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좋은 소식이 있어요. 제가 이번 주 일요일에 드디어 아르바이트를 나가게 됐어요."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다. 지금 고3인 큰 아이는 인문고에 진학했지만 학업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작년에 대학은 가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다른 부모들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싸우고 어르고 타일러 다시 공부의 자리로 돌려놓기도 하던데, 우리 아이에게는 각종 설명과 회유와 제안이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몇 차례 예의 상 생각해 보겠다고 답하긴 했지만 결론은 한결같았다. 지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남편도 나도 하기 싫다는 공부 억지로 시키는 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긴 실랑이를 하지 않았다.
아이가 고집을 세울 수 있었던 건 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사실 나는 이 꿈도 공부를 회피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하는 것을 보면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학교가 끝난 후에는 나름의 계획대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답답하고 걱정되기도 하지만, 인생의 진로에서 자신의 의지로 결정한 일이니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갈 것이라 믿어보고 있다. 이제 내년이면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가게 되고, 진짜 현실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부모보다 더 자신의 앞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빠르게 치고 나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우리 아이는 느리다. 우리는 아이의 느림을 받아들였다. 천천히 깨닫고 천천히 성장할 것이라 여기고 아이의 인생을 길게 보기로 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에서 분명 고전하는 시기가 있을 테지만 단단한 심지와 회복탄력성을 갖기를, 그리고 우리는 아이가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나무그늘 같은 부모가 되고픈 마음이다.
학교 공부는 하지 않아도 세상 경험은 일찍이 시작하기를 바랐다. 고등학생이 되면 바로 아르바이트를 했으면 했는데 주말 알바 자리도 마땅치 않았고, 작년에는 쿠팡 물류센터 알바를 하게 되었는데 혹서기로 미성년자 근무가 취소되면서 한동안 조용했다. 그러던 중 다시 아르바이트를 간다니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드디어 첫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다니. 일일 알바였지만 스스로 일해서 돈을 버는 경험을 하게 되다니 감사했다.
아이에게는 같은 꿈을 가진 친구가 몇 명 있다. 그중 한 친구가 두세 번 해 보고, 괜찮다며 같이 하자고 권해서 나가게 된 일이었다. 근무지는 서울의 한 호텔 뷔페였고 업무는 조식이 진행되는 아침 7시부터 낮 12시까지 5시간 동안 손님들이 먹은 그릇을 거두어 정리하고, 테이블 닦고, 필요사항에 응대하는 일이었다. 일을 해 본 친구와 함께 간다고 하니 걱정할 게 없었다. 내성적이어서 혼자서는 뭘 잘 도전하지 않는 성격인데 그렇게 밖으로 이끌어주는 친구가 아이 곁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아르바이트 팀장이 사전에 보내준 문자를 보고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을 챙겨주었다.
집에서 호텔까지 거리가 멀어 친구와 아이는 새벽 5시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늦잠을 잘 까봐 각자 밤을 꼴딱 새우고 출근했다. 피곤할 텐데 하면서도 잘해보려는 아이의 의지라고 생각했다. 6시 반쯤 잘 도착했다는 통화를 했고, 12시 넘어서 잘 끝나고 집으로 간다고 카톡이 왔다.
어느새 커서 성인을 목전에 두고, 인생에서 돈벌이라는 걸 처음하고 오는 아이가 참 기특하고 대견했다. 시시콜콜 말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어땠냐는 물음에 좋았어요- 로 퉁 쳤지만, 긴장했을 테고, 힘들었을 테고, 그러면서 신선했을 것이다. 오늘 일한 보수는 다음 주에 입금된다고, 받으면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하는 아이. 고마운데 그 돈 아까워서 어떻게 먹는데 쓰나....ㅎㅎ 기억에 남을 수 있게 잘 사용하라고 해야겠다.
카톡 메시지를 보면 귀엽게도 아이는 무사히 마쳤다는 말 다음에 폭죽 터트리는 이모티콘을 올렸다. 스스로도 기뻤던 모양이다. 축하했고 잘했다 칭찬해 주었다. 잊지 못할 오늘, 이 경험으로 아이가 한발 더 나아갔다고 믿는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이렇게 조금씩 성장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