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썹달 Oct 28. 2022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너도, 나도.

좀처럼 큰 소리 내지 않으시던 부장님께서 언성을 높이셨다. 신입 팀원의 업무처리에 잘못이 있었던 모양이다. 들어보니 진작부터 준비해왔던 일인데 제때 실행하지 않아서 일을 하고도 상부에서 지적을 받게 된 상황인 것 같았다. 부장님은 준비를 안 한 일이면 모를까 다 했는데 안 한 셈이 되어버린 게 못내 속상하셨던 것 같다. 들리는 게 다라면 잘못한 것이 맞지만 수화기 너머로 부장님 목소리를 듣고 있을 그 친구가 걱정되었다. 깨지면서 배우는 게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혹시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 마음이 쓰였다.


퇴근시간. 부장님 먼저 가시고 팀원들도 하나 둘 퇴근했다. 나와 신입 팀원이 남아있다가 그도 내게 퇴근인사를 전했다. 얼굴을 보니 아까의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그 일을 내가 또 언급하는 것이 달갑지 않을 텐데 하면서도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버렸다.


"ㅇㅇ씨,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요."

"네? 아 네... 제가 잘못한 거라서..."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 같지만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니까, 오늘을 계기로 내일은 좀 더 챙기면 돼요. 의기소침하지 마요."



신입 다독이려 한 말에 왜 내가 울컥하는지.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 말이 내게도 메아리쳐 울리는 걸 느꼈다. 나는 순수한 의미의  말을 언제 들어봤던가.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직장에 적응하고 연차와 직급이 올라갈수록 이 단순한 말과 멀어져야 했다. 경력이 쌓일수록 그럴 수 있다고 이해받는 상황이 오히려 자존심을 상하게 할 때도 많았다. 어쩌면 업무를 미리 잘 체크하고 진행하여 그럴 수도 있는 상황을 줄여가는 게 직장에서 말하는 실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멀어졌 위로를 신입에게 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에게도 그런 말들이 필요했음을. 괜찮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하루를 돌아보니 나도 오늘은 힘든 날이었다. 아침부터 큰 녀석의 꾀병에 혈압이 오르는 걸로 하루를 시작해, '제발 느그들끼리 정리 좀 해줄래' 말하고 싶은  사이에 끼여 신경을 소비해야 했고, 쌓인 일은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 상황.  애 담임선생님과의 진학 상담에 마음이 내려앉으며 숨어있던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도 했. 속도를 내도 모자랄 판에 업무 집중력은 더 떨어진 하루가 되어 여러모로 속상했다.


그래서 오늘따라 그 말이 하고 싶고, 메아리처럼 이라도 듣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업무에서는 괜찮다는 말을 자주 듣는 게 좋지 않을 수 있어도 일상에서 누가 나에게 "괜찮아."하고 말해주면 스스로에게 날 섰던 마음이 가라앉고 조금은 편해진다. 진심이 담긴 이 말이 우리의 쓰라린 곳에 밴드가 되어 더 다치지 않게 해 줄 거라 믿으며 괜찮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매거진의 이전글 뜨거웠던 악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