우리는 깊은 대화를 이어갔다. 명리학을 공부했다던 그는 마치 나라는 사람을 나보다 더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시간은 벌써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선생님, 이제 집에 가봐야겠어요.


“어려운 이야기 꺼내줘서 고마워요. 사실 이런 대화를 나누기 흔치 않거든요. 정말 특별한 인연같아요. 조금만 시간을 내셔서 잠깐 같이 기도를 하러 가실래요? 그럼 상황이 더 나아질거에요.”


“기도요? 어떤 기도요?”


“거부감 갖지 마세요. 절대 이상한거 아니니깐. 이런 얘기가 나눈 것은 특별한 거에요. 아영씨의 간절함이 지금 이 순간을 만들었고 온 조상님께서 함께 염원하고 계세요. 그러니 공을 들여야 해요.”



나는 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해져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나에겐 평범하지 않은 상황들을 잠재울 무언가가 필요했다. 한 남자와 기차에서 만난지 두 달만에 임신을 했다. 치열한 노력 끝에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일년만에 생각치도 못한 엄마의 길을 걸어야 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을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불안했다.

이 길이 맞는지, 이 선택이 최선일지, 나는 잘 가고 있는지. 종교를 갖고있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게, 그게 만약 신이라면 신에게, 이 폭풍같은 현실이 잘 지나갈수 있도록 미치도록 기도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그를 따라 나섰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차를 탄지 30여분이 지났을까. 우리는 부산대 근처의 한 동문 회관 건물에 다다랐다. 시간은 벌써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기도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정성스런 음식이 필요해요. 치성비를 주시겠어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해야되요. 이것도 정성이에요. 아주 중요한 과정이죠.”


나는 ATM기기에서 50만원을 인출하여 그에게 건넸다. 무엇에 홀린듯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서오세요.”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 두 명과 남자 두 명이 나를 맞이했다. 여자들은 궁궐의 나인을 연상하게 하는 어두운 계열의 계량 한복을 입고 있었고, 남자들은 청학동 훈장님이 입을 법한 하얀 한복과 검은 갓을 쓰고 있었다. 분명 외관은 대학교의 동문회관 건물이었는데, 그 안에는 새로운 세계가 있었다.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여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제사상에 올릴 음식을 정성스레 만들었고 빠르게 제사상을 차렸다. 나머지 남자들과 선생님 그리고 나는 어떤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내 이름, 생시를 화선지 위에 붓으로 한 자 한 자 옮겨 적었고 그 종이를 불로 태웠다. 중간 중간에 주절 주절 짧은 기도를 하기도 했다.


“김내수요 입니다.”

“뭐라구요?”

“김내수요, 이제 당신 이름이에요.”


그들은 김내수요라는 네 글자를 화선지에 적어 그 종이를 내밀었다. 곧이어 한 여자가 한복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나에게 샤워를 하고 그 옷으로 갈아입으라 했다. <치성비, 제사상, 한복, 김내수요.>

그제서야 나는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미 돌이킬수 없는 강을 건넌 느낌이었다.




커다란 방에는 병풍이 둘러져 있었고 그 앞으로 형형색색의 음식들과 제사상이 놓여 있었다. 어느새, 선생님도 나머지 남자들처럼 그들 세계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 아주 분주해 보였다.


곧이어, 기도가 시작되었다. 그들만의 세계에서도 나름의 직급과 체계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제일 직급이 높아보이는 남성은 불경같은 것을 읖조렸고, 나머지 둘은 그의 곡조를 따라 불렀다. 그리고는 절을 올렸다.


<오른쪽으로 한 발, 한 발, 절 한 번.> 

<왼쪽으로 한 발, 한 발, 절 한 번.>


절은 나름의 규칙하에 수십 번, 수백 번 동안 계속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동작에 몸이 휘청거렸다. 온 몸에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고 어질어질 쓰러질것만 같았다. 시간은 이미 새벽 한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 앞에서 절을 하고 있는 세 남자를 올려다 보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발 간격, 칼군무라도 하는 듯 자로잰 것 같은 움직임. 그 움직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사람들 미쳤구나. 그것도 아주 단단히.”


제정신이 번쩍 들었다. 갑자기 이 낯설은 공간에 제 발로 기어온 자신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다음 날이었다. 근무를 하고 있는데 문자 한 통이 왔다. 선생님이었다.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도 그의 연락은 잠잠해지지 않았다.


“내수요, 연락 좀 받아줘요. 치성드린 물만 가져다 드릴게요. 이 물을 꼭 간직해야 해요. 내수요에게 귀중한 물이에요. 제발 물이라도 받아줘요.”


그는 사기꾼이 아니었다. 그저 미친 사람이었다.

그들만의 세상을 믿고 그 세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의 집요한 연락은 계속되었고, 결국 나는 그날 밤 일을 남편알렸다.


“정말 실망이야..홀몸도 아닌데 겁도 없이 그 남자를 어떻게 믿고 따라 나선거야!”


그 날, 남편은 처음으로 나에게 화를 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당장 전화를 했다.


“야! 이 씨*X&@#~~!!!!!!!!!!!!!!!!!”






2005년 여름, 대학교 선후배가 모여 술자리를 가졌다. 그 날의 화제는 K선배였다.


“글쎄 K가 있잖아! 도를 아십니까 따라 갔다 왔다더라! 거기서 한복입고 절을 했대지 모야.”


“대박! 어떻게 그런 곳을 따라가지? 암튼 K선배 순진하다니까. 하하하.”


5년 전 남의 얘기에 깔깔깔 쓰러지게 웃던 그 여대생은 5년 후 야심한 새벽에 한복을 입고 절을 했다. 그것도 50만원을 헌납한채로.






 2년이 지난 어느 밤이었다. 아기를 겨우 재우고 방을 나서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아기가 깰까 나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내수요?”


까막득히 잊고 살았던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흩어져있던 그날의 기억의 조각들이 빠르게 재배열되면서 또렷한 잔상을 만들었다. 그 잔상들은 기다란 파노라마가 되어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등골에 오싹했다.

분명 그 이름이었다. 김내수요.


“아니, 이제 그쪽과 절대 연락하고 싶지 않다구요. 절대 연락하지 마세요!”


그게 그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사실 난 살면서 독실한 종교를 가진적이 다. 신을 믿어본적도, 신에게 기도해본적도, 신에게 절실한 무엇을 바라본 적도 다. 하지만, 벼랑 끝과 같이 위태로운 길 위에 서보니 신이 절실했다. 미치게 기도하고 싶었고, 한없이 위로받고 싶었고, 그렇게 안정을 찾고 싶었다. 인간은 나약했고 나는 부서질듯 위태로왔다.

그들도 그렇게 발을 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만의 세상에서 아니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 밤은 내 인생에서 가장 치욕스러웠던 한 장면다. 그래서 그 기억의 조각들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꽁꽁 숨기며 살아왔다.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고 그 무엇보다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 기억이었다.



그저 잊고 싶었다. 그 일부터 온전히 해방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날 밤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그날 밤을 먼저 인정해야 했다. 나의 실수를 오롯이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누구에게나 치욕스러운 과거가,  쥐구멍으로 숨고 싶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빈틈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절박함은 일반적인 상식을 떠올리지 못하게 만들 수도, 무언가에 가려져 그릇된 선택을 하게 만들 수도 있다. 결핍이 있기에 인간인 것이다. 누구나 실수하고 넘어지고 서툴고 안쓰럽다. 우리가 살고있는 하루는 매번 인생에서 가장 최초의 순간이 될 것이기에,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아는 자는 아무도 없다. 한낱 자기합리화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날 밤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날 밤의 불안했던 나를, 그날 밤에 절박했던 나를, 그날 밤의 안쓰러웠덴 나를.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 조금은 가벼워 진다. 막막했던 내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아직까지도 남편은 그날 밤을 안주거리처럼 꺼내어 나를 놀린다. 아마도 그의 취미생활은 내가 죽는 그 까지 계속될 것 같다.



도를 아십니까.

다들 웃으며 이야기하는 한 문장이지만,

나에게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인생의 흑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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