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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Oct 25. 2020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직장에서 이런 이별은 처음이라서

제 신상에 변화가 생길 것 같습니다. 이번 달까지만 함께 할 것 같아요.
좋은 모습으로 떠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어서 너무 미안합니다.


팀장님이 그만두신다.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회사의 의지다. 아랫 직원들에게 좋은 상사는 위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풍문이 현실로 들이닥친 순간이었다. 팀장님이 보낸 메시지를 접한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울컥했다.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같이 고생하며 항상 잘했다고만 해 주셨던 그분에 대한 고마움만큼 속상하고 마음이 슬펐다.


함께 일한 6년 동안 시간이 지날수록 존경하게 된 분인데, 요즘 그분의 모습을 보면 존경을 넘어 놀랍다. 어떻게 그렇게 멘탈을 관리하실 수 있을까. 감정이 0.1초 만에 얼굴에 드러나는 나 같은 사람은 정말 알 길이 없다.



팀장님의 퇴사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니 주변에서 슬슬 물어온다. 여기 팀장님 곧 그만두신다고 들었는데 팀원들 다 알고 있는 거죠?라고. 맞다. 우리 팀원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팀 전체가 평상시와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이어서 소식을 접한 타 부서 사람들이 다시 긴가민가 하게 되나 보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서 나도 중년의 초입에 들어서니 내 주변의 중년들이 얼마나 어렵고 힘겹게 자리를 지켜가고 있는지 보이고, 먼저 회사를 떠났던 당시의 힘들었던 중년들도 자주 떠오른다. 상명하복의 수직적 조직구조에 익숙한 이들이 요즘 세대 아랫 직원들 맞추랴, 요구하는 것 많은 윗사람들 맞추랴, 조직 협업 간에 팀 지켜내랴... 맡은 일만 하기도 바쁜데 무수히 많은 상황 속에서 중년들은 참 힘들다. 자신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던 한 중년이 돌연 그 자리를 잃게 되었다. 절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임을 모르는 이 없어서 팀장님이 그만두신다는 것에 먼저 놀라고, 평상시와 똑같이 일하고 있는 팀장님 이하 우리들의 모습에 또 한 번 놀란다. 우리가 이별의 시간을 이렇게 보내고 있는 건 지금 가장 힘든 시간의 고개를 넘고 있을 팀장님이 전혀 동요 없이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 그분의 심정이 어떨지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팀원 모두 애석함을 품은 채 차분히 그분과의 업무를 정리하는 중이다.




6년 동안 우리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팀장님이셨다.


직장 생활하면서 몇 분의 팀장님을 거쳤지만 이렇게 팀원들을 편하게 해 주고 아랫 직원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많은 분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직원에게 단 한 번도 감정적으로 대하신 적이 없다. 윗사람에게 호되게 깨져도, 타 부서의 일 미루기나  과도한 요청이 와도, 어떤 일이 꼬여 골치 아픈 상황이어도 인상을 쓰거나 찡그리는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깨지고 나온 후 수첩을 책상에 힘주어 탁. 내려놓으셨던 게 기억나는 감정 표현의 전부다. 잠깐 담배 한 대 태우고 자리로 돌아오면 끝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그것에 얽매여 하루를 버리기 십상인 나는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신기할 따름이었다.


업무는 담당에게 믿고 맡기셨다. 이메일이나 중간보고를 통해 대략의 내용은 파악하고 계셨고 팀원들이 어려워하거나 팀장으로서 방향 제시가 필요할 때 적절한 가이드만 해 주셨다. 일에 있어서 참 담백하게 처리하신다 생각했다. 일이 어찌 되었든 팀원에게 질책이나 짜증,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었다(다른 팀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팀의 업무수행에 특별한 문제 제기도 받은 적 없었기 때문에 업무능력도 팀장 자질도 부족함 없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8명의 팀원은 팀장님 아래서 잡음 한번 없었고 퇴사도 없었다. 업무가 힘들 때는 많았어도 팀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다.


업무에 지장 없는 선에서 개인적 사유의 연차 반차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승인해 주셨다. 특히 나를 포함해 아이가 있는 팀원은 그 덕을 가장 많이 보았다. 아이가 아플 때, 어린이집이나 학교 관련 일이 있을 때,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 다른 걱정 없이 회사 밖 상황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아직도 직원이 휴가 사용하는 것에 눈치 주는 팀장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제일 감사한 부분이기도 했다.



그분 아래 우리들은 많이 배려받고 많이 이해받았다. 마지막까지 직원들 생각하여 개인의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끝까지 그 책임을 다 하는 모습에 놀라움을 넘어 감동을 받는다.


팀장님의 퇴사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이 마음도 흐려지게 될 것이다. 팀장님을 단순히 '그런 분이 계셨었지...' 하며 이전 사람들 기억하듯 하고 싶지 않아서 이번 이별의 과정을 이렇게 글로 남긴다.


언제나 웃는 얼굴. 부정적인 말이나 뉘앙스 쓰지 않는 것. 믿고 맡기는 것. 개인적 감정을 배제하는 것. 먼저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것. 몸소 보여주셨던 가르침들을 앞으로의 삶에 꼭 새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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