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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Feb 27. 2021

노약자석 앞에서의 사색

지하철 출근길에서.

지하철 출근 중이다.

지금. 내 옆에는 60대로 짐작되는 중년 여성분이 조금 전 탑승하였고, 공략한 노약자석이 꽉 찬 상황에 당황하시며 갈 곳을 잃은 듯 서성이고 계신다. 물론 나도 입석이다. 제일 사람이 많을 시간이기 때문에 탈 때부터 자리는 포기했었다. 콩나물시루 안에서 어떻게든 앉으려 노란 시트 앞을 서성이는 모습은. 뭐랄까, 품위가 없다.


문득 노약자석에 앉는 중년분들을 생각해본다. 

같은 60대라도 노약자석을 갈망하는 분들은 왜 남성보다 여성이 많아 보일까. 

남성분들은 아직 사회적으로 자신이 노쇠해졌음을 시인하기 꺼리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나이 들었지만 나름 체면도 생각하는 눈치다. 반면 여성분들은 스스로 약한 존재임을 사회에 호소하는 느낌이 있다. 체면을 생각하기보다 조금은 억척스러워 보일지라도 고단함을 줄이고자 하는 생활력이 더 느껴진다. 


노약자 부부가 자리를 찾아 앉을 때 모습을 보면 대부분 할머니가 적극적이다. 먼저 들어와 자리를 잡고 할아버지 보고 빨리 와서 앉으라 성화를 내거나, 겨우 한자리 찾아도 본인이 앉지 않고 할아버지를 앉히는 모습을 종종 봤다. 어떤 커플은 두 분 연세가 비슷해 보였고, 꼿꼿한 할아버지에 비해 할머니는 다리가 거의 O자로 휜 상태였지만 자리에는 할아버지가 앉았다.(남의 사정이지만 내가 잠시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사람, 성격, 살아온 문화가 다 다르므로 일반화할 수 없지만, 노인층을 보면 사회생활하며 돈 버느라 바빴던 아버지, 그 뒷바라지하며 힘들게 자식들 키워내셨던 어머니. 전형적인 옛날 부모님들의 모습이다.    




이 분들이 노약자석만 공략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시대가 바뀌어서 일반석 앞에서는 도무지 자리 양보받기가 쉽지 않다. 인생 100세 시대라는 말에 60대분들은 중년이라 하기에도 장년이라 하기에도 애매하다. 아직 젊다는 소리도 들을지 모른다. 아침 출근시간, 저녁 퇴근시간에는 사람들로 꽉 차서 물리적으로 자리를 양보하고 양보받기도 힘들다. 아예 정말 주름이 많고 머리가 새하얗게 되지 않았다면 더욱 양보의 대상으로 보이기 어렵다. 


자리에 앉아있는 젊은이들은 잠을 자거나, 대부분 손 안의 세상에 몰입해있다. 내 앞에 어르신이 계시는지 임신부가 계시는지 모르고 갈 때도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알지만 양보할 수 없는 사정도 있을 것이다. 어르신들은 출퇴근 시간을 조금만 피해서 이동해 주시면 서로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내 위주의 못된 생각일 뿐이다. 그분들도 그 붐비는 시간에 나올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어 감수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나이와 관계없이 출퇴근 시간은 누구에게나 고단한 시간이다. 동방예의지국도 무작정 양보를 강요할 수 없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된 지 오래이다. 어르신들도 그걸 아시는지 자리 양보하지 않는다고 볼멘소리 하시는 분들이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것 같다.(내가 못 만난 것인지도 모르지만...) 


상대적으로 좀 더 시간과 젊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을 조금 더 살펴가며 살았으면 좋겠다.

강요가 아닌 작은 관심으로... 사정에 맞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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