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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Sep 05. 2022

글태기가 왔다

모르겠다. 지난 시간 동안 어떻게 백여 개가 넘는 글을 써왔는지.


요즘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글이 써지지 않는다. 쓰고 싶은 소재가 계속 떠오르는데 이상하게 쓰는 데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예전과 달리 쓰는 에 오롯이 신경이 모이지 않는 느낌이랄까.


코로나로 업무가 줄었다가 엔데믹으로 국경이 열리고 회사 출장이 재개되면서 내 업무도 다시 늘었다. 일이 많아지니 하고 싶은 일에 쓸 시간이 줄어들고, 업무 우선으로 머리가 돌아가서인지 차분히 글을 써 내려갈 마음이 잘 잡히지 않는 상황인 것 같다. 글 많이 써보겠다고 벼르고 벼렀던 고가의 키보드(내 기준)까지 사들였는데 무색하다.


그럼에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커서가 알을 낳듯 글들을 나열해보지만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백지위에 그려지는 문장의 느낌이 달라서 짜증스럽다. 도대체 이전에는 어떻게 그렇게 글을 썼는지, 나는 대체 어떻게 그 글들을 쌓아온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요즘 내 글이 초라하다. (이전 글들도 잘 썼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쓰는 순간만큼은 집중이 잘 됐었다.)


되짚어 읽어본다. 내 예전 글들을. 나쁘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내가 썼던 글에 당시 상황이 떠올라 다시 감동하기도 하고 그 마음을 그렇게 담아낸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하다. 매 글마다 자기 검열을 하면서 썼지만 지금 읽어보니 그래도 솔직했다. 그때는 지하철에서도 쓰고 점심시간에도 짬 내서 쓰고, 아침에도 쓰고 그랬는데 지금은 도무지 그렇게 집중이 되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이런 게 글태기라는 건가 싶다. 잘 쓰고 싶은데 잘 써지지 않고, 여전히 글로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물꼬가 트이지 않는 느낌.


오늘은 안 되겠어서 비루한 글 일지라도 늘어놓는다. 글이 써지지 않다고 해서 쓰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 쓰지 않으면 애써 찾은 내 존재가 다시 흐려져버릴 것만 같다. 글로 나를 이야기하고 싶고, 계속 그렇게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글 태기를 불러온 것 같기도 하다. 잘하고 싶은 마음. 더 울림 있는 글을, 더 사색이 담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닐까.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럴 때는 놓지 않고 이어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나를 다독여본다. 글이 안 써진다고 이렇게나마 글로 떠들고 있는 내가 잘하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흡족한 결과물이 없는 지금 상황은 괴롭지만 그 이면에서  글을 생각하고 있는 시간들이 언젠가는 나를 다시 끌어올려줄 거라 믿고 싶다. 어떤 글이든 일단은 쓰는 나에게 집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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