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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Jan 05. 2023

내가 화를 내도 그런 반응일까

어떤 화는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점심 후 다시 시작된 업무시간. 조용한 사무실 안이 한 사람의 언성으로 소란해진다. 이게 무슨 일인지.


생전 화내지 않고 조곤조곤 말하던 옆 팀 동료가 얼굴이 벌게져가며 수화기 너머의 상대와 싸우는 소리였다. 최대한 납득시키려는 동료의 애쓺이 무색하도록 상대는 자기 할 말만 되풀이하는 모양이었다. 동료의 담당업무를 봤을 때 상대는 상급자임이 분명하지만,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동료도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듯 꼿꼿했다. 그렇게 언쟁이 고조되더니 결국 동료는 상대에게 으름장을 놓으며 수화기를 내려놔버렸고, 화를 삭이려는 듯 자리를 벗어나 밖으로 나갔다.


하필 사무실이 조용한 때에 그런 상황이 벌어져서 나를 포함한 주변 직원들의 외부 감지 레이더는 오롯이 그 언쟁을 향해 있었고, 동료가 자리를 뜬 순간 잠시의 긴장이 풀리며 우리는 술렁였다.


"와... 저렇게 화내는 거 처음 봐. 얼마나 화가 났으면 저래."

"생전 안 그러는 사람인데... 누군지 몰라도 상대가 완전 꼰대처럼 말 안 통하게 했겠지."

" 사람이니까  정도로 끝낸 건지도 몰라. 나 같았음 더 했을걸."


하나같이 화를 낸 동료의 편에서 그 상황을 이해하는 말들을 쏟아냈다. 듣고 있던 다른 동료가 자조 섞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야~ 내가 저렇게 화를 내도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까?"


그 말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그러게 말이야. 평소 안 그러던 사람이 저러니까 오죽했으면 싶은 거지." "내가 화냈으면 뭐라 생각했을 것 같아?" "에이그 또 저런다 또. 할 거야. 하하." 하는 우스갯소리들과 함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자기 업무로 돌아갔다.




누군가의 어떤 모습은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게 만들기도 하고, '내가 저렇게 한다면 어떨까.' 하며 나를 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오늘 동료의 모습은 그냥 봤을 땐 좋은 모습이 아니지만, 그 친구를 어느 정도 지켜봐 온 사람이라면 놀랄 일이었다. 그동안의 모습에서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님을 충분히 각인시켰는데, 그걸 깰 정도의 일이었으니 응당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타인의 이해를 자연스레 불러온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별 것 없이 흘러가는 평상의 모습이 쌓여 내가 된다. 감정의 동요를 드러내지 않고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신뢰감을 준다. 나는 얼마나 신뢰를 받는 사람일까. 화를 내지 않아야 하겠지만 만약 내가 불같이 화를 낸다면 주변에선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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