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가난의 기억

by 눈썹달

80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난리다. 교통이 끊기는 것은 기본이고 곳곳에 침수 피해와 실종 신고도 있어 안타깝다. 부디 인명 피해는 없기를. 자연 앞에 인간은 속수무책이 된다. 그저 몸을 낮추고 겸손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비가 많이 내릴 때면 반 지하 집으로 물이 들이쳐 자다 말고 물을 퍼내야 했던 어린 시절이 한 번씩 떠오른다.


아버지 사업 실패로 부모님과 나, 여동생과 남동생, 그리고 아빠의 알량한(당시 엄마의 표현이다) 장남 책임감이었던 할머니까지 여섯 식구는 방 2개, 화장실 1개와 부엌으로 구성된 반지하집에서 몇 년을 살았었다. 방 하나에 부모님과 할머니, 남동생이 생활했고, 다른 하나는 나와 여동생이 사용했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으니 구석구석 늘 곰팡이가 있었고 사계절 내내 눅눅했다. 당연히 바퀴벌레, 집게벌레들도 같이 살았고 장마철이면 집안으로 물이 차기 일쑤였다. 자고 있던 새벽에 아빠 엄마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물이 들어와서 삼 남매의 어린 손까지 동원해야 했던 날도 있었다.


출렁거리는 장판 아래로 가득한 물.

니가 왜 여기에 있어.

집은, 방바닥은 물과 어울리지 않아.

축축하고 눅눅한 느낌은 집에 옳지 않아.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극혐의 순간. 마른 바닥을 침범해 장판을 출렁이게 했던 물. 집의 맨바닥과 우리들의 발 사이를 지켜주던 비닐장판을 어느새 날으는 양탄자처럼 둥둥거리게 만든 불청객을 쓰레받기로 긁어 버리면서 어찌할 수 없는 그 상황에 울며 짜증을 부렸던 기억이 선연하다. 당시 나는 불편감을 잘 참지 못하고 쉽게 귀찮아하며 짜증 부리는 이기적이고 철딱서니 없는 첫째였다.


구질구질했던 그 시절의 기억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남아있지만 살아오면서 약속이나 한 듯 누구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언젠가 한번 가족 모임 때 엄마가 그때를 한마디로 회상한 적이 있었다.


"그 비참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라고.

지난 세월을 부모님이 어떻게 견디며 이겨내 왔는지 이제 조금은 알기에... 마음 한편이 어딘가에 쓸린 듯 애처롭고 먹먹했다.


엄마는 그때 한 번 더 이를 악 물었다고 했다. 이 비참함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리라고. 그렇게 힘들었던 때에도 좌절만 하지 않았다. 가족의 생활을 위해 요즘 말로 존버와 열일을 한 것이 부모님과 우리를 살게 했다. 너희들만 아니면 아빠와 진작에 바이 바이 했다고 종종 말하던 엄마. 그 말이 어린 나를 불안하게 하기도 했지만 결국 부모님은 끝까지 우리를, 가족을 지켜주었고 그렇게 생계를 위해 악착같이 살아온 시간은 지하 방에서 서울 아파트 8층 집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가난, 그 아픈 기억은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내 마음에 슬며시 넘실거리곤 한다. 세월이 흘러 나도 부모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 생각할수록 부모님이 대단하고 감사하다. 그 힘들었던 시절을 견디고 살아준 나의 아빠, 엄마께 존경과 사랑을 보낸다.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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