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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Jan 19. 2019

아기의 두상은 엄마의 죄가 아닙니다.

아이는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예쁘다.


당신은 이미 완벽하다. 이미 충분하고 넘친다.
당신 인생에 주어진 것 중 최고는 당신 자신이다.
그리고 당신은 기막히게 아름답다.
-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 중에서






엄마들의 아기 두상에 대한 관심은 실로 대단하다.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짱구 배게를 구입하는 것은 기본이고 아기의 머리를 동그랗게 만들어주기 위해 엎드려 재우는 사람들도 많다. 인터넷에는 예쁜 아기 두상 만들기에 관한 정보가 가득하며 커뮤니티에는 두상이 조금 찌그러진 것 같거나 납작한 것 같다는 아기 두상에 대한 걱정이 담긴 글을 심심치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나는 큰애를 키우면서 아이의 두상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바닥에 누워 노는 시간보다 안아주었던 기억많았던 등센서 작렬 큰애였기에 아이의 두상은 조금이라도 납작해질 겨를 조차 없었다. 그런데, 쌍둥이의 두상은 달랐다. 하루종일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의 두상은 심하게 납작하거나 삐딱해보였다. 눈치도 느리고 센스도 없는 내가 아이들의 두상이 이상하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 아이들의 두상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었다. 세쌍둥이라 더 그렇다고 했다. 쌍둥이와 같은 다태아는 엄마 자궁안에서 비좁게 있었기 때문에 두상을 한쪽 방향으로 트는 습관이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쌍둥이, 세쌍둥이 중에는 유독 두상교정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생후 100일, 세쌍둥이의 두상이 단 한 명도 예쁘지 않았다. 1호와 3호는 납작했고 2호는 몹시 삐딱했다. 의학적으로 납작한 뒤통수는 단두증, 한 쪽으로 삐뚤어진 뒤통수는 사두증이라 한다. 아이들을 보는 사람마다 지나치지 않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아이들이 순한가봐. 뒤통수가 납작하네. 옆으로 재워줘봐. 아님, 엄마가 안아서 재워보든지.”


아이의 두상이 예쁘지 않은 것은 마치 엄마의 죄처럼 느껴졌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아이들을 방치한 엄마가 된 것만 같아 속상했다. 사실, 아이들이 자는동안 곁에 누워 이쪽 저쪽 아이들의 고개를 일일히 돌려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나는 수면교육을 하고 있었고 아이들을 따로 재웠기 때문에 한 명 한 명 고개를 돌려주기란 불가능했다. 그래도 난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새벽에 틈틈히 일어나 아이들 고개를 돌려 주었고 하루씩 돌아가며 한 아이씩 안고 자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두상은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소아과 의사는 나에게 두상교정모자를 추천해주었다. 미국에서만 생산된다는 두상교정모자는 고개를 특정 방향으로는 돌릴 수 없도록 한 쪽에 쿠션같은 것이 달려 있는 의료용 모자였다. 작은 모자 한 개에 6-7만원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반신반의였지만 두상교정모자를 구입하였다. 하지만, 예상대로 아이들은 모자를 손으로 벗겨내기 바빴다. 아이들의 두상은 여전히 좋아지지 않았다. 다른 조치가 필요했다.


두상교정모자 착용 모습 (1호) - 고개를 돌릴 수 없도록 한쪽에 쿠션이 달려있다.



생후 150일, 단두증세를 보이던 1호와 3호는 다행히 뒤집기, 되집기에 익숙해지면서 스스로 옆으로 혹은 뒤집어 자주기도 했다. 하지만, 사두증세인 2호는 언제나 오른쪽으로만 고개를 돌린채 잠을 잤다. 나는 2호를 좀 더 관찰해보았다. 2호는 잠을 잘 때 뿐만 아니라 평소 누워있을 때도, 무언가를 응시할때도, 대부분 오른쪽을 보고 있었다. 2호가 오른쪽만 본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한쪽 머리가 삐딱한 사두증의 경우 한쪽 목 근육만 활성화가 되어 고개가 계속 한쪽으로 돌아가는 사경이 원인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사경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었다.


단두증, 사두증, 사경. 처음에는 그저 아이들의 두상이 예쁘지 않다로 시작된 걱정이 점점 의학용어에 대입되고 있었다. 나에게는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오랜 검색 끝에 두상교정헬멧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두상교정헬멧은 머리 모양이 변형된 아기의 두상을 바로 잡기 위해 아기 머리에 씌우는 헬멧 모양의 의료기기로, 병원의 처방 후 진단서를 헬멧을 판매하는 업체에 제출해야만 구입이 가능했다. O사, H사, G사, 세 업체가 시장을 독식하고 있었는데 각각 비슷한듯 조금씩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O사는 미국에 모회사를 둔 두상교정업체로 3D 프린터 기계로 아이 두상을 측정한 뒤 미국 본사에서 직접 헬멧을 제작하여 발송하여 고객에게 전해지는 구조였고 가격은 헬멧 하나에 300만원 중반이었다. H사와 G사는 국내에서 시작된 벤처기업으로 헬멧 하나에 300만원 수준이었다.


‘두상 헬멧 하나에 수백만원이라고? 그럼 세쌍둥이면 돈 천만원이 필요한건가?’


도무지 감당못할 가격이었다. 내 머릿 속엔 온통 가격에 대한 수용보다는 가격에 대한 의구심만 가득했다.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업체 담당자의 상업적인 태도, 지인에게 소개하면 할인을 해주겠다는 이야기, 블로그에 넘쳐나는 광고성 후기들, 업체 별로 지정된 병원과 제휴를 맺고 있는 시스템. 이 가격의 비용 구조에는 분명 거품이 있어보였다. 헬멧 하나에 300만원이라는 가격은 내게 전혀 합리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우연히 K병원 의료진이 국내 최초로 두상교정헬멧을 개발하여 특허를 출원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앞서 이야기한 3사와는 달리 K병원 두상교정헬멧은 석고를 이용해 아기의 두상의 본을 뜨는 재래방식이었고 헬멧 하나에 60만원이었다. 밑져야 본전 나는 바로 예약을 해보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전국적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예약일까지 한 달 반을 기다려야 했다.     






생후 197일, 편도 4시간 왕복 8시간이라는 무시무시한 시간을 각오하고 우리 부부는 세쌍둥이를 데리고 서울에서 대구에 위치한 K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진료에 앞서 몇 가지 검사가 필요했다. 먼저 아이의 두상에 하얀 스타킹같은 것을 씌운 뒤 카메라 촬영을 진행하였고 두개골 유합증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X-ray촬영이 이어졌다. 참고로 두개골 유합증은 여러 조각으로 연결된 두개골 봉합선이 굳어지는 질병으로 수술을 필요로 한다.


“다행히 세쌍둥이 모두 두개골 유합증은 아닙니다. 엄마가 우려했던 것처럼 2호도 사경이 아니구요. 사실, 두개골 유합증이 아닌 경우 단두와 사두는 질병이 아닙니다. 두상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심미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부모가 봐서 괜찮으면 그대로 두고 심각해보이면 헬멧으로 교정을 해주면 되죠. 어느 정도가 심각하다고 수치로 이야기하는 건 곤란합니다. 단두증은 환경적인 부분보다는 유전적인 요인이 크고 사두는 유전적인 요인보다는 자세성 요인이 큽니다. 그렇기에 단두증은 교정헬멧으로도 교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남편과 나는 선택해야 했다. 세쌍둥이 모두에게 헬멧을 맞춰줄 것인지 아님 사두증인 2호에게만 맞춰줄 것인지. 결국 우리 부부는 1,3호에게는 미안했지만 2호에게만 헬멧을 맞춰주는 선택을 하였다. 교정이 힘들다는 단두증세인 1,3호까지 헬멧을 맞췄다가는 세 아이 모두 헬멧에 적응시키기 힘들다는 결론이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재래방식으로 본을 떠야 하는 K의 두상교정헬멧, 2호의 표정이 웃음이 날 정도로 암울해보인다.



생후 262일, 2호가 헬멧을 착용한지도 2달이 넘어있었다. 2달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아이에게 헬멧을 씌우는건 쉽지 않았고 특히 아이가 깨어있는 낮시간에 헬멧을 씌우는건 정말 힘들었다. 주치의는 교정효과를 보려면 하루에 적어도 22-23시간 이상을 씌워야 한다고 했지만 아이는 헬멧을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헬멧은 아이의 얼굴 아래로 흘려내려 눈을 가리기 일쑤였고 1,3호는 2호의 헬멧이 신기한지 아이의 머리를 장난감대하듯 못살게 굴었다.


순한 아이는 그래도 울지 않았다. 차라리 울거나 짜증을 내면 좋으련만 고통을 참으려는 아이의 그 모습이 더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었다. 엎친데 겹친격으로 2호의 두피에 좁쌀 두드러기가 올라오더니 지루성 피부염까지 찾아왔다. 헬멧 안에서 갑갑하게 숨을 쉬지 못하는 아이의 피부가 더이상 견디지 못한 것이었다. 결국, 아이의 두피는 생선 비늘처럼 벗겨졌고 얼룩덜룩 붉은 발진이 아이를 괴롭혔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베이비 오일로 보습해주고 씻기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아이의 두피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픈 아이를 보고있자니 나의 욕심이 건강한 아이에게 마치 없던 병을 계속 만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죄책감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이 헬멧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이를 위한 것인가? 아님 엄마인 나의 욕심을 위한 것인가?’


나는 괴로워하는 아이를 보며 매일 자책감에 빠졌다. 그리고 며칠을 고민한 끝에 두상교정헬멧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사두증, 단두증은 질병이 아니었다. 심미적인 미의 기준이 만들어낸 사람들의 잣대일 뿐이었다. 아이의 두상이 조금 납작한 것이, 조금 삐뚤어진 것이 그렇게 걱정할 만한 일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아기를 답답한 헬멧 속에 하루 종일 가둬야 할 정도로 정당한 일인가.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과 높은 기준이 우리 스스로를 옥죄고 아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세상이 정한 아름다움의 분류에 자신을 끼워넣고 싶어한다. 조금이라도 살이찌면 바로 다이어트에 돌입하고 쌍커풀이 없는 내 아이의 눈망울을 걱정하기도 하며 백옥같은 피부, 늘씬한 몸매를 동경한다. 자신의 몸을 가꾸고 투자해서 자존감을 갖는다면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 목표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자신 혹은 누군가가 그로인해 괴롭다면 그것은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세상이 정한 아름다움의 분류에 들어가지 않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다. 사고방식을 조금만 바꾼다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내 안의 행복이 보일 것이다. 당시 나는 세상이 정한 주관적인 잣대에 아이를 꾹꾹 눌러 더는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건강한 아이에게 없던 병을 만들어낸 것은 엄마인 나의 욕심일 뿐이었다.      




오늘도 우리집에는 납작이 2명과 삐딱이 1명이 있다. 언젠가 아이들이 커서 학교에 갈 때, 군대에 갈 때, 머리를 깎을 때마다 납작하고 삐딱한 머리 때문에 과거 엄마의 결정을 원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훗날 아이들이 지금의 엄마의 결정이 최선이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자신의 두상에는 밤잠을 설치며 고생했던 엄마의 따뜻한 손길과 수많은 걱정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 세상에 예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소중하지 않은 사람도 없다. 나는 아이들이 인생을 살면서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조금은 삐딱하지만 조금은 납작하지만 그 자체로도 자신의 두상이 멋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길 바란다.







가끔씩 장롱 한켠에 있는 2호의 헬멧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2호의 두상은, 아니 우리 아이들의 두상은 이미 그 자체로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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