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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Nov 28. 2021

나의 절친한 벗

관계 이야기

하루 휴가를 내고 오랜만에 절친한 지인을 만났다. 나와 오랜 시간 함께 직장 생활하다 먼저 퇴사한 선배다. 그 시절에도 참 열심히, 도전적으로 사는 선배였고, 여자들의 기싸움이 가득했던 팀 내에서 제일 나를 편하게 대해 주었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고 공교롭게도 거의 같은 시점에 첫 아이를 임신했다. 눈칫밥 먹으며 입덧과 야근과 무거워지는 몸을 열 달간 함께 견뎠다. 모든 게 서툰 초보 엄마인 데다 아이의 연령까지 같으니, 자연스레 인생의 가장 큰 기쁨으로 인한 고단함과 걱정, 고민을 절대 공감으로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지나온 세월이 어느새 16년을 지나고 있다.


언니는 첫째와 터울을 좀 크게 지고 둘째를 낳았다. 아직 초등 저학년인 아이 챙기느라 개인적인 외출이 여의치 않고 코로나도 조심해야 하니, 지난해와 올해 모두 내가 언니네 집으로 찾아가 만났다. 전화통화와 카톡 연락을 자주 했지만 얼굴 보는 것은 1년 만이었다. 우리 둘째 아이 작아져서 못 입는 옷들과 곧 생일을 맞이하는 언니를 위한 몇 가지 선물을 챙겨서 회사에 출근하듯 일찍 집을 나섰다.


아침 9시에 도착해 오후 4시까지, 언니네 집에서 커피와 음식을 사이에 두고 시시콜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커가는 아이들, 나이 들어가는 우리와 남편, 부모님, 먹고사는 일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까지. 평소 전화나 메시지로 2D 소통을 했다면 만나서 이야기 나눈 이 날의 울림은 4D급이었다. 7시간 대화를 나누었음에도 헤어짐이 아쉬웠다.


늘 그랬던 것 같다.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은데도 왜 그리 사는 얘기 하기가 편하고 좋은 건지... 난 내성적이고 살갑지 않은 성격이어서 무리에 속하기보다 개인적인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직장이든 어디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금세 멀어져 버리곤 했다. 붙잡으려 애쓰지도 않았다. 가끔은 내게 온 인연들을 너무 쉽게 놓아버리나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결국 판가름의 기준은 내 마음에서 그 인연이 당기느냐 아니냐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인연은 따로 있다는 말이 있나 보다. 언니가 회사를 그만 두기로 결정했을 때도 그게 우리의 끝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내게 닥칠 허전함 앞에서 담담할 수 있었다.




관계를 지속하려면 어떤 부분에서도 부담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하다고 너무 허물없이 대하는 것도 달갑지 않다. 언니와 긴 시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겪는 일들이 비슷한 것도 있지만 서로에게 심적인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오래 봐 온 절친임에도 섣부른 조언이나 단호한 충고 따위는 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쉽게 내뱉는 "나 같으면..." 도 우리 사이엔 없다. 대체로 그냥 듣는다. 들으며 "그렇지... 어려운 일이야... 이런 생각을 해..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하며 헤아리고 공감한다.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게 아니니 결국은 각자 헤쳐가야 하는 길이지만 그 길에 휴게소 같은 존재가 되어준다. 힘들 때, 고민될 때, 슬플 때, 기쁠 때 내가 꼭 찾게 되는 사람. 나이 들수록 속 얘기를 타인에게 쉽게 꺼낼 수 없는데, 언니에게만큼은 나를 그대로 털어놓을 수 있다.


우린 각자 가진 선택의 기로에서 수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이 키우는 일, 부모와 가족, 먹고사는 문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들. 내 맘과 달리 복잡할 때가 많아서 늘 감사함과 힘겨움이 공존한. 그냥 살아가는 일도 버거운데 비일상을 일상으로 가져와버린 코로나까지 지속되고 있다. 급물살 같은 변화와 어려움을 견디며 일상을 살 수 있는 건 함께 겪는 일이라는 것과 좋은 관계의 벗이 곁에 있는 덕분이라 생각한다.


언니와 헤어질 때 마음이 찡했다. 삶의 모습은 다르지만 나와 내면의 결이 같은 사람. 내게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했다. 언제 또 볼까 하는 아쉬움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 언니가 편안해지길 바라는 마음... 여러 감정이 교차했던 것 같다. 지금처럼 서로에게 힘이 되며 함께 늙어가기를...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한적하고 아름다운 곳을 찾아 언니와 여행하고 싶다. 우리의 건강과 안녕을 빌며, 언젠가 불쑥 다가올 그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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