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승호 Mar 11. 2024

은퇴 후 "경계"

우리는 살아가면서 옳고 그름, 책임 소재, 판단 등에서 경계가 모호한 경우를 많이 겪는다. 젊었을 때는 선을 넘거나 미치지 못해도 일보 전진을 위하는 경우라면 당사자들의 관용으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지만, 중장년으로 가면 망신이나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나는 은퇴 후 지금도 직장을 갖고 있고 아내도 내년에 은퇴를 앞둔 직장인이다. 이제 아내의 환심을 사고 싶어 젊었을 때와 달리 집안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 솔선수범해 보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하다 보면 아내의 존재감을 건들 수 있고, 손놓고 있자니 미안하고 진퇴양난이었다. 


 그래서 집 안 청소와 정리 정돈이 제일 쉽고 무난할 것 같아 실행으로 옮겼다. 한데 가끔씩 아내에게 야단을 맞았다. 다음날 출근할 때 입을 옷을 모르고 옷장 깊숙이 넣어놓거나, 쓰다 남은 화장품이나 또는 물건들을 버리는 경우가 있어서다. 그럴 때는 반항도 못하고 소심하게, 제자리에 놓아두면 치우거나 버리지 않았을 거 아냐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물론 제자리의 기준은 나의 기준이다.


 그리고 쉬는 날 늦잠을 자고 일어나 미안해서 청소라도 하려고 청소기를 돌리면, 일찍 일어나 거실에서 TV를 보던 아내는 시끄럽다고 소리를 지른다. 모처럼 쉬는 날 보고 싶은 드라마 보고 있으니 끝나면 하라고 한다.

 나는 눈치가 제로인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나? 젊었을 때부터 늘 해왔으면 상황 판단을 잘했을 텐데, 도대체 아내가 만족할 수 있는 기준점은 어디일까?라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한참 후 떠오르는 것이, 때와 상황에 따라 말투가 달랐던 거 같다.

 다시 말해 만족도의 경계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실행에 옮긴 것은 밥하고 설거지하는 것이었다. 이것도 아내와 방법이 조금 달랐다. 이상하게도 밥 짓는 일은 아내보다 내가 더 낫다. 이유는 아내는 전기밥솥인데도 계량 밥을 하지 않고 어머니 때부터 했던 손등 또는 눈대중으로 물높이를 맞춘다. 하지만 나는 정확하게 계량 밥을 하니까 찰진 밥이 된다. 그래서 밥 짓는 것 하나만큼은 아내에게 칭찬받는다

밥 짓는 것은 아내의 경계선 안쪽에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설거지할 때는 혼난다. 나는 세재를 쓰지 않으면서 약간 뜨거운 온수를 틀어놓고 흐르는 물에 맨손으로 그릇을 닦는다. 기름 묻은 그릇이 아니면 가족 건강이 염려되어 세재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아내는 물을 담아 놓고 세재로 닦은 다음 다시 물로 헹군다.  그리고 아내는 고무장갑을 끼고 찬물로 한다. 아내는 온수 물 틀어놓고 설거지를 하면 관리비 많이 나온다고 쓴소리를 한다. 

내가 하는 설거지는 아내의 경계선 밖에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화장실 청소를 시도해 보려고 한다. 현재는 화장실 청소를 전적으로 아내가 한다. 안방과 거실에 있는 화장실을 아내는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화를 내며 자기만이 화장실 청소당번이냐고 한다. 그럴 때는 못 들은 척하고 서재에 있는 컴퓨터 앞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한다.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화장실 청소는 힘들 것 같아 집안일 도움 경계에서 바깥쪽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아내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나만의 경계 설정이다.

 


 나는 한 부서의 말단 관리자다. 그래서는 아니지만 제일 먼저 출근하여 휴게실 청소를 하고, 커피도 마실 겸 커피포트에 물을 채워 끓여놓는다. 그리고 멍 때리고 있다 보면 다른 동료들이 출근한다. 나는 명상하는 것보다 마음을 비워 멍 때리는 것을 좋아한다. 


  조회시간에 작업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준비물 챙기는 것은 동료들의 자율에 맡긴다. 그리고 준비과정을 보고 있으면  신참은 몰라서 허둥대고 고참들은 서로 눈치싸움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눈치싸움이 길어질 경우는  내가 직접 챙기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모두들 서두르며 서로 나선다. 

자율은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지를 갖고 경계를 허물어 상대방을 배려해야 완성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의 지시와 명령이 개입되면서 경계가 뚜렷해져 피곤해진다.


 현장에 나가 일을 하다 보면 잘하는 사람, 조금 서투른 사람 등 각자 능력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숙련된 사람들은 자연스레 불만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다른 미숙련 자들은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인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관리자인 나는 둘 다 아울러야 된다. 각자 내가 생각하는 기대치의 기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숙련된 사람에게 미안하고 칭찬하고 싶지만, 기대치의 경계 안에 둘 다 들어왔기 때문에 차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료들 개개인을 관심 있게 보면서 조금이라도 타고난 소질을 찾는데 노력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소질을 살려주면 서로의 부족함을 보충하면서 상대방 능력을 인정하게 되고 일에 대한 능률뿐만 아니라 불만 없이 팀워크도 돈독해지기 때문이다. 각자의 경계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이렇듯 옳고 그름, 책임 소재, 판단 등을 결정하는 경계의 기준은 고정적이지 않고 요건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경계의 범위에 따라 결과가 변화무쌍하다. 경계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누가 설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 또는 당사자들이 상황에 따라 설정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마음속으로 일정한 선을 그은 다음, 사람 또는 사물을 대하기 때문에 상당히 보수적으로 설정한다. 그렇다고 절대 불변은 아니다. 서로가 마음의 문을 열면 여러 가지 상황과 형태로 변화될 수 있다.


 경계를 허물거나 폭을 넓히면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원활하고 사물을 대하는 시야와 마음이 넓어질 것이다. 경계의 벽을 허물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배려와 이해다. 은퇴 후 배려와 이해는 마음을 비워 자신을 내려놓으면 자연스럽게 생긴다. 물론 쉽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쉬운 방법을 찾아보려고 많은 노력을 해 보았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할 수 없이 차선책으로 내가 좋아하는 멍 때림으로 마음을 비우고 있다. 은퇴자 여러분들도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 후반기 인생을 멋지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은퇴 후"세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