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에 대한 인식 변화
최근에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내가 득과 실이 있을 때 늘 '실'에 집중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고 당연한 듯 말하면서도 어떤 결정을 할 때 나는 얻는 것은 나도 모르게 작게 여기고, 잃는 것은 크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평소 걱정과 불안이 큰 편이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도 한몫을 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없을 때는 있는 것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있는 거라도 잘 지켜야, 사는데 어려움이 덜할 테니까. 아빠는 '득'에 집중하는 사업가였고, 그 사업 풍파로 좋았다 나빴다 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리스크 관리에 실패하여 결국 정통으로 망하고 우리 가족은 힘든 시기를 겪었다. 엄마는 살림을 다시 잠그고, 조이고, 모으면서 '실'이 없게끔 하는 일에 집중했다. 아빠는 여전히 '실'보단 '득'을 보는 관점이지만 엄마는 그 반대다. 그런 부모님 사이에서 돈과 직결되는 어떤 일은 잘못되면 힘들어진다, 그러니 잘못될 일을 만들지 말자 하는 생각회로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시 리스크를 잘 관리하지 못했던 게 문제였지, 아빠의 득에 집중하는 결정으로 우리 가족이 풍족했던 한 때도 분명 있었다.
얻으면 잃는 것이 있다. 시간적, 경제적 관점에서는 더 그러한데 나는 '잃는다'는 생각이 들면 여전히 겁부터 난다. 금세 온 식구가 길거리에 나앉는 상상으로 이어지는 타입이다. 안돼, 지켜야지. 이것마저 없어져버리면 안 되지... 자동적으로 이런 회로가 가동되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은 나의 경제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장기적인 관점 없이 발 밑만 봤다. '레버리지'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대출금이 늘어나는 게 싫어서, 그 이자와 부채감이 싫어서 15년 전에 아파트를 사지 않고 빌라를 샀다가 10년간 살고 거의 제로베이스로 처분한 일이라든지, 주식에 대해 공부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나는 주식과 맞지 않다며 돈이 생기면 적금으로 묶어만 둔다든지, 퇴직연금도 관심 없이 디폴트옵션으로 묵혀둔다든지... 이자 들지 않고 원금 잃지 않는 쪽으로 그렇게 살았다. 무슨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듯 복리의 마법, 시간의 마법을 남의 일인 양 했던 것이다.
회사에 있으면 주식을 안 하는 사람이 없다. 탕비실에 한숨이 차고 헛웃음이 오가는 아침은 미장이 폭락한 날이었다. 어쩌다 타 부서 동료들과 저녁을 먹었던 날엔 부동산 시세를 줄줄이 꾀는 동료나 주식투자에 빠삭한 동료의 대화가 내 머릿속에 섞이지 않고 기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다들 그렇게 자산 불리는 게 당연한 시대에 나는 저 뒤에서 멀찍이 멀뚱히 서 있는 사람 같았다.
이제 와서야, 무리하지만 않으면 손해를 크게 보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내 퇴직연금(DC형) 수익률이 보였다. 투자 관련 얘기만 나오면 등장하는 시드머니. 나는 그 시드머니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손에 쥐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일하는 동안 쌓인 퇴직연금이 있었다. 보잘것없는 수익률 앞에서 이제야 지난 세월 뭐 했나 싶은 공허함이 밀려왔다. 집도, 퇴직연금, 저축도... 지나온 인플레이션의 시간이 아깝기 그지없다. 생각하면 내가 낸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것처럼 쓰라리다.
남편과 투자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면 나는 늘 방어적이었는데 남편은 그런 나를 탓하지 않았다. 나 때문에 부동산 투자도 주식투자도 적극적으로 할 수 없어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은데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걸로 싸운 기억은 없다. 대신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대화 중에 투자 관련된 얘기를 내게 해 주었다. 주변인들의 주식 이야기, 주택 이야기 같은 걸 거부감 들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심지어 남편 주변에는 전업투자자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배우자를 둔 직원도 있었다. 남편 말에 따르면 그들은 '득'을 우선시하지 '실'을 우선하지 않는다고 했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투자하고 설령 손해 보더라도 잃었다고 절망하지 않고 그걸 통해 배워서 나중에 좀 더 큰 '득'을 보는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다.
남편도 늦게 재테크에 관심 갖고 눈 뜬 편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뒤늦게 내가 그때 아파트 살 걸, 진작에 주식 투자할걸 하며 미안해하면 남편은 자기도 그때 나와 다른 의견을 주장하지 않았으니 '같이 한 결정'인 거라고 말했다. 이제라도 퇴직연금 상품을 TDF, ETF로 변경한 나에게 잘했다 칭찬해 주었다. 나의 심리적인 장벽이 허물어지길 오랫동안 기다려준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흘려보낸 시간이 너무도 아깝지만 돌이킬 수 없고, 이제라도 남은 날들을 투자 관점에서 잘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생에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있으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돈돈 거리고 싶지 않지만 늙어서까지도 돈은 꼭 필요하다. 투자할 생각을 하면 지금의 일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고정 수입이 있을 때, 시기가 좋을 때, 잘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투자에 대해 하나씩 배워가는 일이 지금의 내게 급하면서 중요한 일이 되었다. 여러 채널을 통해 자산관리, 투자관리에 대한 공부를 해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