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맞은편 선로는 인천에서 서울로 나오는 지하철이들어와 강남행 사람들을 쏟아낸다. 강남행 급행열차는 김포공항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비어있는열차를 타게 되지만 강서, 김포, 인천까지... 강남을 향한 장거리 출근 직장인들이 모두 이 열차를 타기 위해 북새통을 이루면서 자리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열차 탑승 대기는 출입문을 두고 양쪽으로 두 줄 서기 하도록 되어있다. 왼쪽 두줄과 오른쪽 한 줄은 빨간색 표시로 급행 대기줄이고, 오른쪽 남은 한 줄은 일반열차 대기줄로 초록색이다. 일반열차가 오면 초록색 줄 대기자들이 탑승하고, 급행열차가 오면 빨간색 세줄의 사람들이 중앙으로 일사불란하게 모여 문이 열리면 자리를 향해 득달같이 뛰어들어가는 시스템이다.
9호선 급행열차 줄 서기 표시
빨간색 줄 서기에서세 번째 열은 항상 나를 갈등하게 만든다.
좌석 확보로 볼 때 두 번째 열까지는 안정권, 네 번째라면 깔끔하게 다음 열차로 빠지지만 세 번째는 50:50이랄까. 생각이 많아진다. 내 앞과 옆에 줄 선 사람들은 빠릿빠릿할지, 긴 좌석 좌우중간 어느 포지션에 승산이 있을지 짧은 시간 내 검토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오늘 나는 세 번째 열에서 도전을 선택했다.
열차가 들어오고 문이 열리는 순간. (이게 뭐라고 심장이 두근거리지.)
사람들은 각자 점찍어 둔 위치를 향해 앞다퉈 촤르르! 흩어지며 삽시간에 착석이 이루어진다.
자리 경쟁은 예상보다 훨씬 치열했다. 한자리를 향해 나까지 세명이 몰리다니. 남자 둘의 엉덩이가 우물쭈물 경합하는 사이를 나의 엉덩이가 먼저 비집고 들어갔다. 내 이성이 인지하기도 전에 앉아야 한다고 학습된 일념이 불러온 본능적인 신체 반응이었다... 고말하고 싶다. 옆자리 아저씨의 발까지 밟아가며 어머! 외마디 소리와 함께 자리를 차지하고 나니 이내 부끄러워졌다. 이 착석 시스템을 처음 겪는 이들의 어처구니없는 표정이 스쳐 지나간다. 옆에 분께 사과하면서, 자리를 놓치고 내 앞에 서있는 그들을 마주하는 게 민망해서눈 감고 잠을 청해버렸다.
일반열차 40분 거리가 급행으로는 25분이다. 바쁜 아침시간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남들에게 휩쓸려 나까지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나도 누군가에겐 휩쓸리고 싶지 않은 남들 중 하나일 뿐이다. 나와 동선이 비슷했던 회사 후배는 그런 하드코어 출근길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 않다며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포기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고 체력은 저질이라 포기하지 못한다. 이러는 내가 싫지만 지옥철 출근길은 별 수 없이 이기적이 되고 만다.나 같은 사람들은 빈 열차에 자리를 차지할 기회라도 있지만 이미 절반가량 사람이 찬 열차를 맞이하는 다음 역 탑승자들은 선택의 여지도 없다. 대안이 없는 출근길이라면 아침마다 얼마나 고단할까 싶다. 퍽퍽하게 시작되는 직장인의 아침이 오늘따라 씁쓸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