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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Mar 04. 2023

반성보다 반감이 앞섰던 이유

실수담과 질책의 품격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서로 맞춰가며 일하는 공간, 직장.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게 된다. 스치듯 한 두 번 겪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고, 동료나 상사 관계로 꽤 오래 함께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같이 일하다 보면 보편적으로 통하는 상식 외에 저마다 특별히 중요시하는 포인트가 있음을 알게 된다. 어디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나를 둘러싼 사람들, 그들 각자가 어떤 부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인지하고 그것을 최대한 지켜주는 것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관건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에 있었던 회식에서 나는 상사가 중요시 여기는 포인트를 지키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번 회식은 임원께서 주최하셨다. 그분은 꼰대 소리 안 들으려 나름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는 꼰대이시고 또한 상당히 권위적인 성향으로서, 당신이 존중받지 못함을 느꼈을 때 그냥 넘어가지 않는 분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오래 봐온 바 이미 잘 알고 있었고 나도 연차가 긴 직원으로서 그 포인트를 거스르는 일이 없도록 여태껏 신경 써 왔건만 너무 오랜만에 하는 회식이어서였을까. 그분이 움직이면 모두가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에 둔감한 바람에 업무를 마무리하고 회식 장소에 10분 늦게 도착하게 되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며 자리에 앉으려는 나를 보며 그분께서는 바로 언성을 높여 질책하셨다.


"너는 왜 그렇게 정신이 없어? 빨리 나오든지 택시를 타든 지 했어야지, 내가 너를 이렇게 기다려야 돼? 상황 파악이 그렇게 안 돼?"


그렇다. 나는 사실 자리에 앉으면서도 내가 여러 사람 있는 밥상머리에서 그렇게 혼날 만큼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으므로 그분 말대로 상황 파악을 전혀 못하고 있었던 게 맞다. 다른 직원들은 임원 분이 움직일 때 부랴부랴 정리하고 먼저들 나갔는데 나는 왜 엉덩이를 떼지 않았던 걸까. 권위가 지켜지길 원하는 상사의 중요 포인트에 느슨하게 대처한 결과였다.  


식사도 하기 전이었는데 나로 인해 분위기가 망쳐져서 모두에게 미안했고 부끄러웠다. 알만한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될 실수를 했고, 선배와 동료는 그렇다 치고 후배들 앞에서까지 그런 면박을 당하니 수치심이 크게 들었다. 질책에 유리멘털인 나는 목구멍에 가시가 박힌 심정이 되어 입맛을 잃어버렸다. 고기도 술도,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지만 혼난 장본인이 그렇게 행동하면 분위기는 다시 악화될 터. 목구멍에 박힌 가시 뽑아내듯 일부러 쌈 싸서 고기 먹고 맥주도 먹었다. 그럴수록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야 빨리 잊히니까.


그러나 나빠진 기분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팀원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정작 임원 분께는 죄송함보다 '꼭 그렇게까지 말했어야만 했냐~아~!'(해바라기 버전) 하는 마음이 더 들면서 나를 질책했던 장면이 상추쌈을 입에 넣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내가 너를 이렇게 기다려야 돼?

내가 너를

이렇게 기다려야 돼?

상황 파악이 안 돼?



그 말은 '하급자 주제에 나를 기다리게 하다니. 내가 움직이기 전에 먼저 움직여야지. 다들 그렇게 움직였는데 네가 뭔데 건방지게 늦어서 나를 기다리게 해???'라고 해석되었다. 그런 성향인 줄 알고 있었지만 생각할수록 정말 그렇게 밖에 혼낼 수 없었을까, 시대가 변했는데 질책에도 품격을 좀 갖춰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속상하고 아쉬웠다. 회식이 끝난 후 팀원들도 그렇게까지 하실 줄은 몰랐다며 당황스러웠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실수를 계기로 생각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상사가 중요하게 여기는 포인트는 정말로 잊지 말자.


평소 업무할 때는 그래도 배려해 주시고 챙겨주셔서 많은 도움을 받는데, 가끔 이런 권위적인 모습을 볼 때면 '아... 그런 분이었지.' 하고 리마인드 하게 된다. 구 세대 권위적인 체계 속에서 오랜 세월 살아오며 당신도 모르게 성품의 한 면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고 그 부분에 대해 스스로 문제의식을 갖지 않으시는 듯 하니 달리 방법이 없다. 내가 맞추는 수밖에. 앞으로는 절대 그분을 기다리게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것을 다짐했다. 아는 맛이 더 무서움을 느낀 만큼 업무에서도 회식에서도 그분을 놓치는 일은 만들지 말아야지. 그리고 그분 때문만 아니라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말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일 없도록 회식시간을 잘 지킬 것이다.


둘째. 질책에도 품격이 필요하다.


같은 이유로 혼나도 정말 내가 잘못했구나.. 부족했구나.. 스스로 반성하게 만들 때가 있고, 역으로 내 잘못을 돌아보기에 앞서 반발심이 먼저 고개를 들 때가 있다. 이번 상황은 분명 내가 잘못했지만 질책의 방식이 좋지 못해 나 역시 화가 났던 후자의 경우에 해당된다. 


감정이 가시고 나서 그분 입장에서 상황을 리플레이해 보면, 표현은 그러했지만 내가 올 때까지 그분 포함 다들 식사를 시작하지 않고 있었다. 모두 다 오면 시작하자고 나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더 늦어서 화가 오르고 있던 중에 별생각 없이 들어오는 나를 본 순간 그렇게 당신 방식대로 화가 분출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해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꼭 그렇게 말했어야만 했나.' 하는 의문이 남아있다. 그야말로 '난 네가 그렇게 쉽게 생각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당신의 권위를 강조하고 싶었다면 확실하게 목적을 달성하셨다. 그로 인해 나를 파고들었던 수치심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포인트다. 같은 내용도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지,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는 게 좋을지 요리조리 생각하는 편이라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런 고민 1도 없이 그 자리에서 내뱉는 말들을 쉽사리 넘길 수 없고 상처도 더 많이 받는 것 같다. 


늦은 장본인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그 상황에서 늦은 직원에게 할 수 있는 대체의 말들은 많았다. 전체의 분위기와 서로의 입장, 화자 자신의 이미지까지 고려해서 알아듣게 전할 표현이 많았는데. 역시 사람은 다르고, 내 맘 같지 않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더 열심히 내 표현을 점검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상급자가 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품격이다.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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