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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스인 Jan 13. 2023

분노조절장애가 완치된 줄 알았는데

오늘도 또 울었다. 

첫째 아이와 씨름하다가 졌다. 졌어. 

언제까지 이렇게 나약할 건인가.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비가 와서 그런지 온몸이 찌뿌둥했고 약간의 방광염 증상도 있어 예민한 상태였다. 어제는 겨우 6개월된 둘째의 항문에 두 번째 농양이 발견돼 대학병원에 다녀왔다. 의사의 솔직한 소견인지, 아니면 의사 본인이 팔에 깁스를 하고 있어 농양을 절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런지 항생제만 먹고 지켜보잰다. 의사가 그러라면 그래야지 엄마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항생제 영향인지 설사를 해댄다. 씻기고 말리고 씻기고. 첫째는 일어나자마자 안아달라고 울어댄다. 


"잠깐만, 엄마 아가 기저귀 좀 갈고"


현재 시각 오전 6시 45분. 남편이 출근 준비를 한다. 남편이 출근하며 뽀뽀를 하는데, 어쩐지 귀찮다. 외투를 입고 안방에 들어오는 것도 거슬린다. 그래도 배우자가 나갈 땐 웃으면서 보내는 게 국룰.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만사가 짜증이 난다. 


아침부터 이것저것 음식을 대령한다. 이제 슬슬 어린이집에 가면 될 시간인데 첫째의 행동은 그와는 반대로 향한다. 둘째도 배가 고픈지 징징거리기 시작해 이유식을 먹인다. 역시나 턱받이가 무의미할 정도로 수면조끼며 내복, 손에 이유식 범벅이다. 그와중에 응아를 하는 첫째. 첫째의 항문 청결을 위해 어제 만든 고구마 티딩러스크를 둘째의 손에 쥐어주고 화장실로 향한다. 


'자, 이제 고지가 보인다. 조금만 더 버티자!!!'


이런 마음을 눈치챘는지, 첫째는 내가 하자는 것마다 다 토를 달고 도망가고 딴청을 부린다. 잠옷을 벗자, 싫어싫어, 내복을 입자 싫어싫어, 바지부터, 그것은 바지가 아니라 윗도리야, 엄마 쉬했어요 기저귀 갈아주세요...


어느 지점이었을까 나의 인내심은 또다시 바닥이 났고 나를 꼭 쥐고 있더 나사는 풀려버렸다. 


"이러면 엄마 힘들어!!!"


말해 놓고, 앗뿔사. 아이한테 엄마 힘들다고 하면 안 되는 건데. "이렇게 해볼까?" 하고 다정하게 말했어야 했는데, 나는 좋은 엄마가 되긴 글렀구나. 온갖 자책으로 머리엔 먹구름이 가득 들어찼다. 나의 샤우팅에 첫째와 둘째는 엉엉 울었고 나도 울었다. 애 앞에서 안 울겠다고 다짐한 게 엊그젠데 나는 또 이렇게 울고 있구나. 그 사실에 또 엉엉.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힘들어 엉엉"


엄마가 집 정리하구선 가줄까, 아니야 그게 아니야. 엄마가 와 봤자 그땐 다 끝나 있다구... 남편에게 전화 걸어 엉엉엉. 침착한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니 다시 현자타임. 그래, 밖에 내 새끼가 울고 있지. 정신 차리자 인간아. 방문을 열고 나가 아이를 꼭 껴앉는다. 


"엄마가 미안해."

"내가 미안해. 마음이 속상했어."


자기 표현을 엄청나게 잘하는 우리 장남이다. 


"엄마랑 심장 맞추기 할까?"

"응!!"


모자는 꼬옥 껴안는다. 뒤늦게 어린이집에 보내며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첫째를 너무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서 그런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리. 엄마 대체 그런 말은 왜 하는 거야. 다들 돌 지나면 보낸다구...


나는 화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인간이다. 솔직하자. 화가 좀 많은 편이었다. 충동성이 강하고 즉흥적인 성격. 그런 내가 엄마가 되면서 다짐한 것은 나의 이 분노유전자를 아이에게 전하지 말자, 분노조절장애는 내 대에서 끝내자였다. 그런데 요즘 그 인자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다. 분노조절장애가 완치된 줄 알았는데 아니다. 


왜 나는 화가 나는 걸까. 힘들면 화가 난다. 어떨 때 힘들지? 내 마음대로 안 될 때 힘들다. 


위대한 오은영 선생님께서는 욱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욱해도 내 아이는 나를 이해해줄 거라고 자만한다. 자녀를 키우면서 어느 정도의 자신감은 필요하다. 그 많은 자녀교육서에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에 모두 신경 쓰며 자책하고 위축될 필요는 없다. 내 아이는 내가 가장 잘 안다는 생각으로 자신감을 갖고 아이를 키워야 한다.(중략) 그런데 그것도 지나치면 안 된다. 지나친 자신감은 내가 낳은 아이니까 내가 선의를 가지고 있다면 어떤 행동도 괜찮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아이가 나를 다 이해하고 용서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아무리 내 아이라도 좋은 방법을 택하지 않으면 상처받는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만만하기 때문이다. 욱은 순간적으로 감정 조절의 문제다. 내가 상대에게 얻을 것이 많다면 그 사람 앞에서 절대 욱하지 않는다. 나 없이는 못 사는 약자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욱하는 것이다. '자신이지만 이 아이는 내가 인간으로서 보호하고 존중해줘야지'라는 마음이 강하면 아이한테 욱하지 못한다."

- 오은영 <못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만만한 상대, 내 손 안에 있는 상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욱하지 않았나. 아이는 분명 잘 가르쳐야 할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욱하고 화내는 게 정당화될 순 없다. 


육아라는 건 정말 다시 태어나는 과정인 것 같다. 나를 벗겨내고 깎아내며 내 안의 아이를 다시 성장시키는 도닦는 작업. 으아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수행의 길에 들어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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