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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향 Jan 26. 2017

안개향의 그림책 카페

두 사람을 위한 삐딱한 그림책 읽기

                                                                                                             

남편은 최신 모바일 게임보다도, 오래된 레트로 게임을 더 사랑합니다

  남편은 게임을 무척 좋아합니다. 게임을 직접 만들고 싶어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하고 대학원에 갔을 정도니(물론 현재 직업과는 무관하다), 그 사랑의 크기를 알만하지요. 저요? 저는 게임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한다 해도 퍼즐 류의 모바일 게임이 전부입니다. 게임을 사랑하는 이와 결혼하게 되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렇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7년째 함께 살고 있습니다.

    끝없이 계속되는 최신 게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일정 점수에 도달하거나 적을 죽이면 해당 단계가 끝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이전 단계에서 나를 괴롭히던 문제는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못합니다. 문을 열고 나가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죠.


이 문을 열고 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릴까요?

                                                                                                                 

  삶은 게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인생의 어느 순간쯤이 되면 어렴풋이 깨닫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인생의 쟁점은 문을 열기 위한 노력에 있는 게 아니라 항상 문을 열어 젖힌 그 이후에 있었습니다. 수능 시험이 끝나고 대학생이 되면 모든 시름이 덜어질 것 같지만 대학생활이 녹녹한 것만은 아닙니다. 취직만 되면 인생의 고민이 끝날 것 같지만, 회사가 괜히 월급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대입이나 취직 등은 인생의 큰 관문이며 관문 자체를 통과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죠. 그러나 관문 통과를 미션 완수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입학을 해도 취직을 해도 인생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고 과제는 끝이 없게 마련이니까요.

 두 사람이 연인이 되고 결혼을 해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남이던 두 사람이 연인이 되어 ‘오늘부터 1일’을 세고 결혼식장에 들어서 부부가 되었다 한들, 두 사람의 관계가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인생을 완성시켜주는 것 역시 아닙니다. 사랑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지막 장면이 끝난 이후부터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습니다.

 흔히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인생의 반쪽, 잃어버린 조각, 완벽한 퍼즐, 꼭 맞는 톱니바퀴 등에 비유합니다. 이 넓은 지구에, 이 험난한 인생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단 하나의 인연이 있다는 환상을 얼마나 달콤한가요? 그 인연을 만나면 완벽한 한 쌍이 된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든든한가요?


이렇게 내게 꼭 맞는 퍼즐 조각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미디어에서는 이런 인연을 마치 마법의 묘약인 듯, 이것을 마시면 그 이후의 삶이 완전히 바뀔 듯 그려댑니다. 하지만 마법에는 언제나 반대급부가 있는 법. ‘단 하나의’ ‘꼭 맞는’ ‘짝꿍’이라는 달디단 음료 속에는 관계를 해치는 독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마법의 묘약을 마시기 전, 우리는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음료는 과연 우리 두 사람 관계에서 안전할까요? 어떤 종류의 독이 숨겨져 있을지는 않을까요?


낭만적인 관계를 위한 비낭만적인 딴지 걸기,
'두 사람을 위한 삐딱한 그림책 읽기'

                                                                                                             

  안개향의 그림책 카페에서는 '두 사람을 위한 삐딱한 그림책 읽기'라는 주제로 시리즈를 진행해 보고자 합니다. 행복하고 평등한 관계를 위해 우리가 피해야 하는 '관계의 환상'은 무엇일지, 그림책을 매개로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40쪽 남짓한 짧은 글과 함축적인 그림 속에서,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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