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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Oct 10. 2021

대답 없는 그들에게


엘리베이터에서 그들을 마주쳤다. 인식했지만 인사하고 싶지 않아 눈 마주치지 않고 그대로 핸드폰을 주시한 채 있었다. 그들 역시 나에게 관심 두지 않고 먼저 내렸고, 나도 내 층에서 내려 자리로 돌아왔다.


그들은 다른 부서 직원들이었다. 내가 인사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나는 업무 상 내가 알리고 진행해야 할 일에 대해 이메일을 보냈고 그들은 그에 부합하는 서류를 마련하여 내게 전달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다. 처음 메일을 보냈을 때 사정 상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회신이 왔다. 엄수해야 할 제출기한이 있는 일은 아니었기에 그들의 일정에 맞추겠다고 하고 나는 기다리는 중이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서류를 받지 못할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사실 마음먹으면 준비하는 데 그리 큰 수고가 들지 않는 것들이었다. 나도 직접 해봐서 알고 있고 아무리 걸려도 일주일이면 다들 서류를 제출해주었는데,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 급한 일이 아니라 해도 내 입장에선 뭔가 지연되고 있는 것이 점점 신경 쓰였다. 자기들 일만 중요해?


기다리다 3주쯤 지나고 리마인드 메일을 보냈다. 바쁜 줄은 알지만 이만저만 하니 9월 중에는 서류 전달을 부탁한다고. 아무도 회신을 보내오지 않았다. 어라?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그 부서의 비즈니스는 아주 잘 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절실하지 않은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건가? 그렇다고 한 달을 뭉개고 있는 건 너무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이 사업 잘된다고 잘난 체하는 존재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에서 그들을 본 순간 잠시 잊고 있었던 불쾌감이 올라왔다. 내가 보낸 메일에 한마디 회신은 안 하면서 커피 사 오고 수다 떨 시간은 있나 보네. 지극히 내 관점에서 심사가 배배 꼬이기까지 했다.


급할 것 없는 일이긴 하다. 사실 그들 서류 안 받아도 그만이었다. 지금 진행해 놓지 않으면 나중에 불편할 대상은 미래의 그들이지 내가 아니었다. 나는 업무 지원 담당으로서 미리 안내했고 리마인드까지 했으니 내 할 도리는 다 했다. 이 건을 처리하든 안 하든 나에게는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이 감정의 근본은 일의 진척보다 상호 간 업무 교신 과정에 대한 불만이다. 이메일 회신은 업무자들 간의 기본 예의다. 이메일을 늦게 확인하는 것도 별로지만, 늦게라도 확인하고 회신을 하면 된다. 그러나 봤는지 안 봤는지, 어떤 의견이 있는지, 언제까지 가능한지 등.... 상대에게 참고가 될 수 있도록 짧게나마 회신하는 것은 매너다. 아무 답이 없는 것은 무시한다는 의미가 되어 상당한 불쾌감을 준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 상대가 성의를 보이지 않는 일에 나도 더 이상 내 에너지 쓰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글로 쓸 만큼 내 감정은 잠시 부글거렸지만, 그들과 다른 일로 또다시 연락하게 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감정은 덮어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업무 지원을 할 것이다. 이 불쾌감은 끈적하게 남겠지만 심사가 뒤틀렸다고 업무까지 뒤틀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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