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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승호 Mar 26. 2024

은퇴 후 "미명 아래"




나는 항상 6시 9분 전철을 타고 출근한다. 승객들의 대부분이 나이 많은 블루칼라들이다. 경비원, 환경미화원, 현장에서 일하시는 일용직 근로자 등, 모두들 점퍼 차림에 가방 또는 배낭을 메고 있다. 밤샘 업무가 끝나고 새벽 귀가하시는 분 또는 다른 사람보다 일찍 출근해야 될 사람들은 항상 잠이 부족하다 보니 피곤해서 눈을 감고 가면을 취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오늘도 여지없이 경로석에서 유튜브 소리가 크게 들린다.  언제부턴가 객실 내에 소음공해로 등장했다. 매스컴에서 개인 유튜브는 가짜 뉴스투성이라 매우 우려스럽다고 했지만,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요즘 실제로 부딪혀보니 정말 문제가 심각한 것 같다. 뉴스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유튜브 소식을 전한다고 전철 경로석을 점거하여 승객들의 짜증을 유발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것도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유익한 뉴스가  아니라 정치에 관한 내용이다. 물론 정치가 나쁘다는 소리가 아니라 정파가 다른 사람은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요즘 노인들의 정치 관심도가 높다지만 그래도 대중교통인 전철 안에서 음 소거를 하지 않고 유튜브를 본다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조용히 혼자 들으면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당 홍보 요원처럼 행동을 하니까 문제라는 것이다. 유튜브 듣고 있는 것이 마치 깨인 사람인 줄 아나 본데, 깨인 사람이 모두 얼어 죽었나 보다. 모두들 인상을 찌푸리면서 한 소리씩 해도, 노인이란 미명 아래 아랑곳하지 않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거기에 자유라는 단어까지 갖다 붙인다. 나는 상식을 벗어나는 언행을 보면 참견하는 성격이라 몇 년 전부터 그런 상황이 보이면 스스로 피해버린다. 그래서 오늘도 한 칸이 아니라 두 칸을 피해 갔다.


 한데 그곳 경로석에서도 큰소리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서로 나이가 몇 살이냐고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요즘 이런 풍경도 자주 본다. 과거에는 일반석 쪽에서 젊은이가 앉아있으면 벌어지는 광경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잘못하면 젊은이에게 망신당하는 경우가 있으니, 노인들은 대부분 경로석 쪽으로 모여 도토리 키재기를 한다. 싸우더라도 끼리끼리가 좋은 모양이다. 한심할 뿐이다.


 퇴근길에 전철에서 내려 마을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11번 버스가 도착했다. 모두들 앞문으로 승차하는데 누군가가 뒷문으로 타나보다 운전사가 소리를 지른다. 승차해서 보니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었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나이 먹은 것이 벼슬이야 하면서 수군수군거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 자리를 얼른 피했다. 나에게 하는 소리처럼 들렸고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기분이 들어 싫었다. 왜 저러실까? 의자에 앉고 싶어서 모르는 척 뒷문 승차했을 것인데, 현실은 질서가 예의범절보다 위에 있는 것을 모르나 보다. 질서를 지키면 자연스럽게 예의범절이 따르게 된다. 질서를 어긴 사람에게 누가 자리를 양보하겠는가? 노인이라고 모든 게 용서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무조건적인 노인 공경 시대가 아니며 이것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그리고 한참을 가다 버스가 급정거를 했다. 차내 많은 사람이 넘어지고 소리 지르며 아우성이었다. 그 순간 버스기사는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이지? 하면서 창밖을 보니, 노인 한 분이 버스가 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단횡단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만약 다쳤을 경우 누구의 책임일까? 물론 전방부주의로 버스기사도 책임이 있겠지만, 노인 한 사람의 무단횡단으로 본인은 물론 많은 사람이 불행해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버스기사님 말씀이 아직도 무단횡단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식 또는 손자들에게 뭐라고 가르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저러다 문제가 생기면 오히려 운전사 탓을 한다는 것이다. 어떨 때는 자해 공갈단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나이 먹으면 왜 저리 용감해질까? 사고는 남녀노소 가려서 나는 것이 아닌데, 타의 모범이 되지는 못할망정 법이라도 지키고 또 노인이라는 특권의식을 버려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아도 인구 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부담에 대해 세대 간 갈등이 우려되고, 형평성 논리로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지고 있는데…

뒷문 승차나 무단 횡단 같은 행동은 더욱더 부정적 인식이나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파트에 도착해 출입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뒤를 돌아보니 출입문 밖에서 허리 굽은 어르신이 반려견을 데리고 손짓을 하며 같이 가자고 한다. 우리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안쪽에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 걸음이 느리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탑승 후 서로 목례를 하면서 감사 표시를 하곤 한다. 바라서가 아니라 이분은 당연한 것처럼 행동하며 나를 투명 인간 취급했다. 그리고 반려견은 발밑에서 낑낑거리면서 날뛰고 정말 불쾌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반려견을 품에 안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를 했더니 당신이 뭐냐? 식으로 쳐다봤다. 엘리베이터 벽에 붙어있는 "올바른 반려견 승강기 문화 만들기"가리키며 읽어보라고 하니, 자기는 노안이라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요즘 대부분 노인들은 불리하면 노인이라 모른다 하고, 유리하면 법률용어까지 들먹이며 따진다. 조금 더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집으로 들어왔다. 옛말에 나이 많은 어른이 참는다고 했지만 오늘은 나이 어린 내가 참기로 했다. 


오늘은 소리로 시작해서 야단 소리로 끝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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