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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Nov 21. 2021

FM인 사람

얼마  회사 내 TF팀 미팅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사전에 협의했으면 하는 부분을 정리해 의견을 나누다 보니, 내가 다수를 향한 일에 과하게 세세하고 친절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용 방식을 바꾸는 것에 있어 여러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사전에 필요한 가이드를 주고자 했는데, 다른 들은 방침만 주면 세부적인 것은 각자 혹은 각 팀에서 알아서 맞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만 관리부 직원이어서 보는 관점이 달랐을지도 모르겠으나, 어쩐지 나는 좁게 보고 그들은 넓게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미팅 끝에 한 상급자분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되게 정직하게 일하는 것 같다고. 내가 쓸데없이 착한 직원 같다는 뉘앙스였다.


나는 어떤 일이든 정석대로 하는 경향이 강한 사람이다. 소위 말하는 FM인 사람이다. 정해진 룰이 있으면 그 룰대로 해야 제대로 속이 편하다. 정석대로 하지 않았던 일들은 뒤늦게 화살처럼 돌아오거나 괜스레 마음 졸이게 만들기도 해서 신경적으로 상당히 피곤했다. 원래 성격도 그런 편인 데다 관리부서에서만 18년을 일해오다 보니 그 성향이 더욱 굳어진 것 같다. 나이 먹고 직급도 올라서 지금 그나마 조금 나아진 모습이라고 스스로 평가하지만 여전히 원칙대로 하지 못할 때면 마음 한편 찜찜함을 지우지 못하고, 별것 아닌 일에도 후환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다.


그렇게 꽉 막힌 듯 정석으로 하려는 성향은 오랜 시간을 거치며 나의 강점이자 콤플렉스가 되었다. 관리부에서 전사적인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 정석대로 해 왔기 때문에 이때껏 큰 잡음 없이 일 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그런 방식이 익숙해지다 보니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 너무 타이트하게 접근한다는 것이 단점이 되었다. 사안에 따라 융통성 있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라기보다 그런 재량 부리는데 신경 쓰느니 일단 정석대로 가는 게 더 편해져 버렸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앞서 말한 대로 자꾸만 일어나지도 않을 후환을 생각하게 되는 소심한 성격 탓도 있을 것이다.


최근 이사할 집 계약을 할 때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적당한 집이 나와 가서 보고 보증금 확인하고 들어갈 집의 근저당 상태나 계약금 처리 등을 준비하면서 부동산 사장님과 문자를 수차례 주고받았는데 그 과정에서는 더욱더 내 FM 적인 성향이 발휘되었다. 큰돈이 오가고 한동안 살아야 할 집을 준비하는 일이니 더 예민하게 이것저것 확인하고 챙겼다. 계약을 마무리하면서 내가 좋은 주인 분과 인연이 된 것 같아 감사하다는 말을 하니 부동산 사장님께서 거들어주시는 듯 집주인께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 세입자분 정말 FM인 분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임차인으로 살면서 복잡한 일 만들 사람 절~대 아니에요~"


정직하게 일하는 것 같다, 정말 FM인 분이다 라는 말을 연달아 들은 요즘, 어쩌면 모두가 나를 답답하게 보는데 나만 그걸 모르고 사는 건 아닐까 조금 서늘한 기분이 든다. 정석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꽉 막힌 사람은 싫다. 하나의 기질로 굳어버린 이 성향을 바꿔내긴 힘들겠지만 신경 쓰면 완급은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요령을 갖고 기본을 지키는 방식으로 개선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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