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레셔스>와 책 <왜 미국인은 복지를 싫어하는가>를 보며
<왜 미국인들은 복지를 싫어하는가>라는 책이 있다. 프린스턴대 정치학과 교수인 저자 마틴 길렌스 교수는 정치불평등과 대중매체, 인종, 성, 복지정치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왔다. 2012년에 쓴 이 책에서는 미국인들이 복지를 싫어하는 원인으로 인종 문제를 지적했다.
저자는 미국인들은 개인주의라서 혹은 이기적이라서 복지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근면의 가치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미국인들이지만, 개인이 자립할 수 없을 때는 정부가 도와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철저하게 잔여주의관점에서다. 그러면 왜 미국인들은 복지를 싫어한다고 알려져 있을까. 그것은 바로 복지 수혜자가 '집에서 빈둥빈둥 놀면서 보조금만 타먹으려는 흑인'이라는 이미지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백인 미국인 대부분이 갖고 있는 흑인에 대한 이미지와 신념이 복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은 편견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의 실제 복지수혜자 중 흑인은 36%이다. 그럼에도 '나태한 흑인'이라는 프레임은 복지에 대한 인식에까지 영향을 미쳐, 복지란 게으른 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버린 것이다. 물론 이런 편견에 앞장 선 것은 대중매체다. 1960년대부터 수십년 간 타임지나 뉴스위크 등 미국 대표 시사주간지에 실린 빈곤층의 사진 중 흑인의 비율이 57%에 달했다.
그런데 막상 <프레셔스> 같은 영화를 보면 생각이 많아지긴 한다. 영화의 주인공 프레셔스는 임신 후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다. 놀랍게도 그를 임신시킨 건 그녀의 아버지다. 심지어 이번이 두 번째 임신. 그는 엄마와 둘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더 이상 일반학교를 다닐 수 없게된 프레셔스는 대안학교에 들어가고 거기에서 그에게 빛이 되어주는 선생님을 만나 새로운 희망을 품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면서 좀 충격인 것은 온종일 TV만 보는 프레셔스의 엄마였다. 딸이 자신의 남편에게 성폭행을 당해 두 번이나 임신을 했는데도 되려 딸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하루종일 무기력하게 TV 앞에 앉아 음식만 탐하는 모습이 끔찍했다. 프레셔스의 엄마가 그럴 듯한 모습이 되는 유일한 시간은 사회복지가 방문했을 때였다. 프레셔스의 엄마는 프레셔스가 시도하는 무엇인가 때문에 복지수당이 안나오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All or Nothing. 일을 하면 아예 수당이 나오지 않고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는 유지할만큼의 수당이 나온다. 그렇다면 힘들게 일해 쥐꼬리만한 임금을 받는 것보다는 집에 있으면서 일하지 않고 생계를 잇는 편이 더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이 복지의 딜레마다.
어쨌든, 영화 <프레셔스>는 오프라 윈프리가 제작했고 흑인 여성작가가 만들었다는데 이 영화를 통해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나태한 흑인'의 이미지가 더 강해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