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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Feb 08. 2022

일의 애환

아침 6시. 여자 셋이 원형 테이블에 앉아 컵라면과 햇반, 볶은 김치와 고추참치를 따서 먹고 있다. 아직 몸이 덜 풀린 면발은 젓가락질의 재촉에 정신이 없고 학창 시절 쉬는 시간 10분의 매점 컵라면을 연상시켰다. 그 물에 젖은 과자 같던 게 뭐 그리 맛있다고 뜀박질 해대며 먹었는지. 세월이 지난 지금, 어른의 모습으로 또다시 시간에 쫓기며 라면을 휘젓고 있는 자신이 잠시 우습게 느껴졌지만 그런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었다. 생각의 잔상들은 지워버리고 얼른 먹고 나가야 다.


여자 셋은 차장, 과장, 사원이다. 하루짜리 회사 행사의 지원인력으로 전날 도착해 사전 준비하고 행사 당일. 스태프 집결시간 6시 30분에 맞춰 체크아웃 준비까지 마쳐야 다. 기름을 채워야 엔진도 돌아가는 법. 부은 얼굴에 최소한의 메이크업만 얹은 채 부랴부랴 차린 밥상에서 또다시 부을 수밖에 없는 인스턴트 메뉴들로 전투적인 아침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종일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든 일정이니 그 식사에 셋다 진심이었고 먹는 동안 대화는 사치였다. 오로지 저작과 삼키기로 배를 최대한 든든히 채우는데 집중해 식사를 마친 후 일사천리로 주변을 정리했다. 


집결시간 10분을 넘겨 도착했지만 다행히 늦지 않은 상황이었다. 팀장님이 우릴 보고 인사하며 안 자고 어제 그대로 나온 거 아니냐 하셨다. 필요하지도 재밌지도 않은 영양가 없는 인사말이었다. 초속으로 움직이는 기계처럼 연신 쿠션 퍼프를 두드리던 소리들이 귓가에 선명했는데 효과는 제로였나 보다. 잘 보이려고 한 게 아니라 사람답게 보이려고 한 것이었으니 상관없었다.


매년 있는 행사여서 1년에 딱 한 번씩만 보게 되는 행사 관계자들이 왔고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올해는 만나지 않기를 바랐다 했고 우리도 그랬다 했지만 결국 또 만나서 서로 그러고 있는 게 웃프기만 했다. 다시 일을 맡은 그들이나 여전히 머물며 다시 동원된 우리들이나 고만고만한 거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하고 거기에 나를 욱여넣어 맞출 때, 만나고 싶지 않은 상황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또다시 만날 때 일의 애환을 느낀다. 보다는 애가 더 크다. 우여곡절 끝에 행사는 끝났고 다시 한동안 잊고 살겠지만 내년이 멀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에 그저 헛웃음이 난다.


올해도 반복된 나의 우습고 고단했던 한 순간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짧게 글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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