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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Sep 10. 2022

스며드는 사람들의 특징

직장 내 선한 스며듦에 대하여

스며들다:

1. 속으로 배어들다.
2. 마음 깊이 느껴지다.


요즘 자신의 확실한 주관에 따라 성실히 살아가며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이들을 두고 그들에게 스며든다 표현하곤 한다. 이 말에 처음 빗대어진 사람은 배우 윤여정 님이 아닌가 싶다. 영화 미나리가 아카데미 레이스를 펼치는 동안 그녀의 유연하면서도 꿋꿋한 모습, 그녀만의 위트 있는 모습은 내외국인 모두에게 그대로 스며들었다. 한국 예능 프로에서 종종 봐왔던 그녀였지만 새삼 멋지고 신선했다. 준비된 프로에게 꽂힌 스포트라이트는 여지없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스며든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처럼 언제인지도 모르게 내게 배어드는 사람, 무언가 좋은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나이와는 관계없어 보인다. 우리는 어떤 모습에서 기분 좋은 스며듦을 느끼게 되는 걸까. 내가 직장에서 겪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특징을 나열해 보면 이렇다.



첫째. 겸손하고 진솔하다.

목과 어깨에 힘이 들어간 채로 입으로만, 얼굴 표정으로만 겸손한 듯하는 가식적인 모습이 없다. 진짜 겸손은 언제 어느 상황에서건 자연스럽다. 전쟁터 같은 직장에 있어도 그런 사람에게선 잔잔한 호수 같은 분위기가 난다. 나이나 지위가 있음을 앞세우지 않고 인간 대 인간으로 힘을 빼고 대하고, 나이나 지위가 없다고 해서 눈치만 보거나 마음에 없는 말들로 치장하지 않는다. 적당히 겸손하고 적당히 진솔해서 거부감이 없다.  



둘째. 배려하며 친절하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세심하게 배려한다.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구할 때, 혹은 조언을 할 때도 담백하게 필요한 만큼만 한다. 한 발짝 더 나가면 상대에게 부담이고 한 발짝 물러나면 지지부진해지는 그 사이를 조절할 줄 안다. 또한 주변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상황이면 거리낌 없이 돕고 미소를 잃지 않는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식이 아닌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하는 게 느껴진다.


최근에 인상 깊었던 A 임원분이 생각난다. 그 분과 처음으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약속을 잡을 때 그분은 임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마시는 술의 종류와 좋아하는 음식을 알려주면 적당한 장소 두 세 곳으로 어프로치 하겠다고 하셨는데 내게는 참 새로웠다. 이런 경우 상급자가 하는 보통의 배려는 원하는 메뉴와 식당을 정하면 맞출게요. 하는 식인데, 오히려 그분이 직접 시간을 들여 우리의 선호에 맞는 장소를 서치 한다니. 뭔가 대접받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식사자리가 어찌 좋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한 사람, 항상 웃으며 주위에 잘하는 타 부서 직원 C. 시간이 꽤나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나에게 선명한 순간이 있다. 한 번은 내가 양손에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C가 지나갔다. 나는 사무실 앞에서 잠시 문을 열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야에서 사라졌던 C가 돌아와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다. 지나치면서 상황을 캐치하고 내 마음을 읽은 듯 와서 도와준 것이다. 별 거 아닐 수도 있지만 그대로 갔어도 그만인 일이었는데(실제 그런 사람들이 더 많고) '가던 길을 돌아왔던' C의 마음씀에 스며들지 않을 수 없었다.



셋째, 일을 잘한다.

직장에서 일 잘하는 사람은 두말할 것 없을 것이다. 이들은 인격적으로도 좋은데 일까지 잘한다. 떠넘기듯 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담백하게 전하며 상의하고 방향을 잡아나간다.


세심한 성향을 좀스러움으로 만들지 않고 일에서 빛이 나도록 활용할 줄 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은 세심함에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여러 면에서 케어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더 크게 갖게 된다. 구성원이 주도권을 잡고 일할 수 있게 이끌고 살피면서 뒷받침해주거나 혹은 자신의 일을 꽉 잡고 관련자들과 잘 협업하며 해나가는 모습. 믿고 가는 사람이라는 신뢰감을 줄 수밖에 없다.



넷째, 고마움을 표현한다.

무심한 듯 다정하게 꼭 고마움을 전한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고마웠다며 예기치 않게 작은 선물을 툭 하기도 한다. 카카오톡 생일 알림에 흔한 모바일 교환권이 아닌 직접 산 작은 꽃다발을 쓱 건넨다거나, 별거 아닌 데 맛이 괜찮더라며 불쑥 내미는 달콤한 초콜릿. 사적인 담소를 기억했다가 몇 번 입지 않은 아이 옷을 우리 아이에게 맞을지 모르겠다며 물려주기도 하고.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할까를 고민하는 경우는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에 더 초점을 맞추었을 때라고 생각한다. 별 다른 고민 없이 자신의 마음을 소박하게 전할 줄 아는 이들이 가랑비처럼 마음을 적시는 것 같다.



쓰고 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과도 늘 좋을 수만은 없는 게 직장 생활이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들이 있어 일할 만 한 곳이 되기도 한다. 이들의 특징이 바로 내가 지향하는 모습들인데 다시 봐도 갈길이 멀다. 하지만 네 가지를 모두 갖출 필요는 없다고 본다. 주변을 떠올려보면 일을 잘해서 좋은 사람이 있고, 배려심이 커서 좋은 사람이 있으니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스며드는 사람일까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잘 모르겠다면 내가 가진 좋은 면 한 가지를 잘 나타내 보자. 그러면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기운으로 스미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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