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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Jun 26. 2022

겪어봐야 아는 일

출근하는 길에는 세탁소가 하나 있다. 이 동네에 살기 전, 연애시절 와봤던 때에도 있었으니 20년은 훌쩍 넘게 오래된 곳이다. 다른 아파트 앞에 있는 세탁소여서 이용해 본 적은 없었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운전해서 출근하는 날보다 지하철로 출근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이른 아침 그 세탁소를 자주 지나치게 되었다. 세탁소는 아침 6시 30분에도 오픈되어 있었고, 어쩌다 내가 조금 더 일찍 지나가게 되어도 어김없이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아마 6시쯤이 오픈 시간인 듯했다. 그 안에는 사장님처럼 보이는 남자분이 세탁물을 손보고 있거나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 아침에 한 번도 문이 닫혀있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지나칠 때마다 신기함이 들었다. 그렇게 일감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아침잠이 없는 분인 건지 알 수 없지만 그 부지런함과 규칙적인 운영, 꾸준함이 어떤 분에게서 나오는 걸까 궁금하기도 하고 약간의 존경심마저 들어서 언젠가 한 번은 꼭 들러봐야지 싶었다.




주말 어머님 옷 수선 때문에 마침 세탁소에 갈 일이 생겼다. 나는 이번이 그 세탁소 사장님을 만나볼 기회다 싶어 고민하지 않고 그곳으로 먼저 발길을 향했다. 궁금했던 사장님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내가 오가며 세탁소에 대해 느낀 것들로 덕담도 조금 나눠볼 생각을 하면서.


세탁소에 도착하니 멀리서만 보았던 사장님이 앉아서 티브이를 보고 계셨다. 나는 반갑게 "안녕하세요~" 하며 들어갔는데, 뭐지? 티브이에서 잠시 눈을 떼 나를 힐끗 보시고는 별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손님의 인사에 가게 주인의 인사가 되돌아오지 않았다. 세탁물을 다루고 있는 상황도 아니었는데. 손님을 맞이하는 그분의 시큰둥한 태도는 내 기대와 너무도 달랐고 나는 마치 못 올 곳에 온 사람처럼 민망해져서 얼른 가져온 수선감을 올려놓으며 이렇게 저렇게 고칠 수 있을지 물었다. 그분은 멀찍이서 쓰윽 보더니 반갑지 않다는 기색으로(돈 안되고 손만 가는 수선 물이어서 그랬을까) 마지못해 하나는 자기네가 수선 못하고 다른 하나는 가능하다고 했다. 가격을 물으니 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서 자신은 수선비를 모른단다. 참 성의가 없었다. 


여러모로 불쾌했는데 어째서 나는 수선물 하나를 맡기고 나왔을까. 맡겨버렸다고 해야 맞겠다. 더 길게 말 섞기 싫었지만 그렇다고 됐어요 하고 돌아 나오는 것도 되지 않았다. 가게를 나서고 나니 후회가 되었다. 저런 사람에게 왜 맡겼지. 다른 세탁소로 갈걸. 가서 취소해버릴까? (취소는 하지 않았다.)




눈에 보인 겉모습만 보고 '저 세탁소 사장님 참 대단하다, 자신의 일에 그 정도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이면 당연히 손님에게도 친절하고 정감 있겠지.' 내 멋대로 단정 짓고 기대했었다. 불필요한 기대는 예상치 못한 배신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수많은 내 출근길에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순간이었다. 그다음 출근길에도 그곳은 이른 아침 열려있었지만 더 이상 특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 사장님의 부지런함 하나를 보고 은연중에 다른 부분도 훌륭할 거라고 짐작했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이 날 겪은 것도 그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필 그날 그분의 컨디션이 나빴을 수도 있고, 뭔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분은 그저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갖추었지만 서비스 마인드는 부족한 사람이었다. 극과 극의 모습을 본 탓에 내 실망감이 컸을 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은 그야말로 옛말이다. 이 말에 무의식적으로 수긍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보이는 하나에 홀려서도 안되고, 좋지 않은 모습 하나로 단정 지어서도 안된다. 이번처럼 하나만 보고 또 다른 기대를 하거나 반대로 어떤 하나만으로 전부를 나쁘게 단정 짓는 것을 경계해야겠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기대하고 실망하지 않도록 하자.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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