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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Feb 12. 2023

끝이 중요하다

부서에서 진행하는 연중 큰 행사가 지난주로 마무리되었다. 그 이틀의 행사를 위해 4개월 전부터 빌드업하듯 일이 진행되었고 한 달 전부터는 모두 그 일에 매달렸다. 그러나 나만 잘한다고 일이 잘 되는 게 아니라는 듯 행사는 다른 쪽에 문제가 생기면서 고난 속으로 휘말렸고 어둠의 다리를 건너 이제야 겨우 제 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 매년 초에 있는 이 행사가 끝나야 지난 1년의 사이클이 끝났다는 기분이 든다. 잘 진행되었다면 우리도 잔치상을 받았을 텐데 그간의 수고가 무색하게도 참 힘든 시간을 지났다. 


일을 진행하는 동안 한 팀원이 이번 행사 준비에 유독 평소와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입사 7년 차로 가장 중심에서 책임자를 도와 일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관련 업무에 반응이 늦고, 질문도 없으며 딱 지시받은 일만 처리하다가 다른 팀원들 업무 상황 상관없이 퇴근시간에 맞춰 인사하고 가버리는... 어떻게든 일을 안 하려 하는 게 너무 눈에 띄었다. 하루 이틀 하는 일도 아니고 알만한 사람이 그런 태도를 한다는 데에 은근히 화가 나기도 했다. 


힘든 일이고 하기 싫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 친구와 둘이 있게 되었을 때 "다들 힘들지만 열심히 하고 있으니, 하기 싫은 티 너무 내지 말자.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같이 힘내보자."는 말을 건넸지만 일이 끝날 때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일이 마무리되고 겨우 정신 차리는 틈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 사유는 이직이었다. 어쩐지... 그래서 그렇게 업무 태도가 달랐던 거였구나. 알고 보니 이미 구정 전에 다른 회사 채용이 확정되었는데 모두가 너무 바쁘니 그런 말을 꺼낼 수 없었고, 최대한 미룬 입사 일자가 행사 이후였다는 것. 그래서 결국 충원을 기다려 인수인계하고 갈 시간적 여유도 없이 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



기분이 묘해졌다. 내가 싫은 티 내지 말자고, 좀 더 힘내보자고 할 때 몸만 여기 있었을 뿐 이미 마음은 갈아탄 상태였구나. 나한테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래서 그 뒤로도 달라진 게 없었던 거구나. 이곳에서 열심히 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에.


물론 영원히 같이 일할 수는 없다. 네가 먼저든 내가 먼저든 언젠가 각자의 길로 다시 떠나는 것은 필연이다. 하지만 내가 알던 그 친구가 이런 인상을 남기고 갈 줄은 몰랐다. 업무의 영역은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부서 일이 쉽지 않아서 틈틈이 신경 쓰고 배려했는데 막판에 일을 피하듯 하다가 이렇게 느닷없이 퇴사 통보를 하다니. 


바쁜 상황을 배려하느라 퇴사 의사를 밝히지 못했다는 것은 어쩌면 핑계일 것이다. 정말 잘 마무리하고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면 채용이 확정되었을 때 회사에 알려서 충원의 시간을 두고, 남은 기간 맡은 업무를 충실히 한 후에 떠나면 될 일이다. 이미 가야 할 곳과 일정이 정해져 있어 자칫 지지부진할 수 있는 정석적인 과정을 건너뛰려는 요량이었을지도 모른다.(남는 이의 오해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나는 오랜 시간 믿고 일해온 이가 보인 그 모습에서 조금 상처를 받은 것 같다. 다른 길을 찾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을 했다고 해서 아직 이곳이 끝난 것이 아닌데 다들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도 할 일 제대로 하지 않고 뒤로 빠졌다. 퇴사를 결심한 것은 이해되지만 떠나는 마당에 주변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듯했던 행동에서 실망했다. 마지막을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아쉬움이 크다. 


그럼에도 어디 내 맘 같은 사람이 있겠냐고,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움직이는 것일 뿐이라고 서운한 마음을 달래 본다. 마지막 모습은 기대에 어긋났어도 돌이켜보면 그 친구도 그동안 열심히 했고 팀원들과 서로 돕고 이해하며 여기까지 왔다. 쉽게 내린 결정은 아니었을 테니 결국엔 잘한 선택이 되기를 바란다. 남은 시간이라도 잘 정리하고 좋은 헤어짐을 맞이하면 좋겠다. 


매사 끝을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잘 매듭짓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팀원의 퇴사과정을 보면서 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새기게 된다. 언젠가 다가올 나의 '끝'도 매듭을 부디 잘 지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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