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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Sep 18. 2020

마음까지 급행이 되고야 마는

9호선 급행열차 출근길


출근시간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 9호선 급행열차는 자리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바로 맞은편 선로는 인천에서 서울로 나오는 지하철이 들어와 강남행 사람들을 쏟아낸다. 강남행 급행열차는 김포공항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비어있는 열차를 타게 되지만 강서, 김포, 인천까지... 강남을 향한 장거리 출근 직장인들이 모두 이 열차를 타기 위해 북새통을 이루면서 자리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열차 탑승 대기는 출입문을 두고 양쪽으로 두 줄 서기 하도록 되어있다. 왼쪽 두줄과 오른쪽 한 줄은 빨간색 표시로 급행 대기줄이고, 오른쪽 남은 한 줄은 일반열차 대기줄로 초록색이다. 일반열차가 오면 초록색 줄 대기자들이 탑승하고, 급행열차가 오면 빨간색 세줄의 사람들이 중앙으로 일사불란하게 모여 문이 열리면 자리를 향해 득달같이 뛰어들어가는 시스템이다.


9호선 급행열차 줄 서기 표시


빨간색 줄 서기에서 세 번째 열은 항상 나를 갈등하게 만든다.

좌석 확보로 볼 때 두 번째 열까지는 안정권, 네 번째라면 깔끔하게 다음 열차로 빠지지만 세 번째는 50:50이랄까. 생각이 많아진다. 내 앞과 옆에 줄 선 사람들은 빠릿빠릿할지, 긴 좌석 좌우중간 어느 포지션에 승산이 있을지 짧은 시간 내 검토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오늘 나는 세 번째 열에서 도전을 선택했다.




열차가 들어오고 문이 열리는 순간. (이게 뭐라고 심장이 두근거리지.)

사람들은 각자 점찍어 위치를 향해 앞다퉈 촤르르! 흩어지며 삽시간에 착석이 이루어진다.

 
자리 경쟁은 예상보다 훨씬 치열했다. 한자리를 향해 나까지 세명이 몰리다니. 남자 둘의 엉덩이가 우물쭈물 경합하는 사이를 나의 엉덩이가 먼저 비집고 들어갔다. 내 이성이 인지하기도 전에 앉아야 한다고 학습된 일념이 불러온 본능적인 신체 반응이었다... 고 하고 싶다. 옆자리 아저씨의 발까지 밟아가며 어머! 외마디 소리와 함께 자리를 차지하고 나니 이내 부끄러워졌다. 이 착석 시스템을 처음 겪는 이들의 어처구니없는 표정이 스쳐 지나간다. 옆에 분께 사과하면서, 자리를 놓치고 내 앞에 서있는 그들을 마주하는 게 민망해서  감고 잠을 청해버렸다.



일반열차 40분 거리가 급행으로는 25분이다. 바쁜 아침시간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남들에게 휩쓸려 나까지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나도 누군가에겐 휩쓸리고 싶지 않은 남들 중 하나일 뿐이다. 나와 동선이 비슷했던 회사 후배는 그런 하드코어 출근길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 않다며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포기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고 체력은 저질이라 포기하지 못한다. 이러는 내가 싫지만 지옥철 출근길은 별 수 없이 이기적이 되고 만다. 나 같은 사람들은 빈 열차에 자리를 차지할 기회라도 있지만 이미 절반가량 사람이 찬 열차를 맞이하는 다음 역 탑승자들은 선택의 여지도 없다. 대안이 없는 출근길이라면 아침마다 얼마나 고단할까 싶다. 퍽퍽하게 시작되는 직장인의 아침이 오늘따라 씁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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