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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Oct 23. 2022

뜨거웠던 악수

코로나는 손과 손을 맞잡고 하는 인사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주먹만 가볍게 부딪히는 것이 악수를 대신한 지 오래지만 어떨 땐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굳이 손으로 하는 인사는 생략하게 되었는데 얼마 전 한 분과의 손인사는 내게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회사 창립멤버로 지금까지 근무해 오고 계신 임원분께서 해외법인으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다. 그분의 비자와 항공권을 준비해 드리는 과정 중 어찌할 수 없는 외부 사유로 인해 비자 발급이 지연되는 상황이 생겼다. 전체적인 일정이 뒤로 밀리면서 그분은 내게 조금이라도 빨리 처리될 수 있게 해달라고 수시로 요청하셨지만 대사관에서 비자를 내주길 기다리는 것 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사내에서 그분은 강한 카리스마, 상당히 세고 집요하고 권위적인 성향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평소 그 분과 일로 엮일 상황은 별로 없었지만 들리는 이야기들과 그쪽 부서원들이 눈치 보고 알아서 맞추는 것을 보면서 무서운 분이긴 한가보다 생각했다. 예정보다 사흘 늦게 비자가 발급되었고, 괜스레 죄송한 마음에 여권을 직접 전달드리러 찾아뵈었다. 한마디라도 들을까 싶었던 나는 예상 밖의 환대에 금세 멋쩍어졌다.



"이거 가져다주러 직접 온 거예요? 고맙게..."

"아닙니다. 얼굴도 뵙고 싶고 해서 겸사겸사 왔어요."

"그랬구나. 고맙고, 고생 많았어요. 자!"



받은 여권을 내려놓으며 그분은 힘주어 내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셨다. 나는 어색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으로 그분의 손을 잡았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여태껏 잡아본 손 중에 가장 보드라웠다. 어쩜 성인의 손이 이렇게 부드러울까 하며 촉감에 감탄하는 사이, 그 보드라운 손이 내 손을 꽉 잡는 힘에 또 한 번 놀랐다. 힘이 세어서가 아니라 손을 타고 오는 그 힘이 내게 말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멀리 가게 되어 아쉽지만 난 잘 해낼 거야. 자네도 여기서 파이팅 하고 잘 지내. 건강하고.'


악수를 하며 그분을 보았다. 임원분이었지만 오래 봐온 올드 멤버끼리의 동지애가 느껴졌달까. 마음 한편이 찡했다. 나 역시 '안녕히 가시고 건강하세요. 저도 여기서 열심히 일하며 응원드릴게요.' 하는 마음을 손에 담아 전했다. 잘 전해졌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맞잡은 손 안에서 전해지는 힘은 훌륭한 인사이자 멋짐 그 자체였다.



잊고 있었던 손인사, 악수를 다시 생각해본다. 손을 잡는 행위는 단순하지만 많은 것을 내포할 수 있다. 확신과 호의를 담아 긍정의 신호를 주기에 참 좋은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편하게 악수할 수 없는 상황은 여전하지만 말로 다 할 수 없는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가 온다면 나도 뜨겁게 손 인사를 건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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