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30분 무렵 기상한다. 남편은 벌써 출근했고 첫째 혹은 둘째가 나의 알람이다. 알람이 너무 시끄러우면 이웃(첫째 혹은 둘째)이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깨서 징징 거리기 때문에 후다닥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역시나 얼마 후 이웃이 깼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귀여운 나의 알람으로 시작된다.
"엄마, 까까 줘"
"안돼, 맘마 먹고! 까까 먼저 먹으면 밥맛이 없어요"
그리고 바빠지는 나의 손. 오늘의 아침은 쌀밥에 뽀로로 치킨너겟, 그리고 시어머니가 주신 시금치나물과 고사리나물이다. 실리콘 식판에 담아 가위로 먹기 좋게 자른다. 역시 아침에 간식을 주지 않고 바로 본식으로 들어가니 한 그릇 뚝딱이다. 감사하다. 애써 차린 밥상을 거부하면 그때부터 나의 인내HP는 고갈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첫째가 식사를 하는 동안 6개월이 된 둘째의 이유식을 데운다. 연년생이면 이유식은 무조건 시판이다. 요즘들어 자기 표현을 시작한 둘째. "어어어어어~~" "음, 맘마 먹자! 아웅 맛있어~~" 어르고 달래고 분위기 조성하며 먹이기 바쁘다. 태어난 후 6개월이 지나면 철분 수치가 무척 떨어진다는데, 이유식에 들어있는 소고기들이 우래기 철분 수치를 지켜주길 바란다. 그렇지만, 그러기엔 입으로 반 턱받이로 반 흘러내리는 피같은 이유식.
18개월 차이가 나는 연년생이다보니 어떻게 어린이집 등하원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둘째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무더위를 뚫고 친정엄마가 거의 매일 와주셨다. 이제는 둘째의 유모차에 첫째의 자전거 형태의 키즈슬레드를 달아 한번에 움직인다. 아가는 유모차에 형아는 유모차와 연결된 안장이 달린 바퀴 의자에 앉히는 식이다. 요런 템들은 대체 누가 만든 건지. 육아템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첫째를 보내면 일단 한 숨 돌릴 수 있다. 하지만 집안은 난장판. 어지러진 집안을 정리정돈하고 남편이 돌리고 간 세탁기에서 세탁물을 꺼내 빨래대에 널건 널고 건조기에 돌릴 건 돌린다. 그 사이 성실한 둘째의 똥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준다.
멈춰 있으면 비로소 보이는 게 아니라 불안해 하는 나라서 최근에 북스타그램을 시작했다. 둘째가 잠든 사이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 책을 읽고 좋은 내용을 발췌해 인스타와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이것들이 나중에 나의 진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냥 하고 보는 것이다. 뭔가를 하는 시간에도 늘 100% 집중하긴 어렵다. 언제 울음 소리가 나의 집중을 깨뜨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
"으아아아앙" 서럽게도 운다. 아이가 울면 더 이상 나의 시간은 끝이다. 그 다음엔 팟캐스트나 유튜브를 들으며 아가와 놀아주는 시간을 보낸다. 육아 전문가들은 영유아들에게 라디오나 TV는 끔찍하게 좋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치만 아직 잘 모르는 때이니 그냥 보거나 듣기로 한다. 뭔가를 아는 첫째 앞에서는 모든 매체와의 단절을 고해야 하니, 이 엄마 좀 봐주자.
오늘은 겨울치고 날씨가 꽤 따뜻했다. 오후 4시 첫째를 어린이집에서 픽업해 동네 공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미끄럼틀을 타니 신나보였다. 한 손엔 영아를 안고 한 손엔 영아의 손을 잡고 미끄럼틀에 올라가도로 잡아주는 내 모습. 정말 강인해보인다(참고로 요즘 내 롤모델은 영화 '매드맥스'의 퓨리오사다). 더 놀고 싶다는 첫째를 이마트에서 까까 사자고 유혹해 손쉽게 설득했다.
여기는 이마트. 한참 장을 보고 있는데, 유모차에 자전거가 달린 모습이 귀여운지 판매직원 아주머니가 말을 건넨다. "아이고, 귀여워라!" 여기까진 좋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뻘소리. "아이고 아들 둘인가본데, 엄마는 딸이 있어야 해. 한 명 더 낳아요!" 한 분 더 가담. "그래 맞아, 여자한텐 딸이 있어야 해! 지금은 몰라. 나중 되면 후회해!" "내가 아들 낳으려다가 딸만 셋이야. 그런데 너무 좋아" 아줌마, 할머니들에게 약한 나. 실실 거리면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두 명이면 충분해요!" 왜 그렇게 대응했는지, 이마트 문 앞을 나서며 후회했다.
왜 이렇게 무례할까. 나에게 정말 조언을 해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너무 예민한 걸까. 나는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생존을 위해 애쓰고 있으니, 가능한 친절하자, 이런 명언에 격공하는 그런 스타일이다. 그런데 문득 나한테 무례한 사람들에게까지 친절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주머니들, 이제 애기 낳은지 6개월 된 연년생 엄마한테 딸 하나 더 낳으란 말은 좀 너무 했잖아요!"
이렇게 말할 걸 그랬나?
"아주머니들, 그렇게 좋으면 아주머니가 한 명 더 낳으세요"
이건 좀 심한가?
"아주머님, 아들 낳고 싶었는데 딸만 셋이라면서요. 저도 또 아들 낳으면 책임지실 건가요?"
이건 좀 오바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갔다. 그리고 퇴근한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니,
"참 무례하다 사람들"이라고 공감해줬다.
오 웬일? '한 귀로 듣고 흘려~' 아니면 '그 아주머니 그냥 이야기가 하고 싶었나 보다' 이런 식으로 남의 편을 들줄 알았던 남편이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저녁 시간이 지나고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 10시. 나는 또 헬스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등을 먹는 날이다. 등과 이두 냠냠. 맛있게 운동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불현듯!!! 쏘맥이 땡기는 것이 아닌가. 사이클을 타며 검색했다. '혼술하기 좋은 장소' '골뱅이 맛집' '이자카야' 등등. 하지만 막상 헬스장을 나오니 '이 날씨에 처량하게 무슨 혼술이냐' 싶었다.
차선책으로 생라면을 안주삼아 쏘맥 한 잔 말기로 했다. 얼마 전 남편과 한 잔 하고 싶어 일품진로에 곱창볶음을 포장해왔는데, 역시나 두 아드님의 훼방에 30분도 안돼 술자리를 시마이시킬 수밖에 없었다. 육퇴 후 한잔하고 싶지만, 우리 남편은 9시면 잠드는(우리 집에서 제일 일찍 잠드는) 새나라의 어른이시라 불가능하다.
나혼자 쏘맥을 끼얹으며 오늘의 하루를 정리해본다. 참으로 알차게 사는구나 나 녀석. 생각도 많고 행동도 빠른 나 녀석인데, 앞으로 뭐 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다. 이제 6월이면 둘째도 돌인데,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시작해야 하나,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풀타임 잡을 갖게 된다면 집안 꼴은 괜찮을까, 내 체력은, 아이들이 느끼는 안정감은, 기타등등 고민이 깊어진다.
뭐 그렇다고 엄마가 된 걸 후회하는 건 아니고. 엄마가 되니 시간이 너어어어무 소중하다. 이 소중한 시간에 잠을 자며 HP를 회복하는 게 맞는데, 그러면 이런 글도 못 쓰니깐. 오늘만 특별히 운동 후 쏘맥을 허락한 내 자신을 몰아세우지 말자. 자 어서 이제 치카치카하고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