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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May 05. 2019

지나치면 독이 되는 것.

솔직함과 솔직함을 표현하는 것은 다른 거야.


글을 써야하는 밤이 있다. 쓰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밤, 내 안을 거칠게 헤집어놓는 정체모를 감정 덩어리들을 잠재워야 하는 밤, 오늘이 바로 그런 밤이다. 불안하면 입술을 뜯는 버릇이 있다. 기어코 피가 날 때 까지 뜯고는 한다. 혀끝으로 오돌토돌한 입술을 매만지고 거슬리는 곳을 발견하면 손끝을 집중하여 뜯어 버린다. 오늘은 거슬리는 부위가 꽤나 많다. 왼손으로는 하염없이 입술을 뜯고 생각은 무거워진 머리를 정리한다. 그리고 글을 쓴다.     




눈가가 타오르는 것처럼 또다시 뜨거워진다. 벌써 며칠이 지났건만 아직도 내 감정은 그날 그곳에 멈춰있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돌리고 싶다. 수도 없이 상상한다. 그날의 나에게 이건 아니라고, 멈추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제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분명히 알지만, 내게 남겨진 길은 그 사실을 잊어야한다는 가혹한 현실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 그걸 알기에 이제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기에, 눈물이 계속 멈추지 않는다.     




실수를 했다. 내게는 그곳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지난 오해를 잊지 않고 오랫동안 가슴에 담고 있었다. 솔직하게 내 진심을 표현하면 상대방도 받아들여 줄 거라 착각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먼저 오해를 해명하라고 한 적이 없었지만,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소심함은 그것을 정직하게 밖으로 풀어 내려야만 했다. 뭐가 그렇게 불안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내게는 너무나도 소중했던 곳이기에 작은 오해라도 그것을 기어코 끄집어내어 나의 진심을 보여주고 싶었다. 평소답지 않게 조급했던 것 같다. 감정은 감정을 몰고 왔고 나의 모든 생각들을 보여주었다. 솔직하게 풀어 내린다면, 그 안에 진심만 있다면, 그 진심은 전해질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실수였다. 상대방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거세게 내달렸다. 그의 대답들을 가슴으로 주어 담으며 심장이 철렁거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바람은 걷잡을 수 없이 거세졌다. 여러 오해들이 동시에 일어나 나를 낭떠러지로 몰아가는 것 같았다.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모든 것을 되돌리고 해명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결국 내가 저지른 실수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야 했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 모든 것이 나의 부족함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나의 솔직한 고백은 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고 돌이킬 수 없는 처참한 결과를 만들었다. 가슴이 아프다. 무엇보다 이제 더 이상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슬프다.     








어제 남편에게 이야기를 토해내며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남편이 나에게 한 마디를 건넨다.


“솔직함과 솔직함을 표현하는 것은 다른 거야.”     




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지난 시간동안 어떤 때는 지나치게 솔직하게 생각을 표현하며 살았다. 직장을 다닐 때도 그랬다. 무언가가 옳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상대방이 팀장이든, 그 위 상사든, 가리지 않고 생각을 뱉었다. 남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몸을 낮추고 눈치를 보았다. 결국 쏟아진 말들에 대한 책임은 내가 껴안아야 했다. 누군가는 주제 넘는 행동이라고 비난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참아야 했을 때 더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매번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운이 좋았던지 아님 요령 없이 일하는 나의 진심이 통한건지 그로인한 갈등은 없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나는 그저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지금 나는 솔직함을 표현하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이기적이고 위험한 일인지를 깨닫는다.

솔직함이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보가 몇 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잖아. 이번 일을 인생 경험이라고 생각해봐...”




그곳은 아들 넷 엄마가 된 나에게 유일한 사회였다. 다시는 소속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내게 찾아와주었던 유일한 사회, 아마도 그곳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절박함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불안함은 조급한 언행으로 이어지게 만들었고 결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했다.     



 

나는 안다.

그곳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지 않는 것이 나를 덜 아프게 하는 것이라는 걸.

이제는 잊어야 한다는 걸.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걸.

그곳에 머물지 않았던 그때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그러나 희망고문은 이 밤의 끝자락을 아직도 놓아주지 않는다. 실낱같은 햇빛이 어둠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 나에게 찾아올 것만 같다. 언젠가는 오늘의 일을 웃으면서 기억할 수 있는 날이 올 것만 같은 작은 희망. 소중했던 사람들과 다시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희망.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처럼 그 희망도 언젠가는 엷어지고 희미해져 결국에는 저 대기 속으로 산화될 것이라는 것을.   



  

언제쯤 요동치는 마음이 평온을 찾을 수 있을까. 아마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내가 그곳에 몸담았던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쉽지 않겠지만 그날을 내려놓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실수는 누구나 하니까. 결점 없는 인생은 없으니까. 나를 내려놓아야 비로소 내가 자유로워 질 것이라는 것을 아니까.  



    

오늘 밤 나는 안쓰러운 나를 그렇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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