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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Nov 07. 2021

#2 _ 엄마는 걱정이 너무 많아


딸아이가 집에 들어오는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 있는지 물어보니 친구들과 있었던 일을 봇물 터지듯 쏟아냈다. 여섯 명의 친한 친구들이 있는데, 그중 한 친구가 만들기 수업에서 친한 여섯 명 중 한두 명에게 뭘 좀 도와달라고 한 모양인데 다들 경황이 없어서 어렵다고 도와주지 못했단다. 도움을 받지 못한 그 친구는 자신을 무시했다고 받아들여서 마음이 상했는데, 그 친구 없을 때 다섯 명이서 모여있는 걸 어떤 친구가 몰래 영상을 찍어 마치 그 아이의 험담 중인 것처럼 그 친구에게 전달하는 바람에 일이 커진 상황이었다.


영상을 전달받은 그 아이는 마음이 상한 걸 넘어 크게 화가 나서 여섯 명이 있는 단톡방에 그 영상을 공유하고 왜 내 험담하느냐며 따져 묻고 사과를 요구하고 있었다. 딸아이는 뒷담 하고 있던  아니라 그 친구가 기분 상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각자 어떤 상황이었는지 얘기하고 있었다고 했다. 사실 10초짜리 그 영상에 담긴 대화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모여있는 모습만 찍힌 것이었다. 말소리도 없는데 그 친구를 빼고 모여있었다는 것이 오해를 던 것이다. 아무리 스마트폰과 영상매체에 익숙한 요즘 애들이라지만 친구가 친구를 몰래 촬영하고 그걸 다른 친구에게 전달하는 행동이 거리낌 없이 이루어진다는 건 참으로 우려스러웠다. 아직 어려서 그런 행동의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모르기 때문일 테지만. 딸애에게 다른 건 몰라도 몰래 영상을 찍고 전달한 다른 친구의 행동이 가장 좋지 못한 거라고 말해주었다. 몰래 찍거나 강요해서 찍는 건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코드가 맞는 아이들끼리 친해지고 어울려 노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렇게 무리가 형성되면 그 안에서 자잘한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각자 개성이 있어 어떤 부분에선 어긋나고 맞추기를 반복하면서 그 과정을 통해 사회성이라는 걸 키워나가게 되는 거라고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막상 아이 앞에 꼬여있는 그 상황이 내심 걱정스러웠다.


화가 난 그 친구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딸에게 물으니, 의외로 아이 대답은 간단했다. 절교하거나 화해하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고. 그 친구를 이해하고 있었다. 마음 상하게 한 부분은 사과하고 과정 중에 딸애가 기분 나빴던 것도 얘기하고 서로 사과를 하게 된다면 다시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했다. 아이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그 친구에게 따로 메시지를 넣기 시작했다.


말이 말을 낳고 잘못 말하면 다시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 나는 아이를 지켜보며 필요한 조언을 하려 했는데, 그런 나를 보며 딸이 말했다. "엄마, 너무 어리게만 생각하지 마. 엄마는 걱정이 너무 많아."



아이의 단호한 말에 머쓱해진 나는 "엄마들은 원래 걱정이 많아. 부모는 자식 걱정을 제일 많이 하는 거야." 하며 한발 물러났다. 어떻게 말할지 이미 정리된 것 같아서 나는 내 할 일로 돌아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이의 친구 문제에 왜 이렇게 내가 걱정할까. 내가 나설 수 있는 문제도 아닌데 말이다.


이유는 내 어린 시절이 이입되었기 때문이었다. 딸아이와 달리 나는 어렸을 때 무척 소심했고(지금도 그렇지만), 친구들과 잘 지내려 노력하면서도 관계가 깨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타입이었다. 사귄 친구들과 좋아서 그런 거 신경 쓰지 않고 잘 지냈던 시절도 있었지만, 성격 상 서로 다른 아이들끼리 언제든 생길 수 있는 갈등에 무척 취약해서 하기 싫고 놀기 싫은데 친구 때문에 억지로 하기도 하고 눈치 봐가며 비위 맞추던 때도 많았다. 어릴 적 친구에 대한 그런 기억들로 인해 내 아이도 나처럼 그럴까 봐,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될까 봐 지레 겁먹고 걱정했던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부모 자신의 성장과정이 왜 중요하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날 아이는 친구에게 당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친구를 이해해 주며,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이 언짢았던 부분도 이야기하고 결국 친구와 화해했다. 그 친구도 자신의 감정이 너무 과했던 것 같다고, 다른 친구들도 따로 자신에게 설명하고 사과해 주었다며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한다.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딸아이인데 어른이랍시고 어쭙잖게 참견하려다 아이를 혼란스럽게 할 뻔했다. 나에게 딱 선을 긋고 자기 방식대로 알아서 해결한 딸이 멋졌다. 어떤 일이든 아이가 자신답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묵묵히 바라봐주어야겠다. 유년의 기억과 걱정은 고이 접어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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