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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Aug 19. 2021

What's in your bag?

내 가방이 무거운 이유


지하철로 출퇴근하다 보면 작은 가방을 가볍게 맨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책과 노트, 장지갑과 카드 지갑, 티슈, 여분 마스크 등이 담긴 묵직한 백 팩을 멘 나의 모습과 대조된다.


회사에는 아예 가방 없이 핸드폰과 에어 팟만 갖고 다니는 직원들도 꽤 많다. 폰 하나만 있으면 무리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세상이니 그럴 만도 하다. 최소한의 소지품을 주머니 속에 쏙 넣고 홀홀 단신으로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은 영혼마저 자유롭고 홀가분해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왜 그런 자유를 누리지 못할까. 나도 꼭 필요한 것만 챙기면 가능하지 않을까?

내 한 몸 세우고 다니기도 힘든데 무거운 가방에 도시락 가방까지 들고 지하철 인파에 끼어 다니는 내 모습이 짠해서 나름 짐을 줄여 가볍게 다녀 보려 했지만 여태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한쪽으로 무게가 기우는 숄더백이 만원 지하철에서 불편하여, 미관을 포기하고 백 팩을 메고 다니고 있다. 나의 백팩 멘 모습이 미관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을 얼마 전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어떤 분이 나에게 건넨 인사말을 듣고 알 수 있었다.


"학교 가?"


쳇. 나 잔스포츠 매고 있는 거 아닌데.


하루 동안 꼭 필요한 것들을 담는 가방.

각자의 성향과 생활 패턴에 따라 가방에 담길 물건이 정해진다. 간편한 걸 좋아하는지 아닌지, 걱정이 많은 타입인지 아닌지 등에 따라 챙기는 물건의 가짓수가 달라진다. 가방을 챙기는 것은 단순해 보이지만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 성향, 심리까지 반영되는 꽤 복합적인 행위로, 당연히 나의 '꼭 필요한 것'과 그들의 '꼭 필요한 것'은 기준부터 다를 수밖에 없었다. What's in my bag을 주제로 셀럽들의 가방 속을 보여주는 콘텐츠가 왜 생겨났는지 알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의 라이프스타일 공유와 다름없었다.  




내가 가방 속 물건을 덜어내지 못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가장 큰 이유는 '~할 가능성'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스스로에 대한 과대평가와 자잘한 불안들이 동시에 이입된다.


틈날 때 영어 공부하기 위해 노트를 챙기고, 틈날 때 읽으려고 종이책을 챙긴다. 일과를 기록하는 다이어리도 언제든 쓸 수 있으니 넣고, 펜과 이어폰도 챙긴다. 자투리 시간에 아주 많은 걸 할 거라고 자신의 실행력을 높이 평가한다. 현실은 그런 것들 다 필요 없이 SNS로 빨려 들어갈 때가 훨씬 더 많다. 사실 영어공부, 책 읽기, 다이어리 쓰는 것 모두 핸드폰 안에서도 가능하다. 가볍게 다니는 이들은 이 대목에서 쿨하게 핸드폰만 챙길 것이다. 그렇게 해도 아무 없을 텐데. 알면서도 나는 휴대폰이 보기 싫을 때를 대비하여 종이책과 노트, 다이어리를 극구 챙기는 것이다. 마음이 바뀌어 핸드폰 안 보고 다른 거 하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까. 내 변덕을 나도 알 수 없으니까.


추가로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물티슈와 여행용 휴지, 블루투스 이어폰 배터리 떨어질지 모르니 유선 이어폰도 넣는다. 자주 건조해지는 손을 위해 핸드크림 넣고, 마스크 줄이 느닷없이 끊어져 곤란해질 까 봐 여분 마스크도 챙기고, 요새 지하철 냉방이 추울까 봐 얇은 겉옷도 넣고, 구름이 열일 하느라 불쑥불쑥 내리는 소나기를 피하려면 휴대용 우산도 챙겨야 한다.



아니, 이렇게 필요한 게 많은데 다들 어찌 그리 가볍게 다닐 수 있는 거지?

나열하다 보니 내가 어딘가 꽉 막혀 미련 떠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혹시 내가 이동시간이 긴 장거리 출퇴근 자라서 유난히 더 그런 걸까? 몸과 마음을 가뿐하게 살고 싶은데 오늘도 내 가방은 무겁다.

 

괜한 미련과 불안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조금은 가벼워지도록 일상 패턴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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