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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Jan 20. 2019

신혼집을 도둑 맞다.

음, 그거 알아? 아끼면 결국 똥 되는 거.


밤낮 없이 바빴던 신혼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는 무거운 배를 이끌고 야근을 반복하던 나날들이었다. 퇴근 후 녹초가 된 몸으로 집에 들어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나에게 집이란, 잠시 거쳐가는 버스 정거장 같은 것이었다. 신혼집은 방배동 언덕에 위치한 13평 남짓의 조그마한 빌라였다. 분명 정면에서 보면 2층이었지만, 언덕 위에 지어진 집이라 베란다와 거실의 창문은 아주 좁은 언덕 뒷길과 맞닿아 있는 희한한 구조였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느즈막한 오후가 되서야 어슬렁 집 밖을 나왔다. 잠시 슈퍼에 다녀오려고 현관문을 나서니 1층 출입구 옆 복도에 왠 A4용지 한 장이 떡하니 붙어있었다.


“안녕하세요, 201호입니다. 실은 제가 며칠 전에 집에 있다가 베란다 창문으로 들어오던 도둑과 맞닥뜨린 적이 있습니다. 요즘 도둑 맞은 집들이 주변에 꽤 있더라구요. 다들 조심하시는게 좋겠습니다.”


황당한 글이었다. 하지만, 바로 옆집에서 도둑을 맞닥뜨렸기에 사뭇 꺼림칙하기도 했다. 사실, 방배동으로 이사오면서 나는 신혼집 도둑 이야기를 자주 들어왔었다.


“방배동에는 신혼집만 전문털이하는 신혼집 전문 털이범이 있대. 어느 집은 이사 온 다음 날 바로 싹쓸이 해갔다고 하더라고.”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가슴 한 켠에 묻어두었던 그날의 기억이 수면 위로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열 세 살 여름, 놀이터가 집보다 좋았던 시절 그날도 역시 나는 친구들과 하루 종일 땀나게 놀고 집에 들어왔다. 흔건히 땀에 젖은 옷은 몸에 들러붙어 있었고 하나로 묶은 머리도 온통 땀으로 범벅되어 있었다. 홍당무처럼 벌게진 얼굴로 거실 쇼파에 걸터앉았다. 몸에는 바깥의 뜨거운 열기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샤워를 하려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 잽싸게 내 몸에 들러붙어 있었던 땀에 젖은 티셔츠를 벗겨냈다. 부엌에서는 엄마의 칼질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은은한 청국장 냄새가 작은방 안으로 스며들며 식욕을 자극했다.


‘오늘은 청국장이구나. 빨리 씻고 밥 먹어야지.’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속옷마저 벗으려던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가 작은 방 창문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 우리집은 아파트 1층에 위치해 있었지만 결코 외지거나 인적이 드문 곳은 아니었다. 다닥다닥 나란히 붙어있는 여러 아파트 중 하나였고 작은 방 창문 쪽으로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커다란 놀이터가 있기도 했다. 그는 간이 크다못해 배 밖으로 튀어나온 사람이었다. 대낮에 그것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아파트 한복판에서 남의 집을 엿보다니. 하지만, 그의 대담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창문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온 그는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왔다. 검은색 티셔츠에 검은 모자 그리고 하얀 마스크를 쓴 20대 중반의 청년, 그의 얼굴은 지나간 세월 속에 흐릿해졌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잊을 수가 없다.


“엄마! 엄마! 엄마! 으흐흐흐. 아아아아악.”


열 세 살 아이는 방 끝으로 뒷걸음질하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두려움의 눈물이 어느새 그렁그렁 두 눈에 가득 차올랐다.


“이게 무슨 소리야? 무슨 일이야?”


엄마의 놀란 목소리가 작은 방까지 전해졌다. 예상치못한 엄마의 등장에 당황되었는지 그는 유유히 창문으로 사라져 버렸다. 불과 몇 초안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 강렬함은 어린 나를 순식간에 압도해버렸다. 마치, 누군가가 있는 힘껏 목을 조르는 것처럼.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샛노란 오줌이 방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두려움에 오줌을 지린다는게 무슨 말인지 아이는 평생 잊지못했다.   




  


도둑이라니. 나는 잠시 벽보를 보면서 열세 살 아이가 맞닥드렸던 그 남자의 눈빛을 떠올렸다. 몇 십년이 지나도 그의 눈빛 만큼은 선명히 가슴 속에 살아있었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글쎄 있잖아. 201호 사람이 도둑과 맞닥뜨렸대. 도둑이 베란다 창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대...”


슈퍼에서 사온 간식거리들을 하나씩 냉장고에 넣으며 나는 남편에게 한참 벽보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그러다 불현듯 아주 이상한 느낌이 나의 머릿 속을 헤집는다. 입은 쉴새없이 종알대고 있지만 머릿 속은 정체불명의 불안감이 장악해버린다. 무엇에 홀린듯 안방 화장대로 걸어가 예물함을 꺼내어 본다. 불안감은 어느새 뭔지모를 공포로 바뀌어 있다. 확인, 무조건 지금 그것을 확인해야만 한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거야.’


조심스럽게 화장대 안 예물함을 열어본다.


“여..여보! 예..예..물함이 비어있어!”


그랬다. 예물함이 비어있었다. 결혼 후 고이 모셔두었던, 그동안 아껴두며 단 한번도 나의 목에 걸어보지 못했던 예물 세트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청담동 예물 가게 안, 유리로 된 부스 위에 두 종류의 예물 세트가 올려져 있다.


“합리적인 가격을 원하시면 A세트이지만 조금만 더 쓰시면 훨씬 고급의 디자인에 참깨 다이어 목걸이를 서비스로 드릴게요. 보통 이렇게 B세트 많이들 하세요.”


판매원의 목소리가 가게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짙은 화장과 향수냄새, 그녀의 귀에 걸린 고급 브랜드 귀걸이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녀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도도하다. 판매에 열을 올리는 보통의 판매원의 자세가 아니라 이 가게에서는 이 정도 구매하는게 상도인것 처럼 이야기한다. 그녀의 표정이 모든걸 이야기해준다. 여기 강남이야.


컴컴한 가게 안에는 다섯 개의 유리부스가 있고 그 앞에 신혼 부부가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다. 우리 옆 부스에도 신혼 부부가 예물을 신중히 고르고 있다. 하나같이 명품백에 고급스러운 옷을 걸치고 있다. 옷차림이라도 좀 신경쓸 걸. 나는 몇 분 째 괜히 속으로 후질근한 옷을 입고 이곳을 찾은 것을 자책하고 있다. 남편은 나보고 원하는 것을 고르라고 한다. 돈은 신경쓰지 말고 더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선택하란다. 그의 말이 고맙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를 내준 것처럼 마음이 무겁다. 그녀의 눈이 나의 선택을 재촉한다. 굳게 다문 입은 나를 다그치는 것만 같다. 고민은 그만하고 이제 좀 열어보라고.


“뭐, 저희도 B로 할게요.”


나라는 사람은 꾸밀 줄도 모르고 그렇다고 세련된 안목을 가지지도 못했다. 그저 합리적인 가격에 심플한 디자인을 추구해왔다. 그것은 요즘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미니멀리즘, 심플리즘과 같은 것과는 다소 거리가 먼 것이었다. 나는 어떤 것이 예쁜지 선택할 수 있는 안목 자체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것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수학문제를 던져준 것과 같았다. 디자인의 차이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나에게 다음 고려요소는 가격이었다. 합리적인 가격. 따라서, 그녀의 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오기 전에는 A세트에 더 마음이 기울었었다. 하지만, 그녀의 한마디에 분위기에 압도되어 나의 입은 머리와는 정반대의 선택하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추가 지출에 마음이 아파왔지만 갖가지 말들을 떠올리며 자기 위안을 했다.

비싼게 더 좋을 거야. 평생에 단 한 번 하는 예물이잖아.

그러나, 나는 차마 목에 걸기가 아까워 예물들을 받자마자 줄곧 예물함에 고이 보관해왔었다. 그녀가 인심좋은 얼굴로 건넨 서비스로 받은 내 목에 걸려있는 참깨 다이어 목걸이가 나에게 남은 유일한 예물이었다.      






남편은 서둘러 다용도실 창문을 열어보았다. 창문 밖 방범창이 아주 깔끔하게 뜯어져 옆에 놓여 있었다. 누군가가 작정하고 전동 드릴로 분리한 솜씨였다. 아마도 그날이었던 것 같다. 며칠 전 빨래를 말리겠다고 다용도실 작은 창문을 열어두고 출근했던 그날, 바로 그날이 뇌리를 찌릿하게 스쳤다. 그와 동시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가 우리집에 들어온 것도 모르고 태연하게 일상을 살아왔던 지난 며칠이 나는 미치도록 소름돋았다. 만약 오늘 그 벽보를 보지 못했더라면, 201호가 그 벽보를 쓰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도둑이 든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리라.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날 우연히 텅빈 예물함과 마주하였을때 나는 남편에게, 남편은 나에게 서로에게 책임을 지우며 잃어버린 예물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TV, 노트북, 컴퓨터 모든 고가 전자제품들은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고가의 결혼 예물만 귀신같이 싹쓸이해간, 그들은 말로만 들어왔던, 신혼집 전문 털이범이었다.


“여보세요? 방배동 A빌라 202호인데요. 결혼 예물을 도둑 맞았어요!”


112신고 삼십분 후 왠 과학수사대가 집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집안 곳곳과 예물함 위에 정체불명의 흰색가루를 뿌렸다. 지문을 체취하기 위한 그 작업은 한 시간여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도둑의 지문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이 주변에 신혼집 전문 털이범들이 기승을 부립니다. 문 단속 철저히 하시구요. 혹시라도 잡히면 연락드릴게요.”

“저기요. 잡히면 보상 받을 수 있나요?”

“거의 가능성이 없다고 보셔야 됩니다. 잡힌다고 하더라도 보상받기도 힘들구요.”


기약없는 인사 후 그들은 떠나버렸다. 그들 말대로 그것이 그들과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경찰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도처에 범벅이된 정체불명의 흰색가루 뿐이었다. 남편과 나는 아무말도 나누지 않고 묵묵히 그 가루들을 쓸고 담았다. 몇 시간째 긴장한 탓인지 그제서야 만삭의 배가 계속 뭉쳐왔다. 안일했던 나 자신에 대한 후회와 속상함이 뒤섞여 눈물이 연신 주르륵 흘러나왔다. 남편은 조용히 나를 안아주었다. 괜찮다고, 앞으로 좋은 일만 생각하자고, 우리 아가만 생각하자고, 나를 다독여 주었다.






“왜하필. 나야. 왜 나한테만 이런일이.”


왜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너무나도 속상하고 화가났다. 그러나 불행과 행복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날의 불행은 어찌보면 행복이었다.


평일에 가끔 휴가를 내고 거실 쇼파에 혼자 앉아 있다보면 나는 종종 거실 옆 언덕 뒷길로 지나다니는 남자들을 보곤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좁은 길로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왜 이런 길로 다닐까 생각하곤 했다. 만약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였을 때 그들이 들어왔다면 어땠을까? 어린 시절 마주한 그 남자의 눈빛을 평생 잊지 못하는 것처럼 만삭의 임산부에게 그런 경험은 상상조차 하고싶지 않은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어쩌면 내가 겪은 불행은 불행이 아닌 것이었다. 이만하길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사라진 예물을 원망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왜 단 한 번도 예물을 목에 걸어보지 못했을까 후회한 적은 많다.


그날의 기억은 나에게 분명한 한 가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뭐든 아끼면 결국 똥 된다는 거.


나는 이제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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