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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스인 Jan 13. 2023

임신 5주만에 아가를 보내며

2020. 2. 18

며칠 전부터 소변을 볼 때 계속 피가 섞여나왔다. 처음엔 갈색혈이라면 착상혈이라는 블로그 글을 보며 안심했다. 하지만 점차 하혈의 양이 많아지고 마음은 불안해졌다. 배도 처음에는 콕콕 쑤시더니 나중에는 배 안에서 칼로 긋는 듯 아팠다. 그리고 찾은 산부인과. 늘 침착하던 의사선생님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기집이 그대로네요.


나는 그 말이 좋은 말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알게되었다. 아기집이란 본래 하루만 지나도 눈에 띌 정도로 커져야 한다는 걸. 그래서 금요일에 초음파를 했을 때 크기와 월요일인 현재의 크기가 같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상황을 지켜봐야하지만, 70~80%는 각오를 해야한다고 했다. 그 말이 무슨말인지 모르다가 이내 알아버렸고 병원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익숙한 듯 간호사 선생님들은 휴지를 챙겨주며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10시에 병원 문을 여니 그때 오라고 하셨다. 


집에 오자 복통은 더욱 심해졌다. 선생님께서 지금 상태는 자궁 속에 이물질이 있는 것과 똑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얼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엉엉 울면서 우선 회사에 연락을 했다. 그러니 걱정말고 나만 생각하라는 회사 선배의 말.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실을 알렸다. 더 이상 아가가 내 안에 없다는 사실을. 알리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빨리 만나고 싶었는데 이런 식이 될줄은 몰랐다. 임신 소식을 기다리던 양가 부모님들이 실망하실 게 생각나서 더 속이 상했다. 이런 마음을 언니에게 이야기하자 "너만 생각해"라고 말해줬다. 이런 순간에도 나만 생각하기란 참 어렵다. 밤새 끔찍한 악몽으로 잠을 설쳤다.


그리고 다음 날 찾은 산부인과. 빨리 이 악몽 같은 순간이 끝나길 바라며 병원 오픈 시간도 전에 도착했다. 여러가지 설명을 듣고 수술대에 누었다. 언제나 굴욕적인 개구리 자세를 한 채 팔이 묶였다. 그리고 여러가지 설명 등. 언제 마취제가 들어오나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엄청난 몸부림과 함께. 간호사 선생님들이 움직이면 다친다고 제지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아직도 남았다는 말에 정신줄이 놓아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내 안에서 무언가 엄청난 것들이 빠져나온 후 나는 회복실로 이동됐다. 걸어갔지만, 어떻게 걸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자꾸 눈을 감으면 안된다고 하는데 눈이 감겼다. 남편에게 왜 눈을 감으면 안되냐고 물어보라고 두번씩이나 확인한 후 나는 눈을 감았다. 1시간 남짓 자고 일어났을까. 죽을 것 같은 고통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남편은 내가 소리를 너무 질러서 내가 잘못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심리적인 고통이 악몽으로 이어진듯 했다.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배고픔이 찾아왔다. 병원 앞에서 죽 세 가지와 케익을 샀다. 케익은 아기 심장 소리를 들으면 파티를 하려고 생각했던 건데 이렇게 먹게될 줄이야. 왜인지 모르겠는데 나에게 태몽을 팔았던 친한 친구와 함께 먹었던 투썸플레이스 스트로베리 초콜릿 생크림 케익이 너무 먹고 싶었다. 그것들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거울을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눈은 부어서 터져버릴 것 같았고 얼굴은 퉁퉁 부어 사각형이 되었다. 그 와중에 상황을 모르는 동료들의 빗발치는 전화들. 다시 한번 차장님과 통화하며 상황 정리를 했다. 결국 이번주는 회사에 가지 않고 집에서 몸을 추스르기로 했다. 대신 내가 처리할 수밖에 없는 일들은 집에서 해서 보내기로 했다. 차장님은 몇 번씩이나 괜찮겠냐고 했지만, 그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단호하게 말씀드렸다. 괜찮다고. 


가족과 친구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나는 또 괜찮다고 계속 안심을 시켰다. 괜찮다고 말하는 게 참 괜찮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친구가 미역국과 반찬들을 싸가지고 집으로 왔다. 이럴 땐 이렇게 위로하는 거구나 또 하나 배우게 되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한 쪽으로 물러서서 그 일이 좀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좋은 건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친구의 미역국을 보니 각별한 사이일수록 더 개입하고 물어보고 함께하려는 게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그래서일까. 간밤에 아주 좋은 꿈을 꾸었다. 내가 자다가 웃길래 오빠가 갸우뚱했다고 한다. 키가 나보다 30cm는 더 크고 몸도 퉁퉁한 친구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며 운동장에서 공중제비를 도는 꿈. 그 친구와 나는 너무너무 즐거웠고 시덥지않은 농담도 꺄르르 꺄르르 배꼽이 빠져라 웃으며 함께 나눴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행동을 하며 아가를 기다려야겠다. 

아가야, 잘 가렴. 아주 잠깐이지만 덕분에 정말 행복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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