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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Sep 15. 2020

여긴 학교가 아니라 회사인데요

어머님, 아버님의 전화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내용에 당황했던 적이 있다. 수화기 너머의 상대방은 약간 머뭇거리는 듯 말문을 더니 어서 말했다.


OO 회사지요? 거기 우리 딸이 다니고 있는데, 우리 애가 회사에 야근이 많아서 저녁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잘 못 자서 피부가 까칠하니 몸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거기가 야근을 그렇게 많이 시키나요? 야근해도 회사에서 저녁도 안 사준다는데 맞나요?


저기 우리 애가 어제부터 연락이 안 되는데 혹시 출근은 했는지 알아봐 줄 수 있나요?
아.. 말해도 되나.. 우리 애 이름이 OOO인데요, 절대 연결해 주지 마시고 전화 왔단 말도 하지 마시고 그냥 회사 나왔는지만 확인 좀 해 주실 수 없을까요? 어제부터 연락이 안 되니 내가 걱정이 돼서...


우리 아들이 거기 회사 다니는데, 출퇴근이 힘들어 택시를 타게 되면 교통비 지급이 안됩니까? 그건 좀 부당하지 않나요?



하면서 의도치 않게 내가 받았던 직원 부모님의 전화 연락들이다.

직장을 잘 아시는 분들이라면 전화받은 직원에게 막바로 저런 말들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참고로 내가 다니는 회사는 ARS 안내 없이 대표전화를 내가 있는 층에서 받게끔 되어있다) 보통 인사과를 연결해 말씀하셔야 할 얘기들을 바로 하시는 것 보니 직장 경험이 없었던 분들이 아닐까 싶었다. 직장생활에 대한 자녀의 투정 섞인 말들을 '힘들구나' 정도로 듣고 다른 방법으로 격려해주시면 좋았을 텐데 안타까움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신 듯했다. 이 험한 세상에서 막아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막아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분들일까. 무엇이 이 부모님들을 그토록 걱정하게 만든 것일까. 자녀의 사회생활이 어떤 모습이든 결국 본인이 경험하고 고민하고 정리해야 할 부분인 것을, 그것마저 도와주시려는 부모님의 사랑. 그 자녀는 고맙고 좋을까?




이렇게 학부모 같은 부모님들이 간혹 계신다. 헬리콥터 노릇이 자녀의 직장 생활까지 영향을 미치려 하다니 나도 부모지만 참 안타까웠다. 상대방에게 비밀로 해주면 좋겠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 보면 그분들도 알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알지만 당신 자식을 보니 회사 일이 힘든 것 같은데, 다 큰 성인들은 보통 부모님께 에둘러 말할 뿐 자세한 얘기를 하지 않으니 부모님 입장에선 걱정도 되고 답답하여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러면 그분들의 마음도 조금은 편해질 것이라 기대하셨을지 모르겠지만 통화 후 분명 개운한 기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긴 하지만 나도 부모이니 그 마음 알긴 하겠다.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안다면 더 헤아릴 수 있을지 모른다. 부모에게는 60 먹은 자식도 물가에 내놓은 애 같이 보인다는 말이 왜 있겠나. 지방에서 서울로 독립해와서 혼자 살며 직장을 다니는 젊은 직원들도 많기에, 멀리에서 걱정하시는 마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자녀가 직장생활을 시작할 만큼 어른이 되었다면 부모님들도 마음에서 자녀를 독립시킬 수 있어야 한다. 걱정과 조바심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게 회사에 연락해서 이런저런 확인과 컴플레인 성격의 의견을 말씀하신들, 각자도생해야 하는 직장생활에서 누가 얼마나 그 직원을 돌봐주겠는가. 돌봐주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다. 본인만의 방법을 찾으면서 힘든 시기를 잘 넘기고 자리 잡도록 그저 힘들어 보일 때 응원의 말 한마디, 따뜻한 밥 한 끼 챙겨주며 믿어주신다면 다 이겨낸다고 본다. 여기가 정답은 아니니 정 힘들면 관두고 다른 길을 찾을 것이다.



더 이상 어리지 않으므로... 사회생활을 할 정도라면 자녀들은 부모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 설령 약할지라도 부딪히며 강해지는 것을 스스로 체득할 수 있게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이 자녀에게는 더 든든한 마음의 기둥이 되지 않을까.




*사진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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