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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Dec 08. 2021

#3 _ 쇼미 더 머니와 사춘기

쇼미 더 머니 시즌 10이 끝났다. 예전만큼의 화제성이나 매운맛은 없었지만 우리 집에서는 인기가 좋았다. 큰 아이가 좋아했고 우리 부부도 새로운 래퍼들의 실력에 감탄하며 같이 재밌게 보았다. 함께 응원했던 조광일이 우승을 차지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고, 잠시 즐거웠던 기억으로 끝난 줄 알았다.


큰애는 전부터 음악에 관심을 보여왔다. 노래를 하겠다고 혼자 연습하며 예고 진학으로 방향을 잡으려다, 다니고 싶다던 학원 보컬 선생님과의 상담 후에 생각을 다시 하는 것 같았다. 그 선생님께서 환상에 가려진 현실적인 이야기를 쏟아주셔서... 그 후 한동안 음악 얘기는 꺼내지 않더니 이번에 쇼미를 본 후 '래퍼'를 향해 다시 나침반을 놓아보려는 모양이다.....



"엄마, 제가 음악 한다고 하면 어떠실 것 같아요?"
"음. 엄마는 '음악 한다'가 다른 모든 걸 내려놓고 '음악만' 한다가 아니라면 찬성이야."
"근데 그게 일반적인 음악이 아니라면요? 제가 쇼미에 나간다고 하면요?"
"쇼미? 나가면 되지 왜? 못 나가게 할까 봐 걱정했어??
다 경험이야. 하고 싶은 거 해야지. 어떤 음악을 하든 다른 무엇을 하든 엄마의 룰은 같아. 네가 학생으로서 해야 할 것들을 하면서 준비한다면 말릴 생각 전혀 없다는 거. '한 가지에 올인하겠다'만 아니면 응원할 거야."



새벽에 일어나 출근 준비하려는데 아이 방에서 랩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벽 5시에 랩이라니... 잠을 안 잤다는 뜻이었고, 나는 눈뜨자마자 피로감에 휩싸였다. 곧 기말고사인데, 하필 시험을 목전에 두고 소위 쇼미 '뽕'을 맞아버린 것 같다. 랩 하는 것도 좋지만 하루 일과가 있으니 생활 패턴을 깨지 않아야 한다고, 8시까지 3시간이라도 자라고 했다. 아이는 눈꺼풀을 끔뻑이며 억지로 누웠고 금세 잠이 들었다. 나는 걱정과 한숨이 깊어졌다.


그렇게 녀석은 겨우 3시간 자고 학교 다녀온 후, 30분 만에 다시 학원에 갔다가 밤 10시 넘어 귀가했다. 시험 준비 기간이라 학원 수업이 길었다. 해야 할 일들에 시간이 많이 할애되어 당장 하고 싶은 랩 연습을 못하는 상황이 무척이나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피곤함에 침대로 고꾸라질 줄 알았는데 다크서클이 한 뼘은 내려온 얼굴로 밥 생각 없고 공부하겠다며 그 밤에 컴퓨터를 게 해달라고 했다.


나는 믿음이 부족한 걸까, 예지력이 뛰어난 걸까. 도무지 그 컴퓨터가 공부에 쓰일 것 같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제일 필요한 건 잠이었다. 졸리지 않으니 공부 더하겠다고, 뻔히 보이는 수를 쓰며 고집부리는 녀석에게 속이 상했다. 정말 참가한다 해도 다음 쇼미는 내년인데 왜 이리 안달일까. 나도 오늘마저 안 자면 내일은 진짜 컨디션 무너지게 되니 제발 자라며 굽히지 않았다.



"아니, 공부 안 하냐고 하실 땐 언제고 왜 공부하겠다는데 잠을 자라고 하세요. 학원에서 안 배우는 과목은 따로 준비할 시간이 없는데 그럼 언제 해요."

(후아.... 이놈아, 네가 제때 잤으면 내가...@.?-^~_.;%~~%:_[]₩"♧!!!)


"공부할 거니까 이제 그만 나가주세요."



..... 할 말이 없어졌다.

잠을 자라고 하는 이유는 아이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떤 말이든 듣지 않을 태세. 건드리지 말라는 듯 쏘는 그 눈빛은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서 사춘기와 너무 씨름했다. 말하면 크게 화를 내버릴 것 같아서 방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하소연했다.


"당신 사춘기 때 부모님이 이래라저래라 하면 좋았어?"
"아니..."
"우리 어렸을 때랑 똑같지. 어쩌면 더 심할지도 모르고...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참견이 되고 부모를 방해꾼이라고 생각할 시기니까 그냥 ~"
"그래도 무관심한 부모는 되지 말아야 하잖아. 부모로서 챙길 건 챙겨야 하지 않아?"
"관심을 끊자는 게 아니야. 그냥 애가 왔다 갔다 할 때 봐주고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하라는 말만 한 번씩 해줘~ 그 이상 터치하지 말자고. 길게 말하면 부딪히게 되고 사이만 나빠지니까. 못해도 1~2년은 갈 텐데 계속 그럴 순 없잖아.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나만큼이나 아이 걱정 많이 하는 남편이 담담하게 정리해 주어서 얘기 나누며 나도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마음에서 번번이 실패한다. 기대를 내려놓자고, 바라지 말자고, 믿고 지켜보자는 이성의 외침 앞에 늘 걱정과 불안, 답답함이 그림자처럼 드리운다. 그 감정들이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인지, 혹시 내가 싫어하는 걸 아이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오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육아는 정말 부모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어려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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