꾹꾹 참다가 펑 하고 터졌다. 남편은 이제 곧 터질 때가 됐는데, 언제 터지나 불안했다고 한다. 폭발은 언제나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 너무 사소해 불이 꺼진 지금 뭐 때문에 그렇게 열불이 났는지 기억조차 안난다. 나는 매우 참았고 지쳤고 터졌다.
지난 해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올해 또 아이를 낳았다. "너희를 키우느라 엄마는 경력이 단절됐단다"라는 말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그냥 좀 예민하고 손이 느린 어떤 여성의 이야기이길 바랐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프리랜서지만 집에서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최근에는 운동도 시작했다. 아이에게는 5대 영양소 고루 갖춘 식사를 제공하는 똑소리 나는 엄마이자, 언제나 웃는 얼굴로 따스함을 전하는 상냥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남편에게도 귀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아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폭발하는 그 시점에 이 모든 목표들은 가연성물질이 된다.
"내가 왜!!!(파이어!!!)"
열심히 살았고 꾹 참았는데, 요즘 들어 부쩍 자기 표현이 강해진 첫째의 패악질에 나는 두손 두발 다 들고 말았다. 그렇게 짜증내는 내 모습이 보기 안좋았는지, 남편은 내 짜증을 받아주지 않았고 나는 서운함에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두 살 아이 앞에서...
"엄마 너무 힘들어..."
이러면 남편은 나를 위로해줄 줄 알았다. 기대와 달리 그런 내 모습이 남편은 한심해보였나보다. 아이 앞에서 엄마가 울어버리고 힘들다 토로하면 어떤 지도가 먹히겠냐고 한다. 맞는 말이다. 아이 앞에서는 절대로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벌써 한 세 번째 우는 것 같다.
이렇게 마음이 괴로워지면, 다 놓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다 놓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화재가 어느 정도 진압되고 잔잔한 상태가 찾아오면 문득 내 생각, 내 행동이 부끄러워진다. 가끔 부끄러워져서 또다시 2차 폭발이 일어날 때도 있다.
아이가 낳아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일까. 이런 정도의 각오도 없었던 것일까? 그러다가 문득 마주한 글. "사춘기 딸... 완전 개 싸가지... 어떡해요?ㅠㅠ 그냥 강아지 한 마리 키운다 생각하세요.ㅋ" 미치겠다.
남편은 나에게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잘시간, 생각할 시간, 여유있을 시간, 차마실시간, 누워있을시간, 혼자의 시간... 시간(여유)이 없어서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는 거라고. 너무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주기 위해 자기도 부단히 애쓰고 있다고. 이또한 맞는 말이다. 육아를 시작한 이래로 남편이 친구를 만난 건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정리해보니, 나는 또 남편 앞에서 응애응애 애기짓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다섯 살 많은 오빠야지만, 우리는 동등한 위치의 부부이고 어른이고 부모다. 자꾸 울적한 상황에 자신을 몰아넣으며 슬픔 속에 빠지지 말자.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 라인홀트 니부어의 기도문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은 온 우주를 준대도 바꿀 수 없는 두 아들의 엄마라는 사실이고
바꿔야 할 것은 툭하면 울거나 화가 나거나 울화가 치미는 약한 나의 마음이다.
아이들에게 이런 약한 마음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애썼는데, 그 다짐이 약해졌나보다.
화가 날 땐 말과 행동과 생각을 잠깐만 멈추자. 우리 집에 평화가 깃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