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20
유산의 아픔을 겪고 있다.수술 후 이틀간 남편과 시간을 보내고 오늘은 온종일 집에 혼자 있었다. 생각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넷플릭스 결제를 했다. 여기저기서 추천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20화도 단 3일이면 뚝딱이더라.
드라마만 볼 수는 없었다. 회사에서는 유산 후 몸을 돌보라며 휴식의 시간을 줬지만, 내가 해야 할 몫의 일은 있었다.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게 속편한 그런 일. 그렇게 회사일을 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지고 있었다.
머리가 가려웠다. 3일째 머리를 감지 않았다.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으니 티셔츠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이런 나를 남편은 아침에 꼭 안고 출근을 했다. 에효. 대단한 사랑이다. 씻으면서 머릿속을 정리해보았다. 떠나간 아이는 보내줘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남들은 자책은 금물이라고 했지만, 나는 자책이 아니라 원인을 찾고 싶었다.
병원에서 유산의 원인을 물으니, 염색체 이상이라고 말했다. 염색체 이상이라... 너무 무시무시한 말 같았지만, 추가 설명은 없었다. 그냥 유산은 흔한 일이고 너무 상심하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면 또 아이가 찾아올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한 한의사 선생님의 유튜브를 찾아보니 염색체 이상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염색체는, DNA 혹은 유전자다. 이것은 아기가 커가는 데 필요한 설계도라고 보면 된단다. 설계도에 이상이 생기면 유산이 된다고 한다. 정자와 난자가 각각 설계도를 반반씩 가져오는데, 이 설계도에 오타가 나거나 종이가 찢어져 있으면 문제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정지시키거나 폐기할 수밖에 없어진다. 이 과정이 계류유산이다.
엄마와 아빠가 설계도를 반씩 가져와 아기를 만들기 때문에 난자와 정자의 질이 좋아야 한다. 염색체 이상, 그건 대체 언제 결정되나? 그것은 바로 임신이 되는 시점, 즉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시점에 유산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임신을 하고 나서 매운 음식을 먹고 과한 운동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은 게 문제가 아니라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그 시점이 중요했던 것이다.
정자와 난자가 건강하려면 호르몬이 좋아야 한다. 좋은 호르몬은 애기 씨앗을 만드는 데 영향을 주고 자궁 내막을 두텁게 해 애기 밭을 만드는 데도 도움을 준다. 그것은 바로 평상시 생활습관과 스트레스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교감신경이 항진되어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온다. 그러면, 자궁으로 가야 할 호르몬에 방해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생각과 좋고 행복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마음을 강하고 단단하게 먹을 것이다.
아픔을 겪은 후 남편과 나의 사이는 더욱 애틋해졌다.
우리에게 다시 건강하고 행복한 아기가 찾아와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