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지없이, 특별할 것 없이 우울한 날이었다. 우울은 디폴트이다. 나는 늘 우울의 갯벌에 발을 담그고 있다. 그저 잠시 발에서 눈을 떼어 맑은 하늘을 바라볼 때가 있을 뿐. 궁금하다. 우울한 자들은 모두 나처럼 배신을 당했을 때, 모욕을 당했을 때, 이별 선언을 받았을 때, 거센 비난을 받았을 때, 심장은 발길질하고 잠은 오지 않고 낮에는 세상과 나 사이에 한 꺼풀의 필터가 껴있고 밤에는 어두운 방에서 두 눈을 뜨고 새벽을 기다리는지. 그제야 느껴지는 그 이상하게 익숙한, 모든 불행과 혐오가 너무나 마땅한, 기어코 편안하게까지 느껴지는 우울의 고향이 존재하는지. 행운과 행복은 나와 어울리지 않다는 안도감을, 불행해야 편안한 패러독스를, 지독하게 당연한 우울과 잔잔한 자살사고를 아는지.
괴롭다고 생각한 삶의 공간에서 벗어나서, 심리상담을 받아서, 아이라는 삶의 이유가 생겨 자기혐오와 무가치함에서 멀리 벗어났다 생각하면서도 혼자 남겨지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우울이 스멀스멀 찾아온다.
그렇게 잠시 맑은 하늘에 정신이 팔렸다 발밑을 내려보니 여전히 우울의 갯벌에 두 발이 고이 담가져 있는 것을 확인해버린 아침이었다. 억지로 의욕을 짜내어 베이커리에 가서 빵을 사 먹자고 아이를 데리고 나섰다.
베이커리에 들어갈 때, 한 손님이 달려와 유모차를 끌고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다. 갯벌에 빠진 두 다리를 향해 있던 내 시선을 돌려주는 오늘의 첫 번째 친절. 이런, 지갑을 두고 왔다. 메뉴까지 다 골랐다가 지갑이 없어 허둥지둥함에도 불구하고, 직원은 웃으며 다음에 또 오라고 말을 건네준다. 갯벌에서 휘청거리는 내 한쪽 손을 잡아주는 오늘의 두 번째 친절. 다시 문을 열고 나갈 때 이번엔 문밖의 다른 누군가가 달려와 문을 잡아준다. 그리고 유모차 속의 아이에게 활짝 웃음 지어주는 이름 모를 어여쁜 대학생의 얼굴. 반대쪽 손까지 잡아주는 오늘의 세 번째, 네 번째 친절. 빵을 먹는다고 신났다가 잔뜩 실망한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오는 길, 친절한 아주머니를 만난다. 커다란 강아지를 산책시키다가 칭얼거리는 어린아이의 사연이 궁금해 지나칠 수 없었는지 이야기를 시작한다. 빵을 사주겠다고 약속하고는 지갑을 두고 나왔다고 하자, 자신이 요 앞에서 카페를 한다며 쿠키를 주어도 되냐고 하신다. 쿠키라는 말을 듣고 아이가 흥분할까 봐 ‘씨오오케이아이이’라고 말해주는 그녀의 배려와 유머. 카페로 데려가 쿠키를 주시고, 심지어 커피까지 나눠주는 다섯 번째 친절. 저녁에 다시 한번 도넛이 아른거려 찾은 팀홀튼에서, 도넛 여섯 개를 고르자 아이가 귀엽다며 작은 팀빗을 선물해준 직원아주머니의 마지막 친절.
오늘의 나를 우울의 갯벌에서 완전히 끄집어내 준, 미소와 커피와 쿠키와 도넛으로 이루어진 여섯 개의 달콤한 친절들. 당신의 작은 친절들이 마법처럼 오늘 하루 나의 무가치함을 삭제시켜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