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자 벤담이 가져온 트롤리의 딜레마
자본주의의 현대 사회는 '경제적 효용'이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기에, 공리주의를 바탕으로 한 제도나 정책이 많다. 나 역시도 공리주의가 가장 공정하고 정의로운 철학이라는 생각을 고등학생 때까지 했었다.
대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한 교수님이 제시한 문제였는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달리는 기차 앞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거리에 있는데, 기관사는 방향을 틀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다. 물론 그 방향에도 한 명의 사람이 있다. 여러 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한 명을 희생해도 되느냐 하는 문제다. 참 어려운 문제다.
그런데도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한 사람을 희생하는 방향으로 틀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공리주의가 뼛속까지 물든 새내기였지 뭐. 나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89%가 같은 대답을 했다고 한다. 이게 바로 '트롤리의 딜레마'다. 질문을 살짝 틀면 답변의 비율은 확 달라진다. 멈추지 않는 기차 앞에 놓인 여러 명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기차에 사람을 밀어 멈추게 하겠느냐는 질문. 여기에는 단 11%만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윤리를 효용의 가치로만 볼 수 없기에 딜레마가 생기는 것이다.
이건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면 된 거 아닌가, 하는 벤담의 후예들에게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는 모두가 해피하지만 해서는 안 되는 거나 곤란한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아이가 휴대폰 게임을 좋아한다고 휴대폰을 종일 맡기면 부모도 자신의 할 일을 할 수 있어 편하고 아이도 좋아하는 게임을 할 수 있어 즐겁다. 하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아이는 게임중독에 빠질 수 있다. 결과만을 중시하며 과정을 무시한다면 언젠가는 과정 속 오류가 눈덩이처럼 커져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