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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승호 Mar 30. 2024

취업 특강 후기


이곳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곳이다. 12년 전에 내가 조경을 처음 접했던 00기술원이다. 나는 여기 기술원에서 실시하는 " 4개월 과정 조경관리과"를 수료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조경관리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오늘 수강생들은 후배이면서 은퇴자들이다. 강의가 후배들의 취업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교수님의 강사 소개가 끝나고, 수강생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보니, 취업의 간절함이 눈에 배어있는 것 같았다.


 나는 오늘 강의 내용을 중심으로 기간제 면접에 관한 팁과 현장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보다 많이 이야기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새롭게 접하는 조경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힘들지 않고 쉽게 적응할 수 있겠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취업에 대한 강한 동기부여를 갖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동기부여는 필요치 않을 것 같았다. 


 보통 강의를 하다 보면 30% 정도는 자거나 또는 핸드폰을 보면서 주의가 산만한데 오늘은 정말 100% 진지한 수강 태도에 힘이 절로 솟았다. 강의 내용을 하나하나 필기하는 모습들이 훤히 보이고, 조금이라도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지체 없이 손을 들어 질문을 하곤 했다. 


질문 중 몇 가지를 간추려보면


첫 번째, 관공서 기간제와 일반 회사 조경관리 중 어느 쪽이 취업이 쉽고 초보자들이 적응하기 좋은가? 


 정확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해보면, 조경 전문건설 회사는 이익 창출이 우선이기 때문에 


취업은 쉬워도 일이 상당히 힘들어 퇴사율이 높고, 일반 회사 조경관리는 최소의 인건비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어야 하기 때문에 그리 쉬운 곳이 아니다. 관공서 기간제는 정책적으로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채용하기 때문에 일의 강도는 조금 느슨한데 취업이 힘들다. 경쟁률이 심할 때는 10 대 1이 넘을 때도 있다. 


두 번째, 체력적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


  관공서 기간제로 취업하면 충분히 견딜 수 있다.  기간제는 계약기간이 보통 3~11월까지다. 12~2월 추운 겨울은 피하면서 실업급여 받고, 3월에 재취업하면 된다. 전년도에 특별한 잘못이 없었으면 그곳에 다시 취업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 단지 여름철 더위만 잘 보내면 그렇게 체력적으로 힘든 일은 없다.


세 번째, 화이트칼라에서 블루칼라 변신으로 인한 주변의 시선이 무섭다.


 우리나라 베이비부머 세대가 760만 명 정도이다. 경제력이 있든 없든 은퇴하고 30년을 놀 수 없다. 현실을 직시하고 고정관념을 바꿔라. 당신은 아직 절실하지 않은 것 같다.


네 번째, 채용시기?


 보통 12~1월 사이에 많지만, 수시로 모집하는 경우도 많이 있으니, 각 해당기관 홈페이지를 자주 방문하면 기회가 온다. 예) 정부기관 및 산하단체, 지자체(녹지과, 사업소) 및 산하단체(도시 관리공단 등), 독립 공단 및 공사 등.


 그밖에 많은 질문들이 있었고, 그에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답변은 이렇게 마무리했다. 지금 남들도 다 하고 있고, 여러분들도 다 할 수 있다고.


 원래 강의시간이 2시간이었는데, 수강생들의 적극적인 요청으로 교수님한테 양해를 구해 1시간 더 연장했다. 내가 조경 수업받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그때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충대충이었는데, 지금은 적극적이면서 취업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그래서 나는 수강생들에게 감동을 받아 뒤풀이 제안을 했다. 아직도 궁금한 점이 있으신 분들은  소줏집에서 한잔하면서 풀어보자고 했다.


 그리고 나는 교수님 실로 가서 티타임을 10분 정도 했는데, 하시는 말씀이 수강생 모집 정원이 34명인데 150명 정도 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은퇴로 취업 문이 좁아지다 보니, 자신의 취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문성과 자격증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 같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나도 도래하는 초고령 사회를 준비하기 위한 하나의 현상일 수도 있다.라고 거들었다.


 교수님께 시간 나면 다시 한번 찾아뵙겠다고 인사를 하고 문밖으로 나오니, 10여 명 정도의 수강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었다. 대화가 길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조용한 식당으로 찾아갔다. 


 함께하는 수강생들의 면면을 보니, 은행 지점장, 프로 골프선수, 대기업 부장, 철강 대리점 사장, 요식업 사장, 공인중개사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던 분들이었다. 술잔을 기울이면서 사연을 들어보니, 주식, 코로나19, 어음부도, 사업 부진, 이혼 등으로 인해 경제적 정신적으로 피폐해 있었다. 반드시 취업을 해야 될 생계형 수강생들이었다.


 이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조경 관리 취업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또 물었다. 술을 좋아하는 나는 평상시의 반도 못 마셨다. 나에게 책임이 주어지는 것 같아 술이 넘어가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면서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다. 그리고 꼭 취업하여 현장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하며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닐 때는 수강생 중 70% 이상이 취업이 아닌 취미와 실업급여를 타기 위한 구직활동의 일환이었는데, 오늘 수강생들은 100% 취업 준비생들이다. 정말 격세지감을 느낀다. 과연 은퇴자들 중 노후준비가 제대로 된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100세 시대라고 좋아하지만, 잘못하면 노인 빈곤 시대로 이어질 수 있다.  빈곤 탈출은 취업인데,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인가? 그리고 노인 일자리의 양과 질은 어떤가? 내가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한숨뿐인데……


정말 답답해서 차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열심히 메모하고 질문하던 수강생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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