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지, <거울 속으로>와 함께
심리학에 ‘미러링(Mirroring)’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마치 거울을 보듯 상대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상대가 턱을 괴면 나도 턱을 괴는 것이고, 상대가 웃으면 나도 웃는 것이죠. 언어 대신 신체를 통해 의사소통 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념적으로 상대의 생각을 추론하는 대신, 직접적인 흉내를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무의식적인 느낌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러링은 두 사람 사이 신뢰감이나 동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쉽고 강력한 기제로 꼽히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2016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던 이수지 작가의 글 없는 그림책 『거울 속으로』입니다. 전신거울처럼 긴 직사각형 판형의 책이죠.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자면, 이수지 작가는 책의 접지선을 경계로 활용해 만든 글 없는 그림책 3부작으로 유명합니다. 가로로 긴 판형의 『파도야 놀자』에서 접지선은 땅과 바다의 경계가 되어, 소녀와 파도가 그 사이를 넘나들며 노는 장면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위아래로 펼쳐지는 가로 판형의 『그림자 놀이』는 접지선이 현실과 그림자의 경계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좁고 세로로 긴 판형의 『거울 속으로』에서 접지선은 현실과 전신 거울의 경계가 됩니다. 책의 물리적 속성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오직 그림만으로도 충만하고 재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 참 놀랍죠. 작가가 아직 시도하지 않은 판형이 하나 남아 있는데(위아래로 펼쳐지는 세로 판형), 과연 4부작이 완성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네, 엘리베이터, 혹은 폭포?
다시 『거울 속으로』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책은 구석에 외롭게 웅크리고 있는 한 소녀에서 시작됩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거울 속 아이가 놀란 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왼편에 있는 소녀가 움직이면, 오른편의 거울 속 소녀도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마주보고 움직인다. 처음에는 어색해하고 쭈뼛거리지만, 외로움에서 벗어난 소녀의 동작이 조금씩 조금씩 커집니다. 이내 장난도 치고 춤도 추며 신나는 에너지를 분출하지요.
하지만 즐거움의 절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거울 소녀는 더 이상 현실 소녀의 움직임을 따라 하지 않습니다. 방향을 바꾸거나 제멋대로 움직이는 등, 현실 소녀의 의도/지시와는 무관하게 개별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현실 소녀는 거울 소녀를 윽박질러 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화가 난 소녀는 거울을 확 밀어 버립니다. 거울은 산산이 부서지고, 소녀는 다시 외롭게 홀로 남아 몸을 웅크립니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외면-내면을 거울이라는 형상을 통해 분리하고, 자아가 통합되고 분리되는 과정을 그려낸 책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심리적 일치를 느낄 때의 환희, 심리적 불일치를 겪을 때의 외로움, 괴로움 등을 읽어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저는 이 책을 통해 연인/부부 관계가 시작되고 깊어지다가 차츰 식고 결국 이별에 이르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미러링 기법은 상대에게 집중하고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훌륭한 시도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미러링의 결과가 아니라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집중하고 생각을 공유하려는 노력이지, 상대와 똑같이 행동하는 그 자체가 아닙니다. 『거울 속으로』에서 두 소녀가 꼭 같은 행동을 할 때, 즉 현실 소녀의 의도대로 상대가 행동할 때 두 사람의 관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관계가 어디 늘 한 사람의 의도대로만 끌려가나요? 그런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나요? 거울 소녀가 '자신의 다름'을 주장하기 시작하며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자, 현실 소녀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거울은 깨지고 관계도 깨집니다.
연인이나 부부 관계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깨지곤 합니다. 보통 연애를 시작할 때 우리는 두 사람의 닮은 점을 찾는 데 집중하죠. '나도 그 영화 좋아하는데', '나도 거기 가봤어, 진짜 멋지잖아', '맞아, 나도 그런 감정 느껴본 적 있어'라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행복해하던 경험 다들 있으실 겁니다. 이해받는다는 느낌, 통한다는 느낌, 닮았다는 느낌. 그 느낌을 통해 서로가 얼마나 잘 맞는 관계인지를 미루어 짐작하곤 합니다. 그래서 '세상 모두가 나와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더라도 이 사람만큼은 나와 꼭 같은 생각 꼭 같은 행동을 하겠구나'라는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즉 '나는 너, 너는 나'라는 환상에 빠지기 쉽죠.
이런 환상은 사랑에 빠지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나는 너, 너는 나'는 사실 '나는 나, 너도 나'에 더 가깝거든요. 이 때 사고의 중심은 우리가 아니라 나에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상대가 나의 의도대로 따라오지 않음을,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존재임을 견딜 수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생각, 가치관, 느낌이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같아야 한다는 환상, 그래서 상대가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 줄 것이라는 환상이 깊어질 수록 두 사람 사이의 거울을 밀어 깨버리고 싶은 충동도 강해집니다.
이렇게 비유해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길을 찾아갈 때는 여러번 헤매보거나 근처 사람에게 묻거나 지도를 들고 갑니다. 요즘은 네비라는 쉬운 방법이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연구할 때는 네비가 없죠. 그래서 상대 마음의 길을 탐험할 때는 시간과 노력이 듭니다. 문제는 이 때 내 마음의 지도를 들고 간다는 거죠. 이 사람이 나와 같겠거니 지레짐작해버리니까요. 이 경우 지도와 길이 잘 맞을 리가 있나요? 이럴 때는 지도가 잘못 되었네 탓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길이 잘못 되었다고 우깁니다. 지도가 잘못 되었을 리는 없으니(내가 틀렸을 리는 없으니) 길이 잘못 나있는데 틀림없다고 말이죠.
연애란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상대가 나의 거울, 분신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연애의 첫걸음이 됩니다. 나의 지도로 상대라는 길을 읽을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연애의 첫걸음이 됩니다. 연애란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근접하려는 의지’이지, 결코 '완전한 근접' 혹은 ‘동일한 상태’가 아니라는 말이죠. 하물며 근접하려는 의지조차도 두 사람을 꼭 같은 존재로 만들어주지는 못합니다. 우리 모두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자아로 존중받아 마땅하니까요. '나는 너, 너는 나'라는 달콤한 말 속에 '나는 나, 너도 나'라는 허상을 숨겨두고 있지는 않나요? 사랑한다는 명목 하에 상대를 거울 속에 가두고 나와 똑같이 움직이도록 강제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것이 진짜 사랑인지 아니면 나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한 수단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작가 이수지]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과 영국에서 회화와 북 아트를 공부하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림책을 펴냈다. 버나드 와버의 마지막 작품 『아빠, 나한테 물어봐』의 독특하고 간결하면서도 정이 담뿍 담긴 글에 매료되어 그림을 그리고 또 직접 우리말로 옮겼다. 『토끼들의 밤 La revanche des lapins』로 스위스의 가장 아름다운 책 상을 수상했고, 볼로냐 국제 어린이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선정되었다.『파도야 놀자』는 2008 뉴욕 타임스 우수 그림책으로 선정되었고, 미국 일러스트레이터 협회 올해의 원화전 금메달을 받았다. 『이 작은 책을 펼쳐 봐』로‘보스턴 글로브 혼 북 명예상’을 수상했다. 그 외 작품으로는『동물원』,『나의 명원 화실』,『열려라! 문』,『검은 새』,『거울속으로 Mirror』,『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Alice in Wonderland』등이 있다.