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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Oct 29. 2021

#1 _ 다툼과 화해


하루 종일 휴대폰과 닌텐도만 하다가 밤 11시 다 되어서 숙제한다는 아이에게 화가 올랐다. 여태 뭐하고서 이제 숙제하느냐는 잔소리가 터져 나왔고, 어떻게든 아이를 혼내야겠다는 생각에 꾸중하는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제라도 해야죠." 하는 아이의 뻔뻔함에 더 화가 나서 이 시간에 하길 뭘 하냐고 그냥 자라고 했더니 "그래도 숙제는 해야죠." 하며 맞받아치는 녀석이 어이없었다. 이틀 뒤 과목 평가가 있고, 숙제도 있던 상황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는 고집과 반항의 눈빛을 담아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꼬박꼬박 말대꾸를 했다. 하나도 죄송하지 않으면서 로봇처럼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는 아이에게 울화가 치밀었다. 더 하다간 내가 나를 조절하지 못할 것 같아서 꾹 참고 앞으로는 좀 미리미리 하라고 한 뒤 방으로 돌아와 화를 삭이며 잠에 들었다.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 내내 아이의 눈빛이 생각났다. 괘씸한 녀석... 내신을 걱정하면서 어쩜 말과 행동이 그렇게 다른가. 사춘기를 조용히 지나고 있는 편이지만 이렇게 한 번씩 대적하는 듯한 태도가 나오는 걸 보니 그래도 사춘기는 사춘기구나.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출근 전에 항상 아이들 방에 들러 열 체크하고 자는 모습을 보는데 곤히 자는 아이를 보니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과정이 어땠든 늦게라도 숙제를 하려 했던 아이였는데 1절만 할 걸... 쌀쌀해진 날씨에 옷 얇게 입고 갈까 봐 걱정되어 따뜻하게 입고 가라고 메모 남기고, 평소처럼 출근길에 전화로 모닝콜을 해 주었다.




"엄마... 어제는 죄송했어요."

"응? 뭐가...."

"제가 어제 그렇게 말대꾸하고 그래서 엄마가 짜증 나셨을 것 같아요. 죄송해요."

"아니야.. 엄마도 너한테 너무 뭐라고 해서 미안했어. 이해해주고 먼저 얘기해줘서 고마워."

"엄마 저 수학 평가지 12문제 중에 1개 틀렸어요. 헤헷."  



아이는 오후 하굣길에 나에게 전화해서 사과했다. 반나절 동안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사과하는 성숙한 모습이 어찌나 고맙고 기특하던지. 안 그래도 내내 마음 쓰였고 전화받을 때만 해도 조금 어색했는데 아이의 말에 순간 머리가 띵해지더니 뭉쳐있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사실 다투고 난 뒤 나는 서운한 마음에 치사한 생각을 했었다. 반항하는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야 할 것 같았고, 내가 너무 잘해줬나. 뭘 하든 말든 신경 꺼버릴까. 어떻게 해야 아이에게 똑바로 하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것을 일깨워줄 수 있을까 고민하기까지 했는데. 엄마인 내가 기분 나빴다고 아이를 상대로 더 유치하고 치사하게 나가지 않았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전날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변함없이 아침에 메모와 모닝콜로 챙겨줬던 게 아이로 하여금 반성과 사과를 건네게 한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아이에게 그것이 엄마가 먼저 사과해주었다는 신호로 전달되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화해했다. 


갈등이 생겼을 때 아이에게도 마음과 기분을 정리할 틈이 필요하다. 그 시간 없이 계속 몰아붙이거나 감정적으로 자극하면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것만큼은 경계하며 늘 대화가 가능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말이 안 통하는 부모'는 정말이지 싫다. 


아이는 건강하게 잘 크고 있으니 나만 잘하면 될 것 같다. 욱하는 성미를 가라앉히고 항상 좋은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도록 끊임없이 훈련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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