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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Jan 16. 2019

개명이 이렇게 쉬운 것일 줄은.

한국사회에서 이름은 부적이 되었다.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어렵게 지은 세쌍둥이 이름에 여기저기 김 빠진 핀잔들이 잔뜩 새어나왔다. 핀잔의 주체는 다양했다. 가깝게는 부모님, 친척, 친구부터 멀게는 길거리에서 만난 이름 모를 아줌마까지 하나같이 세쌍둥이 이름에 훈수를 두었다.


"애들 이름이 너무 비슷해요."

"돌림자를 꼭 썼어야 했어요?"

"이 자는 원래 이름에 안쓰는데..."

"세쌍둥이니까 특이하게 지어보시지."


이미 결정된 아이들의 이름에 하나같이 미련을 는지 제발 그만하라는 나의 똥 씹은 표정에도 아랑곳 않고 다들 바쁘게 일장연설을 토해냈다.


     

세계, 평화, 통일로 가자!!!



아이들 이름을 짓기 전 친정 아빠는 세계, 평화, 통일이라는 아주 거창한 이름을 내놓았다. 사실, 세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처음에는 나도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하나 뿐인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기도 했다.


아름.다운.강산

훈.민.정음

그리고

세계.평화.통일


이런 이은 오직 세쌍둥이에게만 줄 수있는 특별한 선물 같았다. 그러나, 왠지 대한, 민국, 만세의 짝퉁 버전인 것 같기도 한 이 이름들을 아이들의 인생에 평생 지니게 하자니, 안그래도 평범하지 않을 세쌍둥이의 인생에 <각인>이라는 글자를 한 번 더 깊게 새기는 것 같아 망설여졌다.     



결국, 우리는 아주 평범한 이름을 짓기로 했다. 어느 동양철학 교수님이 지어준 큰애의 이름을 기준으로 아이들의 이름에도 큰애와 똑같은 돌림자를 넣었고 큰애와 같은 획수의 한자로 마지막 종성을 맞추었다.


시영, 시완, 시원, 시호


비슷한 듯, 다른, 이 평범한 이름들이 고심 끝에 내린 우리의 최종 선택이었다. 아이들이 닮은 듯 다른 평범한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우리 부부의 작은 바람이기도 했다. 이 이름을 짓기위해 평생 펼쳐보지도 못했던 성명학 책을 몇 번이고 정독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하루 걸러 들려오는 끈질긴 소음들은 갈대같은 내 마음을 세차게 휘저어댔다. 설상가상으로 매달 진행하는 어린이집 ARS 결제 메세지에서 조차 나는 시완과 시원을 구분하지 못했다. ARS 결제 음성을 마치 국어듣기평가처럼 초집중하고 듣고 있는 나의 모습은 자신을 더욱 한심하게 보이게 했다.


슬쩍 남편에게 이야기해 보았다.


"더 늦기 전에 개명하는건 어떨까? 완이와 원이가 너무 비슷해서... 생각 못한 건 아니였지만 막상 그렇네..."

"개명이 무슨 장난인줄 알아!? 안돼. 절대 안돼!!!"     


개명.

개명은 분명 장난은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 있어 개명이란, 장난처럼 쉬웠던 그 무엇이기도 했다.

내 나이 스물둘 그리고 봄의 일이었다...






나는 김아영이었다. 그리고 한 번의 개명을 거친 지금의 나도, 여전히 김아영이다.


金 (김)

娥 (예쁠 아)

榮 (영화로울 영)


이 이름이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할 바로 나의 이름이다.


문제는 (예쁠 아)라는 한자에서 비롯되었다. 엄마는 약어한자로 구성된 미니 옥편으로 세 딸의 이을 손수 지었는데, 당시 그 사전에 있었던 (예쁠 아)의 약어한자는 시중 옥편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희귀 중의 희귀 한자였다.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던 엄마는 그 희귀 한자를 적어 출생등록을 하였고, 그 한자를 도무지 시스템에서 찾을 수 없었던 당시 동사무소 직원은 대충 비슷하게 생긴 한자를 출생 등록 시스템에 구겨넣었다.


동사무소 직원의 실수로 잘못 등록된 한자는 바로 아래의 한자였다.


姙 (임신할 임)


"아니!!! 결혼도 안한 처녀 이름에!!! 이게 무슨 경우인가요!!! 임신한 임이라뇨. 대체 이 한자가 왜 제 이름에 있는 건데요!!! 도대체 어떻게 책임지실건데요!!!"


울그락 불그락. 불타는 감자처럼 빨개진 얼굴을 들이밀며 스물 둘의 처녀는 어느 동사무소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주민등록증을 꼬옥 움켜쥔 오른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정말 죄송한데 방법이 없어요. 개명하시면 되요. 생각보다 간단해요. 신청만 하면 끝이에요."


마치 남의 집 불구경하듯, 무미건조하게 툭 뱉어내는 담당 직원의 차가운 말 한 마디가 가슴 속을 사납게 파고들었다. 동정인지, 연민인지, 아님, 희한한 웃음거리를 방금 발견하여 당장이라도 누군가에게 달려가 속삭이고 싶어 안달난, 아주 미세하게 웃는 듯한 그녀의 묘한 표정이 가슴에 한 번 더 뜨거운 불을 지펴댔다. 나는 당장이라도 날아올라 그녀의 머리채를 낚아채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억누른채 씩씩대며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며칠 후 지방법원으로 향했다.






개명 절차는 동사무소 직원의 말대로 아주 간단했다.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제출하면 끝. 심플해도 너무 심플해서 도무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시 생각해봐도 우리나라의 혼인신고와 개명신청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너무나도 간단하다. 법원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한 해 개명자수가 16만 4천명을 넘어 섰다고 한다. 하루 449명이 개명한 셈이다. 2016년 기준 개명승인 비율이 97%라고하니 신청하면 대부분 되는 상황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을 평생 갖고 산다는 건 매우 괴로운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름을 너무나도 쉽게 바꿀 수 있는 현행제도는 많은 범죄자들에 의해 악용되기도 한다. 몇 년 전, 울산에서 아동학대로 사망한 이른바 성민이 사건의 가해자인 어린이집 원장 부부는 사건 이후 개명을 해서 이름을 바꾸고 버젓이 새로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이름을 바꾸고 있다. 취업이 안된다고, 시험에 붙으라고, 사업이 잘되라고, 어느 순간 이름은 부적이 되어 버렸다.





법원 직원이 건네준 서류는 간단했다. 몇 가지 항목만 작성하면 되었는데 종이를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항목들을 채워나갔다. 그렇게 서류를 제출하려는데, 엄마가 나에게 한 마디를 툭 던진다.


"이왕 개명하는거 지금까지는 김아영으로 살았으니까, 이번에는 너 하고 싶은 다른 이름으로 바꿔."

"다른 이름? 지금와서? 이렇게... 쉽게......?"


엉뚱하다 못해 차라리 무책임하게까지 들렸던 엄마의 한 마디는 그저 내 이름을 찾기위해 맹목적으로 이곳으로 달려온 나를 맥빠지게 만들었다. 동시에 그 한마디는 이름이 무엇인가에 대해 지난 시간 동안 가져온 뿌리깊은 생각들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았다.



이름이란 무엇인가.






대학시절 가끔 사주를 보러가면, 사주에 비해 이름이 약하다는 말을 들다. 그들은 내게 이름을 바꾸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달콤한 말도 속삭였다.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는 내 이름을 사랑했다. 세상에 태어나 나에게 부여된 이름은 곧 내 정체성이자 나 자신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나는 다른 이름으로 대체될 수 없는 오롯이 김아영이어야만 했다.



지난 내 인생을 되돌아보니, 이름과 운명 사이에는 어쩌면 말로는 설명 불가능한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인생에 있어 姙 (임신할 임)이라는 단어는 인생을 송두리채 바꾼 운명적인 단어였으니깐. 우연이듯, 운명이듯, 내 인생은 姙 (임신할 임)이라는 한 글자에서 번번이 벼락을 맞듯 흔들렸으니깐.



그러나 나는 내 이름으로 남기로 했다. 내가 김아영이고 김아영이 나이기에, 이제와서 다른 이름을 갖는다는 건 내가 없어지는 것처럼 서글픈 일이었다. 학교를 다닐 적 전교에 서너명은 빠지지 않고 있었던 꽤나 흔한 이름이었지만, 그래서 가끔은 가녀리고 보호 본능을 불러 일으킬 것만 같은 세아나 은채같은 이름을 부러워 한 적도 있지만,  나는 내 이름이 그 어떤 이름보다 예쁘고 좋다. 더욱이 이제는 姙 (임신할 임)이 아닌 진짜 娥 (예쁠 아)가 내 이름에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오늘도 나는 어린이집 ARS 결제 음성을 마치 국어듣기평가를 치루 듯 집중하여 완이와 원이를 구분한다. 아이들이 자라며 앞으로 더한 일들이 유약한 내 마음을 헤집어 놓을 순간이 올테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가져왔던 작은 신념처럼, 우리 아이들도 자신의 이름을 사랑해주었음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의 이름에는 오랜시간 엄마, 아빠의 고민, 걱정, 한숨, 좌절, 가치, 행복, 소망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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